분노를 다루는 사람들

복음 중심 삶과 공동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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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원수에 대한 태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경우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도 그랬습니다.
살인이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악한 일입니다.
십계명의 6번째 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 다루기도 하지만 세상의 다른 법정에서도 살인은 최고형으로 다루는 엄청난 범죄로 보는 보편적인 주제입니다.
살인은 직접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만 살인죄를 적용합니다.
Matthew 5:21 NKRV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본론

Matthew 5:22 NKRV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은 분노를 살인이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면 사실 본노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에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분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로운 분노가 있고 또 하나는 죄악된 분노입니다.
의로운 분노는 죄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죄에 대하여 관대한 것은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죄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에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그에 합당하게 심판하십니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의분을 행하셨습니다.
채찍을 만들어 제물로 쓰인 양과 소를 내쫓고 상인들의 상을 엎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 곧 성전을 도둑질하는 곳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분노는 죄악된 분노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죄악된 분노를 표현합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할 때 분노합니다.
나의 생각, 말, 행동이 곧 법이기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행동을 방해할 때 분노합니다.
죄악된 분노의 밑바탕에는 자신이 왕이라는 교만이 있습니다.
나를 왕으로 대접해 주지 않으면 분노를 나타냅니다.
이 분노는 상대방을 제거하고 피해를 주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창세기에 나옵니다.
최초의 살인죄를 저지른 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Genesis 4:3–5 NKRV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마음과 태도를 아셨습니다.
Genesis 4:6–7 NKRV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래서 경고하시며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동생 아벨을 제거함으로 나타납니다.
아벨 때문에 가인 자신이 하나님께 인정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Genesis 4:8 NKRV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은 아벨을 따로 불러내고 들키지 않을 것라고 생각한 장소를 이용하여 계획적으로 살인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에서 우리는 분노가 어떻게 살인으로 발전 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분노는 먼저 멸시로 발전됩니다.
예수님께서 ‘라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이 말 뜻은 ‘바보, 멍청이, 돌대가리’와 같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멸시는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고 인간으로서 대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분노는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행동하지만 멸시는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멸시는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살인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만으로도 살인한 셈입니다.
우리는 화가 난다고 얼마나 다른 사람을 함부로 멸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까?
멸시를 드러내는 가장 핵심적인 표현은 욕입니다.
말로써 다른 사람의 인격에 손상을 입히고 상처를 주면서 곧 죽이는 것입니다.
해리포터의 마지막 대목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현하는 킹스크로스역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포터를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무궁무진한 마법의 원천으로서 상처를 주거나 또 상처를 치유해주지, 사랑없이 사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렴.”
몸에 입는 상처보다 말로 입는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갑니다.
이것은 실험으로도 확인되었습니다.
욕을 하는 사람이 가진 침을 모아 실험용 쥐에 주사했더니 곧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욕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다 큰 해를 입게 됩니다.
욕설은 언어 폭력이요, 언어로 하는 살인인 셈입니다.
분노는 멸시를 낳고 멸시는 욕하며 욕은 폭력으로 장성하여 결국에 살인에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살인자들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행동 뿐만 아니라 마음을 살피게 하십니다.
누가 살인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살인죄의 문제를 짊어지시고 십자가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살인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Matthew 5:23–26 NKRV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우리가 살인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욕하지 않고 멸시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사람과의 잘못된 모든 원한 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품는 분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품고 있을 분노도 없애 버려야 합니다.
모든 잘못된 관계를 적극적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를 하는 것입니다.
미움의 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관계를 개선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것은 예배라고 하는 종교적인 행위로 덮어 둘 문제가 아닙니다.
미적미적 뒤로 미룰 문제가 아닙니다.
최우선적으로 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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