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건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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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이시간 다함께 묵상기도 드리심으로 10월 13일 주일예배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찬송가 000장
-대표기도
-함께보실말씀은 요11:41-44 말씀입니다.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시온찬양대 찬양이 있겠습니다.
-헌금기도
-하루의 평안을 구하는 말들
오늘말씀은 기적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이야기입니까? 기도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큰소리로 부르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입니다.
나사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베다니에 살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였습니다. 나사로에 대한 기록은
요한복음 11:1–44 (NKRV)와 요한복음 12:1–11 (NKRV)절에서 나타나고 있는데요.
특별히 11장 5절에서는 나사로와의 관계에 대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그 동생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말합니다. 아마 성경에서는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나사로를 만나시며 저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만나지 않고는 사랑하시다라는 표현을 하기란 쉽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자주 왕래하며 안부를 묻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되었습니다.
반응이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만약, 예수님께서 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그가 병들었다함을 듣고 즉각 그 곳으로 가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곧바로 가지 않습니다. 도리어 지체했다 말씀합니다.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런데 그것아십니까? 원문은 더 이상합니다. 11장6절 원문에는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있는데 한글성경에는 이 말이 빠져있습니다. 어디에요 이틀을 더 유하시고 앞에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계시던 곳에 그러므로 이틀을 더 유하시고라는 말이됩니다. 바로 가서 고쳐주고 온전하게 해주는 것도 모자란데, 마치 죽기를 기다렸다라고 해석이 됩니다.
(예화) 여러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사람과 너무나도 친하게 지냈다 이겁니다. 그런데 내가 아파해요. 내가 힘들어해요. 그런데 연락한번없고,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더 심해지는데도 가만히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들까요? 왜 내가 그 사람한테 잘해줬지? 그 사람하고 나 친한거 맞나? 후회가 되기 시작하면서, 원망도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보게될것입니다. 그런 말도 하지않을까요? 와! 해도해도 너무하네! 그때 내가 어려울때 도와주고 찾아가주고 그랬는데 아프니까 오지도 않네!
왜 이러한 결정을 예수님께서는 내리신것일까요?
우리 한번 7-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이제 유대로 가자 하십니다. 더욱 이해가 되지 않고 궁금증만 증폭되는 것만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냐면, 예수님의 죽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유대로 가게되면 돌로치려했던 자들이 나타나고 분명 그는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자하시는 것은 죽음의 문제를, 이 세상의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인해 죽을수 밖에 없었던 사망의 문제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십자가에서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의 문제, 그 문제는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해결되기에 그것을 저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한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의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나사로에게로 갑니다. 사람들은 왜 이제서야 왔냐고 합니다. 그가 죽은지 나흘되었다고 말씀하죠. 하지만 예수님은 뭐라하십니까? 그가 잠들었도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 하지만, 나사로는 죽었고, 이미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죽음의 냄새가 났습니다.
(예화) 최근에 저희 처남가정에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처남의 아내가 임신을 한것입니다. 너무나도 좋은일이라서 사람들은 어쩌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임신을 했는데 아이가 심장박동이 없습니다. 적당한 주차가 되어서 병원에 찾아갔는데 심장이 뛰지 않는것입니다. 그리고 다른병원에도 가 보았습니다. 다른곳에서도 어떠한 답변을 받았을까요? 심장소리가 안들린다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기쁨이 절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임신은 했는데 아이는 있는데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죠. 유산된것입니다. 처남과 처남의아내는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으니 수술을 결정해야했던것이죠. 추석명절에 좋은소식을 알려줄거란 기대감에 있다가, 못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일 뒤 수술을 결정하고 병원에서 다시한번 수술하기 위해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순간 심장소리가 들린다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한겁니다. 절망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생명은 무엇입니까? 살아 숨을 쉬는것입니다.
한생명을 살리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요? 심장이 뛰지 않던 아이가 심장을 뛰는것 같습니다.
아무리 살아있는것 같아도 심장박동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있는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형체가 보여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생명이 없는것이기에 살아있다 볼수 없는것입니다.
최근에 지옥에서 온 판사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듯합니다. 상식을 뒤엎는 드라마, 지옥에서 유스티티아라는 재판을 하는 존재가 현생에 나타나 판결을 하며 교회에도 선그라스를 쓰고 들어가고 나오고 하면서 초월적인 존재가 상식을 뒤엎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듯합니다. 마치 마귀의 존재가 친근한 존재처럼 묘사되어지는 것만 같은데요.
왜 드라마는 상식을 뒤엎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질까요? 그런일이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일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들에게 식상할것이고, 재미도, 흥미도 자아내지 못할것이기때문에 상식을 뒤엎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는 것이죠.
세상도 상식을 뒤엎는 일들이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그것에 목말라 하고 있죠.
최근에 또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요. 왜 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나타냅니까? 흑과 백이 싸우는데 저들에게는 요리에대한 계급이 존재합니다. 백은 이미 요리계에서 명성이 높은 유명쉐프들이고 흑은 이러한 타이틀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세상말로 흑수저인 저들이 유명한 자들을 오직 맛으로 승부하여 뛰어넘길 기대하며 바라는 마음때문에 인기일줄 압니다.
사람들의 무엇이 나타나고 있는것입니까? 절망에 있음이 삶에 투영하는 것만 같은 그러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죽음의 그늘이 드리울수록, 소망이 더 없을수록 이러한 프로그램은 더많이 생겨나게될것입니다.
생명을 위해 그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그들이 맛으로 승부하듯이 복음으로 승부하는 저희가 되어야 할줄 믿습니다. 세상의 것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상식을 뒤엎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수 없는 한계를 지닙니다.
그 한계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은 그 본질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착하였을때 나사로는 죽어있었습니다. 돌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냄새는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 세상의 삶은 어떠합니까? 아직 복음을 모르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끝나서, 소망없는 모습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니, 예수님께서 그곳에 외치니 어떻게 됩니까?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만나니 살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소망없는데 소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나오라 명하시니 세상 어렵던 죽음도 극복하게 됩니다.
이 세상은 마치 숨을 멎기 일촉즉발의 상황가운데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언급되어지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올해보다 다음해가 더 더울거라 합니다.
미국에서는 엄청난 허리케인이 발생하여서 뉴스리포터가 울면서 최악의 허리케인이 발생하였습니다. 모두다 대피하십시오라고 하며 그 심각성을 전했습니다.
또 거짓선동을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속고 속입니다. 최근에 학교에서 함께 계시는 목사님께서 중고나라에서 사기를 당했다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을 만나보아도 쉽게 속고 속이며, 잘못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실함이 사라졌습니다. 거짓만이 난무합니다.
마치 CPR을 해도 뛰지 않을 것만 같은 중환자와 같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산소포화도가 낮아지고, 산소마스크에 연명하고 있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그럴때 누가 그러한 자들의 삶을 구원해주실수 있으십니까?
누가 이 상황을 극복할수 있겠습니까?
상식을 뒤엎는 현실입니까? 아니면 2천년전에 이미 나타나고 말씀하신 이미 확정되어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1000년 10000년 그 이상이 지나도! 진정한 소망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죽음에서 건지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다라는 말입니다. 다른 대체제가 없습니다. 세상 아무것도 그분을 대신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새생명축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망없는 세상에서 빠져가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음을 감지하지 못하며, 이제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것입니다.
저들을 누가 건져 낼것입니까? 그리고 왜 구원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 외에는 소망이 없기때문입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않는다 말합니다.
저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습니다. 십자가로 부활로 살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가 죽음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이제 맺으려합니다.
우리는 소망없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을때 소망없을때 그곳에 이르십니다. 자신의 죽음과 그 생명을 뒤바꾸면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세상의 소망없음을 타파하시고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내 주변의 사람은 아직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계속해서 기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상식을 초월한일들이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그들에게 누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먼저 변화받은 우리가 전해야 할줄 믿습니다.
새생명축제를 통하여 한영혼을 살리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우리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설교적용기도
-설교후찬양(마지막찬양은 설교자가인도)
주가 보이신 생명의길,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우리는 죽음에서 건지시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은 소망이 없고, 기적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상식을 초월한 일들이 내앞에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예수가 없이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살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이땅에 소망이 없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소망임을 전해야 합니다. 이시간 기도하실때! 주님 내가 그러한 복음전도자가 되겠습니다.내가 주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겠습니다하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여 한번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십자가 십자가,
오늘 우리는 죽음에 이르게 된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나사로는 병들었고 죽었다하였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을수 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 아무도 우리에게 위로자가 될수 없고! 우리에게 소망이 될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환경이, 거짓선동이 우리를 사망으로 몰아 넣습니다. 우리가 죽어감을 감지하지 못할때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빠져가며 살라달라고 애원할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가 죽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로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 그 그늘아래 내 생명이 있습니다. 이 시간 주님! 내가 그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생명으로 나아갑니다.주님의 그 순전한 십자가를 전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우리 주님이름 부르짖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하나님의 부르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통하여 주님증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여기에 있는것은 전적으로 주님이 부르셨기때문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완벽하게 이끄실것입니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우리가 한 영혼을 사랑하기를 주님과 같이 사랑하게 하소서! 내가 죽더라도 저들을 살리는 내가 되게하소서 우리 마지막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주여!
-마지막찬양후 통성기도 인도
-마무리적용기도
-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