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을 떠난 나오미
Notes
Transcript
룻기에 대해서
룻기에 대해서
룻기는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으로 사사기와 사무엘서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습니다. 사사기책과 사무엘서에 대해서 성도님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사사기 강해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어디까지 비참해 질 수 있는지? 사람들의 생각대로 세상 역사가 진행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래서 왜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지 풀어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를 다 읽은 우리는 고민을 해봅니다. 사람이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은 분명 사람을 통해서 역사되는데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고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룻기서를 허락하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룻기서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드라마가 적어져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소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의 대가 끊어질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메시야의 대가 이어지게 하시는데 그 과정에서 이방인이었던 모압 여인인 룻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이뤄가십니다.
룻은 마태복음에서 메시야의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
마태복음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어떻게 그리스도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지 우리는 룻기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6절은 룻기서 전체의 발단부분입니다. 먼저 1절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베들레헴의 뜻에 대해서 성도님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바로 빵집, 떡집입니다. 먹을 것으로 풍성해야 할 빵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흉년으로 말미암아 빵집에 먹을 빵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한가정은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엘리멜렉이고 나오미임을 2절에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엘리멜렉은 아내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으로 가게 됩니다. 말론의 이름은 질병, 병, 아픔이라는 단어에서 왔고 기룐은 파멸, 전멸, 끝나다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모압으로 가는 가정사가 쉽지 않겠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절에서 주목 할 단어는 흉년인데요,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라는 원어는 창12:10 창26:21 에서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 흉년은 아브라함을 애굽으로, 이삭을 그랄로 가게 합니다. 흉년은 현재 머물러 있는 그 자리를 떠나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 룻기에서도 흉년으로 말미암아 아비멜렉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나게 됩니다. 모압은 어떤 나라인가요? 신명기 23:3 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왜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못들어오게 하는가? 모압 왕 발락은 거짓 선지자 발람을 통해서 출애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고 모압 여인들은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음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는 과정 가운데 걸림돌이 되었던 곳이 바로 모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늘 넘어지게하는 족속이 바로 모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모압으로 갔을까? 두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모압 땅이 당시에 양식이 있어서 갈만 한 곳이었고 두 번째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이 올바로 서있지 않아서 하나님의 빵집을 떠나 이방 땅으로 갔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이들이 모압 땅에 간 것에 대해서 룻기기자는 아무런 평가를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3-5절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모압 땅으로 건너간 한 가족은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가장인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들을 룻기 1:2 에서는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미가5:2 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5:2 는 메시야의 출생에 대해서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베들레헴에 엘리멜렉 말고도 다른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기서에서는 수사적인 표현으로서 메시야의 혈통이 끊어질 위기가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에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지 못할 상황에 놓여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위기를 룻기서 서론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이름이 기쁨인데 남편과 아들 둘이 다 죽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과 전혀 반대의 상황에 처해버리게 됩니다. 남편과 자식이 죽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더 이상 얻지 못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나오미 옆에는 자신의 며느리 둘인 모압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흉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빵집에서 벗어난 나오미의 가정은 모압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남편과 아들을 다 잃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기쁨이었던 나오미는 좌절, 절망의 순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룻기의 마지막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룻기4:18-22 입니다.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남편을 잃어버린 나오미와 총회에 들어갈 수 없었던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다윗의 계보에 등장합니다. 더 나아가 마태복음에서 메시야의 계보에 등장하게 됩니다. 즉 룻기는 크게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는 빵집에 문제가 생겨 빵집을 떠나 남편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는가를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의 유업을 회복시켜주는, 빵집이 진짜 빵집이 되게하는 참 남편을 찾아 하나님의 계보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룻기인 것입니다.
이 룻기의 서론은 우리에게 직면적으로 말씀하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급하심에서 떠난 사람들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서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빵집에서 누렸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만 찾아오게 됩니다. 죄악 가운데 빠져 회복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6절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의 소식을 하나님께서 듣게 하여 주셨습니다.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 룻기의 기적적인 회복 이야기는 먼저는 사사시대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이며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역시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회복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예수님으로만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갈 수 있음을 늘 기억해야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 역시도 예수님으로만 말미암아 회복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늘 예수님을 향한 기쁨의 고백을 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라며 우리를 능히 회복시키셨던 예수님을 기쁨으로 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실제설교분량 : 15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