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13 주일오후예배: 사도행전 2:42, 46-47; 하이델베르크 67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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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2:42, 46-47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42 NKRV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46–47 NKRV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7문
Q. 그렇다면 말씀과 성례 모두 우리의 믿음을 우리 구원의 유일한 근거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희생 제사로 향하게 하려는 이 목적으로 제정된 것입니까?
A. 진실로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 전체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희생 제사에 달려있음을 복음을 통해 가르치시고 성례를 통해 확신시키십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을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에게 말씀하시니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말씀이 선포되는 이 시간에도 감사와 기쁨으로 듣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말씀을 가지고 이번 한 주를 살아갈 때도 힘있게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볼 수 있도록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푸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통해 오늘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살피고 이 말씀으로 우리 교회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교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교회의 중요성과 교회가 그리스도 왕궁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교회가 우리 신앙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이 교회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통치하시는 왕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를 어떻게 다스리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는지를 살피고자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말씀과 성례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지키시는 수단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살피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과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지키고 계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이것을 부단히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물화 현상 - 믿음이 우리의 고유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
종교개혁의 후예인 우리는 “이신칭의”라는 교리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고, 우리가 익히 아는 교리입니다. 다 아시다피시 바울이 쓴 로마서를 통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신칭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믿음을 강조하고 있고, 믿음이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에 근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이 ‘믿음’을 마치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이 표현은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은 우리 자신 안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의 믿음은 우리 스스로가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일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우리가 도르트 신경을 통해서 배운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헛되고 거짓된 우상을 향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불신 세계와 불신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도 믿음은 있습니다. 현대에는 고대만큼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아니라고 하지만, 여전히 최고의 가치나 최고 선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있습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은 돈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며 오직 돈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이라는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 돈이라는 신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에는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어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SNS가 있습니다. 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어필합니다.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 내가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꼭 좋은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닌데도 SNS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점에서 자아를 우상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자아라는 신을 섬기고 있는 겁니다. 자아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신으로 삼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항상 자신에게 신을 두려고 합니다. 신을 예배하려고 하고 신을 섬기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원래 인간은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찬양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였는데, 아담의 범죄 이후 이것이 망가져버려 하나님을 찾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어 믿음의 대상이 우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칼빈의 표현대로 우리의 마음은 항상 우상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는 항상 우상으로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그곳은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그런 믿음을 그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과정을 보면 이것을 확증합니다. 에베소서 2:1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1 NKRV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는 원래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한 주체가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어서 8절을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더욱 명확하게 증명합니다. 에베소서 2:8
에베소서 2:8 NKRV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8절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믿음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에베소서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의지를 모두 하나님을 향하도록 방향을 바르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된 겁니다. 현상적으로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선택한 것이 순서상 제일 앞에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생길 수 있게 된 가장 첫 번째 순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우리가 믿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여기까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동의하시는 부분이며 익히 아시는 부분이실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생긴 그 이후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긴 했지만, 하나님을 믿은 이후의 그 믿음을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시켜 우리만의 것으로 삼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하나님과 아무 상관 없는 믿음으로 만들어 믿음의 주체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꼭 의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는 내가 어떻게 이 믿음을 잘 유지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믿음을 어떻게 잘 지켜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전문적인 용어로 믿음을 “물화”시킨다고 말합니다. 믿음을 하나의 물건처럼 만들어서 믿음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소유하고 유지하는 주체가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는 “내”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을 믿은 이후에는 믿음의 주체가 “내”가 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의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유지하고 계시고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도 우리의 믿음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한번 아브라함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아들 한 명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여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바로 자손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져서 자신의 방식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하게 만드시기 위해 어떤 일을 아브라함에게 행하게 하시는데요. 그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다시 한번 맺으시면서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게 하십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조차 믿음이 연약하였습니다. 그는 현실 앞에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결하고자 하는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연약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할례를 통해 강하게 만들어주셨고, 아브라함은 이 할례를 보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바로 믿음의 주체의 제일 첫 번째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도 하나님과 관계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물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도르트 신경에서 지금 “성도의 견인”을 배우고 있습니다. 견인의 주체도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음 가운데서 견디고 인내할 수 있도록 우리를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견디고 인내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물화시켜선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항상 하나님과 관계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속 사역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그 믿음을 지키시고 유지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배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체는 항상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항상 믿음을 불어넣어주십니다.
2. 우리에게 주신 이 믿음을 지키시기 위해 주신 말씀과 성례 - 말씀을 통해 믿음을 불어넣으시고, 성례를 통해 믿음을 굳세게 하심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믿음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아예 맡기심으로 우리가 잘 유지하고 지킬 수 있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을 우리만 소유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고 유지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믿음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유지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유지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 제목에도 나와있지만, 말씀과 성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이것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면 함께 답을 해보겠습니다.
67문. 그렇다면 말씀과 성례 모두 우리의 믿음을 우리 구원의 유일한 근거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희생 제사로 향하게 하려는 이 목적으로 제정된 것입니까?
답. 진실로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 전체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희생 제사에 달려있음을 복음을 통해 가르치시고 성례를 통해 확신시키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성례, 더 정확하게는 설교와 성례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고 유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통해 우리의 구원 전체,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달려있음을 매주 주일마다 가르치시고, 성례를 통해 이것을 굳세게 만드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사도행전 말씀이 이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2장 42절은 베드로가 오순절에 한 설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베드로는 사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자이며 새 언약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에 앞장서있는 사도 중 한 명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리스도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았으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이어지는 3장을 보시면 그 유명한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가 성전 미문에 앉아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는 놀라운 기적을 베풉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걷게 만드는 놀라운 기적을 베드로는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이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행하고 가장 중점으로 여겼던 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베드로는 어디로 가든지 그리스도를 설교를 통해 전하는 것을 끊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살피시면 베드로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직분자들이 행한 것은 기적보다도 설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말로서 그리스도를 어디서든지 전파하였고, 심지어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음에도 그 감옥을 지키는 간수에게조차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사도들에게 맡겨진 직무, 바로 설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설교입니다. 어떤 신비한 기적이나 환상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설교라는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시기로 하셨습니다. 우리가 저번 시간에도 살펴본 고린도전서 1:21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1 NKRV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여기서 전도는 설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설교를 통하여 믿음을 일으키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보십시오. 이들은 다른 어떤 교훈이나 좋은 말들을 설교한 것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설교하였습니다.
또한 설교는 과거의 어떤 일을 끌고와서 오늘 우리에게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강단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강단 자체가 신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강단에서 설교를 통하여 자신을 알리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89문은 “말씀이 어떻게 구원에 효력 있게 됩니까?”라고 질문하는데요. 여기에 대한 답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말씀을 읽는 것, 특히 말씀의 설교를 효력 있는 방편으로 삼아 죄인을 책망하고 회개케 하시며,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그들을 거룩함과 위로로 세우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설교를 통하여 교회의 믿음을 지키시고 유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아 우리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지킵니다. 로마서 10:17 에서도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로마서 10:17 NKRV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먼저 설교를 준비하는 자, 바로 목사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대요리문답 159문입니다.
Q. 그렇게 부름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설교해야 합니까?
A. 말씀의 사역에 수고하도록 부름 받은 이들은 올바른 교리를 설교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하게, 사람의 지혜가 권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단순명료하게, 하나님의 모든 작정을 알도록 신실하게, 청중들의 필요와 수용능력에 맞게 적용하며 지혜롭게,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의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열렬히,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회심과 성숙과 구원을 추구하며 진정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이어서 대요리문답은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160문입니다.
Q. 설교된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A. 설교된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준비된 자세와 기도로 설교에 부지런히 참여해야 하며, 그 들은 바를 성경을 통해 점검해 보고, 믿음과 사랑과 온유함과 준비된 마음으로 진리를 받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묵상하고 숙고하며, 그들의 마음 속에 간직하여 그 말씀의 열매가 삶 가운데 맺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요리문답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요약하자면 설교를 하거나 듣는 이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강단에서 그리스도가 설교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와 믿음이 보호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가 강단에서 선포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회와 믿음을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자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가 설교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일에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것에 감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로 설교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일에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겁니다. 만일 우리가 설교를 위해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주일에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선포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선포된 설교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 교회와 우리의 믿음을 말씀을 통하여 지키시고 유지하고 계시는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겁니다.
성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이델베르크 67문에는 말씀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우리의 믿음을 우리 구원의 유일한 근거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바로 성례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음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를 교회에게 가르치심으로 믿음을 세우시고, 이 믿음을 성례를 통하여 굳세게 하시고 확신시키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례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지점은 세례와 성찬 자체를 행한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강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와 성찬의 주체도 역시 그리스도이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물로 세례를 준다고 해서 죄로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19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8:19 NKRV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여기서 주님께서는 열한 제자, 즉 사도들에게 그저 세례를 베풀어라라고 명령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까? 바로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례의 주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복음을 들음으로 생긴 믿음을 통해 삼위 하나님께서 집례자를 통해 베푸시는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표징으로서 확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세례의 중심적인 강조점입니다. 바로 세례는 집례자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이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믿음을 굳건하게 만드십니다. 교회의 믿음이 연약해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세례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그리스도로 향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약해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통하여 그에게 언약의 표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할례를 행하고나서 그의 믿음이 약해진 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손인 이삭을 주셨지만, 그를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할례라는 징표를 통하여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이삭을 통해 많은 민족을 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믿었습니다. 할례 자체가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준 것이 아니라 할례의 주체자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는 행위입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본문에서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뗐다고 말합니다. 바로 성찬을 행한 것입니다. 또한 46절에서도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믿음을 굳세게 만들기 위해 다른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성찬을 행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성찬을 통하여 교회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시기로 하셨기에 교회는 그것을 행합니다. 세례와 마찬가지로 성찬도 주체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1:20 에서 성찬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린도전서 11:20 NKRV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바울은 성찬을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주의” 만찬이라고 합니다. 바로 성찬은 주님께서 베푸신 만찬입니다.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먹는 것 자체가 성찬이 아니라 집례자를 통해 자신의 살과 피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 성찬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성례는 모두 ‘그리스도’에 방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설교,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세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시는 성찬, 바로 교회의 믿음을 지키는 주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지금도 여전히 우리 교회의 믿음을 지키고 계십니다.
따라서 설교와 성례는 모두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설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알게 되는 기쁨의 시간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표징을 얻게 되는 기쁨의 시간입니다. 또한 성찬도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베푸신다는 기쁨의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쁨으로 이 모든 것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설교와 더불어 성례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우리의 믿음을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드시기 위해 성례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연약한 믿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만들고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성례에 참여해야 합니다.
혹시 이 자리에 자신의 믿음이 지금 연약해진 상태에 있다고 여기거나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신지요.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말씀을 들어도 별 느낌도 없고, 성례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드시는 분이 있으신지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상황들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고 유지하시기 위해, 그리고 단단하게 만드시기 위해 주신 은혜의 방편이 베풀어지는 이 교회로 나아오십시오.
제일 처음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며, 믿음을 물화시킵니다. 교회의 믿음을 지키고 유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선포되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시는 곳인 이 교회로 오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믿음, 교회의 믿음은 단단해질 것입니다. 설교와 성례를 시행하지 않거나 이것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잃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의 주체자를 ‘나’로 두지 말고 ‘그리스도’께 두십시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위로를 얻게 될 겁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공격받는 순간 속에 말씀과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강한 무기가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강한 성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례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에 불신자들에게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우월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너보다 더 우월해”라는 마음이 은연 중에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우리의 고유한 것이 아니며 말씀과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믿음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없으면 불신자들과 다를 바가 없기에 불신자들 앞에서도 겸손해질 수가 있으며 그들에게도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부단히 애를 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설교와 성례를 통해 지금도 여전히 우리 교회를 지키시고 유지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말씀과 성례의 주체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며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를 사용하기를 즐겨하시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뗴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주체자가 아닙니다. 믿음을 주신 분도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교회가 무너지지 않게 우리의 믿음을 말씀과 성례를 통해 지키시고 단단하게 만들어가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를 여전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 바로 세상의 주권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왕이시라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또한 우리의 믿음을 항상 그리스도께 두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설교와 성례를 부단히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는 것에 힘쓰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특별히 매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10월 말에 있을 성찬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시고, 우리 교회에 세례를 받는 자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는 저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음에도 저희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씀과 성례를 주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교회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항상 말씀과 성례를 통해 교회를 지키시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런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말씀과 성례의 자리가 있는 이 교회에 나오기를 힘쓰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살아갈 때도 은혜의 방편을 통해 주어진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어 세상을 거뜬히 이겨내고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저희에게 이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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