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의 삶
이길수
선교적 삶을 사는 자세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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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산상수훈의 중요성
산상수훈은 선교적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산상수훈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살았던 삶이다.
1) 산상 수훈은 선교적 삶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매력적인 반문화 대안 사회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이 시대의 문화와는 달라지고, 여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니
다른 문화와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이 생겨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매력적인 반문화 대안 사회로 보이게 한다.
이 매력적인 반문화 대안 사회가 곧 선교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적 주장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눈에 보이는 삶에 중대한 관계성이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열방에 빛을 드러내는 통로, 산 위의 도시.
2)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 메세지의 핵심이다.
-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요약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의 주된 사역은 가르치는 것과 고치는 것이었다.
이 이후에 사람들이 많이 따르게 됨.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의 주된 사역에 대한 또 한번의 요약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 중간에 나오는 것이 산상수훈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
5장부터 7장까지
산상수훈의 주요 내용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다.
8장부터 9장 34절까지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동기는 긍휼이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바로 중보기도에 대한 내용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리고 파송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이 구조를 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이 산상수훈이며, 마태가 이 내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대위임령에서 이 부분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음.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초대교회는 산상수훈의 삶을 살기를 추구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교도들에게 매력적인 반문화대안사회로 다가왔다.
초대교회를 향한 큰 박해에도 불구하고 왜 교회는 성장했고, 매력적이었을까?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기본적은 토대가 산상수훈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것을 연설하기보다 위대한 진리대로 살았다.
그런데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부터 회심이 급속도록 변질되기 시작했고, 산상수훈의 삶도 변질되었다.
초대교회와 그 이후의 시대에는 엄청난 갭이 있었다.
예수님의 의도는 산상수훈의 삶을 실제로 살라고 말씀하셨지, 마음 속에서 그렇게 품고만 있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루터파 정통교리에서 사람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이것이 우리가 산상수훈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결국 이렇게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기준이다. 올바른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증명된다.
우리는 그렇기에 초대교회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기 313년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2. 우리의 신앙은 삶이다.
산상수훈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산상수훈의 마무리.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듣기만하고 행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반드시 그 일을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칭의에서 신앙을 멈추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성화가 함께 가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삶과 행동이 교리로 바뀌어 버렸다.
3. 산상수훈의 내용
1)팔복 - 하나님 형상의 회복 과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범죄함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깨져버렸다.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가증스럽고 악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스스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내 자신에 대한 처절한 소망없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천국 백성이 된다.
마음이 애통하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거듭난 자가 겪게 되는 슬픔.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속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영혼의 탄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애통함의 과정이 굉장히 많이 반복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애통함이 반복되며 온유함이 생긴다. 풍랑의 잠잠케 됨을 경험하게 된다. 더 이상 낙망하지 않고,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점점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과 배고픔이 함께 하게 된다. 하나님과 쉼없는 교제를 하게 된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 까지 간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가 긍휼이 여기는 자이다. 이웃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게 된다. 이웃을 향해 오래참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점점 회복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청결해진다. 전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이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화평케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화평케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화평하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에게 핍박과 고난이 임한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친밀한 교제 안에 있으면, 이 팔복의 삶을 자연스럽게 살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만 몰입하면 안 된다. 우리의 동기를 바라보아야 진정으로 팔복의 삶으로 나아간다.
우리 마음의 중심과 순종이 함께 가는 것의 중요성.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합당하지 않은 자인가 보게 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우리 속에 어떤 선함도 없다는 것과 주님의 전적인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신앙의 가장 중추적인 기초이다.
산상수훈의 삶을 위해 반드시 깨져야 하는 거짓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
성경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쉽다고 이야기 한다. 나의 멍에는 쉽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절대로 산상수훈의 삶을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어렵다고 느낄까?
나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냥 완전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그 하나님을 인식하여 동행할 때, 우리는 완전할 수 있다.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우리는 완전해진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모세오경의 기획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를 말씀하신다.
그들은 400년간 종살이했다. 이 종살이를 끝내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만 듣고 지키면 된다. 하나님과 교제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된다.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그들은 그러한 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자칫 잘못하면, 신비주의, 개인주의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그 다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2)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정체성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스도인은 착한 행실을 통해 빛을 비추어야 한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하는 것.(윤리적인 삶)
매력적인 반문화 대안 사회의 삶은 윤리적인 삶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산상수훈의 삶은 연습을 통해서 자라나야 한다. 우리가 다음 세대들 앞에서 믿음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난다.
완전하라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여기서 우리가 꼭 인식해야 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받는 것.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완전하라고 하신 것은 내가 도저히 안 되는 영역을 뛰어넘는 것이다.
안 되는 영역 어디 언저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함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안되는 것은 옛사람의 나다. 새사람의 나는 완전함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안 된다는 것, 우리가 변호하는 벽을 완전히 찢어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는 삶.
4)하나님 나라 백성의 은혜의 수단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수단이 사랑의 실천과 경건의 실천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다.
5)순수한 의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것.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네 주님 저는 제 스스로는 조금도 할 수 없으나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6)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며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첫번째 장애물은 교만이다.
슬그머니 우월의식이 자리잡으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는 것은 치명적인 교만에 사로잡힌 것이다.
남의 잘못을 심판해서는 안 되며, 남의 잘못을 보는 순간에 나를 보아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꾸 자신을 보는 눈을 떼어 주님을 본다.
교만을 이기는 핵심 비결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은혜를 기억하면 교만을 잊어버린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 나를 겸손케 하여, 오늘 믿음의 삶을 살게 한다.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에 내가 나온다.
우리가 대접받기 원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두번째 장애물은 유혹과 거짓말이다.
편한 길, 쉬운 길 이런 유혹에 빠지지 말고, 주의 길로 가야 한다.
안돼 안돼 하지말고, 하나님의 길이라면 적극적으로 따라 가야 한다.
애통함을 가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7)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
배운대로 행해야 한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살아야 한다.
염려할 만한 일이 있지만 염려하지 않는 것.
염려를 주님께 드릴 때 주님께서 채우시는 것을 경험할 때 이 삶이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