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18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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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10장(내 맘에 한놰노래 있어)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주님, 오늘도 새벽에 나아와 주님의 말씀을 듣으며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인정하며,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 눈을 열어 주님의 뜻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게 하셔서. 주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넘치도록 도와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께 간절한 기도제목과 함께 소중한 예물 드리는 손길 있습니다. 이 예물 기쁘게 받아주시고 이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전파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물드린 손길도 축복하여 주셔서 주님안에서 소망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19:28–44 (NKRV)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재물도 필요하고 인맥도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하고 지혜와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중에 ‘사람을 보는 눈’도 필요합니다. 인간관계를 함에 있어 믿어야 할 사람을 믿지 못한다거나, 반대로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어 인간관계는 물론 삶에 어려움을 당하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10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뒤 예루살렘을 향해 앞서가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이르셨을때 때 반대쪽 마을로 두명의 제자를 보내시면서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매여져 있는 새끼 나귀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나귀는 물건을 이동하는데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다큰 나귀는 사람이 타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나귀는 말에 비해 작지만 힘이 세고, 병에 잘 걸리지 않아 서민들에게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새끼 나귀를 끌고 왔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고 하시는 것인가? 예수님께서 힘이드셔서 그런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걸어 오셨는데 얼마 남지 않은 예루살렘을 두고 도저히 걷지 못할 것 같아 나귀를 타려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좋은 말도 있고, 낙타도 있는데 왜 굳이 말과 낙타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먼저 과거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선포된 예언을 성취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Zechariah 9:9 NKRV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지금 예수님은 과거의 예언을 성취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지금 예수님께서 과거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원하고 기다렸던 메시야 이심을 제자들과 무리를 포함한 모든 백성에게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예수님께서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시는 이뉴는 세상의 왕이 되어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군림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희생과 섬김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무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람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옷을 나귀 위에 깔고 또 길에도 깔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복음서에도 다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던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도 옷을 벗어서 길에 깔았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옷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도 베어 길에 폈고, 요한복음에서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마태복음에 의하면 ‘우리가 당신께 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는 뜻으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였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큰 환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까지 예수님을 환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왕은 정치적 해방자 였습니다.
다시말해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왕을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마치 이런 왕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줄 왕임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본문 37절에 이렇게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9:37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들이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병 든자들을 고치시는 능력을 보고 또 소문으로 듣고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 왕이라면 우리를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라고 원하는 왕은 자신들에게 세상적인 평화를 주는 왕이었습니다. 마치 다윗왕과 같은 강력한 힘으로 얻을 수 있는 평화 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환영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셨기 때문에 발이 땅에 닿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모습이 어떻게 보면 볼품 없어 보였을지도 모르나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었기에, 자기들이 본바 모든 능한 일 때문에 큰소리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기를 치는 사람을 믿는 과정 가운데 그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그들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익에 집중하게 되어 그 사람을 믿게 됩니다. 다시말해 내 욕심이 있기에 그 말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며 저런 분이 우리의 왕이라면 우리에게 큰 유익이겠다.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보는 눈이 없는건 일반 무리나 당시 지식인이며 성경에 능통한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무리들이 예수님을 향해 환호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좀 책망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인것도 무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이 백성의 왕이 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빼앗길 수 있겠다는 불안함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이토록 싫어하는 것입니다.
무리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반응이 달랐지만, 그 반응의 이유는 같았습니다. 둘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때문에 지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같은 환호를 받으시고 기뻐하시거나, 그렇게 환호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격려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습니다.
무리가 원하는 것은 세상의 평화 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얻을 수 있는 평화 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2절 입니다.
누가복음 19:42 (NKRV)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에이레네’ 입니다. 히브리어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샬롬 입니다. 이 샬롬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유한합니다. 있다가도 없어지는것이 세상의 평화 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내 손에 쥐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이레네는 내 영혼안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평화는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와서 평화를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이레네는 절대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전쟁중에는 세상의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중에도 누릴 수 있는 것은 에이레네 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누릴 수 없는 것이 세상의 평화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 할지라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에이레네 입니다.
갈등가운데 있고 어려움 가운데 있고 핍박가운데 있으면 절대 세상의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갈등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핍박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에이레네 입니다.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는 돈이 없어지면 같이 없어집니다. 건강함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는 건강을 잃으면 같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이레네, 샬롬은 내 영혼안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무엇이라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7 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John 14:27 NKRV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지금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이유가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요한복음 16:33 입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세상의 평화가 아닌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살길 원하십니다. 그 평화를 누리길 바랍니다. 오늘 어떠한 일이 닥쳐 올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그 ‘에이레네'를 경험하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
바울이 빌립보서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빌립보서 4:6–7 (NKRV)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마음을 졸이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대신 기도하십시오. 간구와 찬양으로 여러분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하나님께 여러분의 필요를 알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대한 감각, 곧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믿음이 생겨나서 여러분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삶의 중심에서 염려를 쫓아내실 때 일어나는 일은 실로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새벽 주님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주님이 그 평화을 누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조금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비로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믿어지게 되고 그 믿음이 내 마음 중심에 있어 더이상 상황과 환경가운데 염려하지 않고 주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평안히 기다릴 수 있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하루도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주님이 믿어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금도 일하시고 계심이 믿어져 어떤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아닌, 주님때문에 누릴 수 있는 평화로 오늘하루를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여유롭게 살아가는 행복한 하루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우리의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 오늘도 주님이 저희에게 그토록 주시고자 했던 그 평화를 누리는 하루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모든 것을 능히 하시는 주님이 믿어지게 하시고, 그로인해 우리를 위해 못하실 것 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금 깨달아 오늘하루도 주님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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