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18 새벽기도회: 마태복음 17: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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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321장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루를 살아내기에는 역부족인 자들이 바로 저희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붙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는 죄만을 양산하며 더러움에 뒹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저희의 모습을 용서하시고, 저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저희가 하루를 거뜬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죄 가운데 살게 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선을 행하는 삶을 살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기도회 시간을 통해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하셔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7:14-21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없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 새벽기도회로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거뜬히 살아내는 원동력의 시간이 되는 새벽기도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먼저 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에게 자신이 변모한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변화산 사건 이후에 산에 내려오자마자 일어난 일입니다. 바로 한 귀신 들린 아이에 대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데요. 여기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무엇 때문에 꾸짖으시는 것일까요? 함께 말씀을 살펴보면서 오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말씀인지 살피고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14절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꿇어 엎드리면서 애원하는데요.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예수님께 애원하게 된 것일까요? 이 사람이 주님께 애원하는 이유는 15절에 나와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그의 아들이 간질에 걸려 고생하고 있어 이것을 주님께 말씀드려 고쳐주실 것을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 사람의 아들은 간질에 걸린 것이 아니라 사실 귀신에 들린 것이었다는 겁니다. 18절에 보면 귀신 들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15절에서 간질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날에 간질은 뇌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간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간질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요. 바로 귀신이 들렸을 때 마치 간질에 걸린 것과 같이 발작 증세를 보이기 때문에 간질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튼지 아들이 귀신 들려 고생하고 있자 이 사람은 주님을 찾아와 고쳐주실 것을 애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주님께 찾아와 처음으로 고쳐달라고 애원한 것이 아닌데요. 16절에서 보시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찾아가 고쳐달라고 애원했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예수님이 이전에 질병과 귀신을 쫓아내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보이지 않자,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 제자들도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행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기에 제자들에게도 애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1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병을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후에 이들을 파송하셨었습니다. 그렇다면 능력을 받았으니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주님께서 들으시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절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는 반응이셨습니다. 바로 믿음이 없는 세대이며,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우상숭배한 것을 보고 모세가 패역한 세대라고 했던 것처럼 주님께서도 패역한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을 보고 분노하였듯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도 믿음 없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햐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자들이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백성 전체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 능력을 받은 제자들조차도 믿음이 없는데, 나머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겠냐는 겁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이 세 제자는 예수님께서 변모하심으로 하나님이심을 두 눈으로 본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습니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계심을 보았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극단적으로 배교한 것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백성들의 믿음 없음에 대하여 탄식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이러한 탄식을 표현하신 후에 귀신 들린 아들을 자신에게로 데려올 것을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귀신을 향하여 꾸짖으시자 18절에서 그 아이가 낫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19절에서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 이유를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20절입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자들이 실패한 것에 대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아직 층분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지 않으시고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시면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시면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겨자씨는 너무나 작은 씨앗으로 너무나 작은 이 겨자씨만큼의 믿음도 제자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제자들에게는 믿음 그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의 믿음의 분량, 또는 믿음의 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믿음”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처럼 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주님께서는 믿음의 분량을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지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건데, 그 흔적이 오늘 본문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믿음에 대하여 무엇 말씀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17절을 보시면 주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여기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믿음에 대한 주님께서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은 믿음의 분량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 또는 믿음의 방향을 누구에게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었던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세를 예수님과 떨어뜨려 놓고 자신만의 능력으로 인식하였고, 그래서 너무 과신한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여 자신들도 당연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은 마태복음에서 “없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성경에 난외주가 적힌 분들은 21절의 난외주를 보시면 알겠지만 어떤 사본에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적혀있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평행본문인 마가복음 9:29 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다시 말해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였고, 자신에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은 것이죠. 바로 제자들의 믿음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기에 이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믿음의 대상을 하나님, 더 정확하게는 능력을 주신 예수님께 두었다면 이들은 실패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해보십시오. 거기에서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를 단숨에 걸을 수 있게 만든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의 대상이 자신에게 있지 않았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자신은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가능하시다는 믿음 말입니다.
제가 오후예배 때 설교한 것처럼 믿음은 측량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기도를 통해 성취한 것은 믿음의 “양”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을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라고 꾸짖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두어야 함에도 우리는 다른 것들을 의지하거나 더 나아가 제자들과 같이 자기 자신을 믿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항상 하나님께 두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믿음은 작은 믿음조차 없는 믿음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자신의 주권대로 이 세상을 운용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가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기도합니다.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믿음은 항상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분을 떠난 믿음은 믿음이 없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소유하는 우리가 되어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가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고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에게 이 말씀을 주시고 저희의 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을 허락하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를 꾸짖으셨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 믿음을 두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믿음을 두었던 이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저희는 항상 저희 자신에게 믿음을 두려고하는 연약한 자들이니 날마다 저희에게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께 믿음을 두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산을 명하여 옮기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놀라운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그러한 믿음 가운데서 살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