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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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고린도전서 7:29-31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2024. 10. 18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본적으로 재림이 임박하였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는 알 수없지만, 분명히 이제 곧 오시리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교회들에게 주님이 오시기 전에 충성하라고 촉구했고, 본인 스스로도 생명을 다해서 충성했습니다.
비록 바울이 기다렸던 주님이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지 않으셨지만, 바울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그 때가 오기 전에 충성해야 돼요.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열심히 사용해야 됩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충성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지금 그 때가 단축하여졌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어요.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졌다는 거죠. 오늘 본문 29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9절 시작,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아멘.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그 때, 주님이 오실 때가 단축하여졌어요. 안 그래도 가까웠는데, 더 단축됐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똑같은 말씀을 하셨었거든요. 마태복음 24장 22절에,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아멘.
예수님은 이 땅에 일어날 환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그 환난의 시간들을 특별히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단축하실 것이라고 하셨어요. 모든 육체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환난의 시간이 길어야되지만,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서 그 시간을 줄여주시겠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때가 단축하여졌다. 그러니까 지금 시간이 촉박하죠. 자, 그러면, 과연 이 촉박한 시간 동안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주님이 곧 오실 건데, 그 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
29절 후반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것처럼 살라는 거예요. 이 말이 굉장히 이상하죠. 아내가 있는데 어떻게 없는 것처럼 삽니까?
분명히 바울이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있는 그대로 살고, 아내가 없는 사람은 없는 그대로 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은 뭐예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아라.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또 이것이 밑에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30절에 보니까,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절도 보면요.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무슨 청개구리도 아니고 말이죠. 지금 모습하고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라는 겁니다. 아내가 있으면 아내가 없는 것처럼 살고, 울고 있으면 울지 않는 것처럼 살고, 또 기쁘변 기쁘지 않은 것처럼 살고…. 너무나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요. 도대체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가? 아내가 있는 데 왜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될까요? 울고 있는데 왜 울지 않는 것처럼 해야 될까요? 이해가 안 되죠.
그리고 바울이 말한 것들을 보면, 이것들이 죄도 아니거든요. 아내가 있는 것, 우는 것, 기뻐하는 것, 매매하는 것, 세상 물건을 쓰는 것. 이 중에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다 우리에게 허용된 것들이에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죄가 아닙니다. 우는 게 죄가 아니잖아요. 울 수도 있고, 기뻐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바울은 이런 말을 했을까? 그 이유를 31절 끝에 말하고 있습니다. 31절 끝에,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아멘.
여러분, 이 세상은 언젠가 끝이 납니다. 주님이 오시면 하늘이 불타고 물질이 녹아요.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됩니다. 이것을 “새 창조”라고 그래요.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새 창조라기보다는 “재 창조”죠. 우주를 태우고 녹여서, 그것을 가지고 다시 만드는 거거든요.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죽고나면 나중에 재림 때 부활하게 되는데, 그때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제공해주시는 게 아닙니다. 죽은 내 몸을 그대로 다시 살려주시는 거예요. 다만, 이전에 내 몸은 죽을 몸이었다면, 부활한 몸은 영원히 살 몸입니다. 더이상 먹지 않아도 되고, 모든 생식활동을 초월하여 영원히 사는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는 거예요. 그 몸에는 장애가 없고, 질병도 없고, 어떠한 부정한 것도 없어요. 그것을 우리가 “새 창조”라고 합니다.
바울이 지금 그것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지금 바울은 새 창조까지는 말하지 않아요. 그 전에 세상이 지나가는 단계까지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불타고, 체질이 녹는 그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때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이 되죠. 기쁜 일, 슬픈 일, 물건을 사고파는 일, 그리고 아내와의 부부생활, 모든 것이 다 끝이 납니다. 바울은 이것을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살고 있는 생활에 매여서 살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인생을 살되, 인생의 우선순위를 세상에 두지 말아라.
마태복음 24장 38절, 39절에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에 홍수가 나서 멸망한 자들이 멸망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를 말씀하셨어요. 마태복음 24장 38절, 39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아멘.
여러분, 홍수가 나기 전에 사람들이 뭘 하고 있었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무슨 범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냥 자기 인생을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예요? 자기 인생을 사느라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죠.
먹는 일에 정신 팔려서, 장가 드는 일에 정신 팔려서, 하나님을 외면한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홍수가 날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다 멸망한 겁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임함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자기 인생 사느라고, 회개하지 않고, 허랑방탕하여 세월을 낭비하고 있을 때, 불시에 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 말을 하고 있어요. 너희 인생에 너무 매몰되지 말아라. 아내를 사랑하느라고, 우느라고, 기뻐하느라고, 매매하느라고, 하나님을 외면하지 말아라. 그 때가 단축하여졌으니, 세월을 아끼라. 이 짧은 인생, 주님을 위하여서 충성하며 살아라.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가 단축하여졌습니다. 시간이 길지 않아요. 우리가 세월을 아껴서, 주님을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하는 모든 일이 다 중요하죠. 그러나 우리 인생에 우선순위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시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충성하고, 주님 오시는 그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