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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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60–71 NKRV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서론
요즘 유행이 뭐죠? 제가 기억나는 최근의 유행은 마라탕후루 춤이라던지, 요아정이라던지였습니다. 이런 유행을 보면 제가 십대나 이십대 때는 유행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유행을 따라가려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구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행을 왜 따라가는 걸까요? 그것은 사람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같이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할 때는 마음이 편하고 남들이 다 하지 않는 것을 할 때는 불안하죠. 저도 그래서 항상 불안합니다. 남들처럼 직장에서 돈 버는 것이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니까요. 사람은 참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제목처럼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나옵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 남들이 다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죠? 먼저 썩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의 먹을 것, 입을 것, 명예, 권력 등의 복을 구하지 말고 저 천국과 구원을 구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가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죠. 이것은 피를 안먹고, 성전에 시기마다 제물을 드리는 등의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의 우리가 가진 상식을 뒤집는 설교가 마쳐졌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는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워서 누가 들을 수 있겠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아 예수님의 설교가 수준이 높았구나!’, ‘예수님은 역시 지혜로운 설교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이구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누가 받아들일까?’란 의미였습니다. 자신들이 알던 사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에 거부감을 내비친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을 배우다 보면 이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선 자신이 제일 소중하니까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하고, 법을 어기지 않으면 자신의 행복이 최고 우선이라고 듣고 살았는데 성경과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남의 행복을 위해서 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반응을 보시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여기서 ‘걸림이 된다’는 ‘마음에 걸린다’와 같이 ‘신경 쓰인다’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너희가 걸려 넘어지겠느냐?’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말씀으로 인해 ‘나를 믿고 따르던 마음이 흔들리느냐?’, ‘나를 이제 안 믿겠다는 것이냐?’의 의미입니다.
그리곤 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복음도 받아들이기 힘들면 부활하여서 하늘로 돌아가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의 의미입니다. 간단히 말해 ‘십자가도 못 믿는데 부활은 어떻게 믿겠냐?’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 것 욕심 안내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못살거면서 부활을 믿고 고난은 어떻게 견딜 것이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여기서 영은 무엇을 말할까요? 영은 ‘프뉴마’로 ‘성령’과 같은 단어입니다. 영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육은 그와 반대되는 세상, 인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방법, 사상, 교훈, 종교는 생명을 주실 수 없다는 것이다.
제가 예전에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처럼 세상에서도 생명을 준다고 하는 것이 많습니다. 요가도 있고요, 뉴에이지 쪽의 명상, 다른 종교 불교, 흰두교, 무당, 도를 믿습니까 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생명을 준다고 말하지 않아도 비슷한 색을 내는 것들도 많죠. 자기 계발서, 내 마음 위로하기 등 마음을 이렇게 먹어라, 이렇게 살아봐라 그러면 삶이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이런 세상의 가르침도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육은 무익하다. 인간, 세상의 방법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이 살리는 것이고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갑자기 예수님은 좀 쌩뚱맞은 소리를 하십니다. “제자들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더 심하게 예수님을 팔자들을 예수님이 알고 계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예수님의 말씀의 흐름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갑자기 주제를 확확 바꾸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묵상해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인간과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리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예수님께로 와서 살 수 없다고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믿지 않는자 배신자가 있음을 말씀하시죠.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가운데, 우리로 치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적인 힘과 방법을 사용하는 자들, 예수님을 생명이 아닌 다른 욕심으로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자들을 지적하자 그들은 떠납니다. 이것은 지금에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니면 부자되고, 학교 좋은데 가고, 내 욕심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다가 안 되서 떠나는 사람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교회를 떠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지 않는 사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내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 것을 느끼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아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안 들어도 다닐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물건 팔아줄 사람이 필요해서, 나랑 같이 어울려 지낼 친한 사람이 필요해서, 내가 돈과 시간을 쏟은게 아까워서 교회를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자들을 예외로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날 것이냐 물으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너희도 떠날꺼니?’하는 애절한 물음이 아니십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시험이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나는데도 제자들이 자신의 말씀을 믿어서 그대로 사는 수고를 하고 헌신을 하겠느냐 물어보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참으로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나는 끝까지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라는 고백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고백합니다. ‘거룩하다’는 하나님께 드려졌다, 하나님께 속하였다 뜻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예수님의 말씀이 옳고 맞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고백을 지금 상황에 비유하자면 이런 것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해서 같이 미국을 갔습니다. 여러분은 미국에서 부자도 되고 수영장 있는 집에서 살줄 알고 따라갔는데 왠걸 맨날 농장에서 일만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러분이 떠난 그 집은 재계발이 되서 강남같이 비싸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맨날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복을 받았습니다. 영혼이 살지 않았습니까? 거기는 강남같이 되서 사치와 향략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있으면 어떨까요? 이제 제 말을 듣기도 싫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한 두명도 아니라 100명이면 88명이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열두명이 남아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전도사님이 진짜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저는 전도사님이 하나님의 목회자라고 믿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뭐라 말씀하실까요?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T이신게 틀림없습니다. 감동적인 고백을 들었는데 그 와중에 아직 배신자가 남아있고 마귀라고 말씀하시다니요. 그런데 사실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남아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 당시에 ‘가까운 사람에게 버림 받았다. 배신을 당했다.’는 큰 불명예였다. 그 때 사람들은 너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이면 배신이나 당하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에게 큰 불명예를 줄 사람을 아시면서 놔두십니다. 자신을 배신할 자를 열두 제자 중에 두십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마 13:29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29 NKRV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믿지 않는 자를 뽑으려다 믿는 이들까지 뽑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중요한 믿음의 순간에 그들의 믿음이 들어날 것이고 마지막날 심판 때에 예수님이 다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교회나 그리스도인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을 가만히 두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배교자, 믿다가 떠나는 자들로 인해서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망과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님을 안 믿고 떠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도 주변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에 남아 있어도 믿음 없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베드로처럼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중요한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릴 분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그분의 말씀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 오늘 이런 실천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세상의 말을 들을 때 흔들리는 이유를 적어봅시다. 그리고 내가 흔들리는 이유가 어떤 말씀을 몰라서인지? 혹은 아직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인지 적어봅시다. 그 다음에는 사역자분들을 찾아가 말씀으로 지도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주변 사람들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는 자들이 되지 않고 베드로와 같은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는 사람들과 남는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욕심을 해결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남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서 진리를 주신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남는 자들에서도 배신자는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버릴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교회난 그리스도인 안에서도 믿음이 없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도, 세상이 아니라고 말해도,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믿음 없이 행동하고 말해도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 믿으라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말씀합니다. 여러분. 갈수록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이 아니라 말씀만 믿고 의지하는 축복교회 성도들이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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