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1-10절 “예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 인자가 온 것은?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07 viewsNotes
Transcript
모순 - 키 작은 삭개오와 뽕나무?
삭개오하면 뽕나무가 기억이 난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들린다.
누가복음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그러자 그 동네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 나가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구경하는데 삭 개오가 나쁜 사람이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궁금한 마음이 들 었다. 구경은 하고 싶은데 이미 사람들이 길가에 가득해서 예수님을 볼 방법은 없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
삭개오 - 뽕나무, 세리, 키 작은 사람
이미지1[돌무화과나무]
누가복음 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그런데 마침 그때 그 나무 옆을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삭개오를 보시고 우러러보시면서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 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절). 그 말을 들은 삭 개오가 깜짝 놀라서 내려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집으로 맞아들이는데 삭개오 가 예수님에게 말씀을 드린다. 뭐라고 말씀을 드리는가?
누가복음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 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8절).
그러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삭개오가 키가 작아 서 나무에 올라간 것인가? / 열심히 주님을 찾는 사람이 됩시다.
또 본문에서 구원이 먼저인가 아니면 속여 빼앗은 것 을 돌려주는 것이 먼저인가? / 구원받으면 소유를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속인 것이 있으면 갚아야 합니다. 라는 메시지일까요?
키가 작아 서 나무에 올라간 것인가?
구원이 먼저인가? 나눔이 먼저인가?
갈등 - 구원이 먼저인가, 나눔이 먼저인가
오늘 본문은 삭개오가 자기 재산을 처분한 다음에 그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구 원이 삭개오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나오고 있다
누가복음 19:9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그러면 그것만 놓고 보면 결국 삭개오가 회개하고 재산을 내어놓은 것이 구원을 가져온 결과가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구원이 참 간단해 보이기도 한다.
자기가 어떤 양심 에 가책을 받을 만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다음 후에 그것이 문제가 되면 재산 중에 얼마를 사회에 환원한다. 그러면 그 죄가 없어진다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삭개오도 왜 재산을 반만 돌려주겠다 그랬는가? 기왕에 재산을 돌려주는 것으로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했으면 가지고 있는 것 모두 다 돌려주면 구원이 더 확실하게 더 크게 임하는 것 아닌가? 또 네 배로 갚는 것이 아니라 다섯 배, 여섯 배로 갚으면 또 왜 안 되는 것인가?
그러면 반대로 본문이 의도하는 바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에 그 사람이 그때까지 모은 재산의 일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나눠줘야 하는 것인가? 오늘 본문을 이렇 게 보고 있으면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기가 쉽다.
게다가 예수님은 세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왜 예수님은 세리라는 직업은 나쁜 것이니 그것 그만하고 당장 다른 좋은 직업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세리라는 직업이 나쁜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누구라도 다 알 수 있는 그런 문제였는데 예수님은 그 사실에 대해 서 단 한마디도 말씀이 없으셨다.
예수님의 생각이 어떠한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오늘 본문 에서 예수님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통해 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강조하려고 하셨 는지를 집중해서 살펴볼 때에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전환 -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삭개오 이야기에서 주로 들어온 것은 키 작은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내용이다. 사실 뽕나무도 아니다. 개역개정판이 고친 그대로 돌무화과나무이다. 다만 잎사귀가 뽕나무하고 비슷해서 그렇게 불렸다. 그 나 무가 주제가 될 수 없고, 키가 작은 것도 주제는 아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구원 하시기를 원하셨는가가 중요하고, 예수님이 원하신 사람이 삭개오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누가복음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물론 삭개오가 그 나무에 올라가기 전부터 이미 회개할 준비가 어느 정도 되 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올라갔을 것이고, 예수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부르시니까 그 순간 예수 님을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가복음 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또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신 순간도 놀라운 사건이다. 삭개오를 만나보지 못하셨던 예수님이시지만 그 이전에 모든 것을 아셨던 것처럼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 사실도 삭개오의 마음을 움 직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체험한 순간 마음이 흔들렸고 내려오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급하게 내려와서 ‘즐거워하며’ 영접했다는 구절이 그 마음을 표현해 주고 있다.
누가복음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이제까지 우리는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부차적인 점들 을 강조해서 배웠다. 그래서 삭개오처럼 비록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예수님을 가까이하고자 하면 구원을 얻게 되고, 회개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면 예수 님의 칭찬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삭개오의 행동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누구에게 구원이 임하느냐, 예수님이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사람들이 누구이냐 하는 것이다.
확인 - 예수님이 고른 사람이 삭개오
* 예수님이 누구를 구원하시는가?
삭개오가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찾으시는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
삭개오가 한 행동은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보여 주는 것에 불과하다.
많은 재산을 돌려준 것이 회개의 열매이기 때문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삭개오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하시는 것은 일차적으로 구원얻을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점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은 세리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다.
죄인을 찾으십니다.
그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수군거렸다(7절).
누가복음 19:7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그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세 리가 똑같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세리는 욕하면서도 바리새인을 욕하지는 않 았다.
바리새인은 한마디로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기에 비판하는 사람이었지 비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금식과 십일조와 같은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으면 칭찬 받을 만한 일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 바리새인은 칭찬받을 만한 사 람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찾으러 오신 사람은 삭개오와 같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손가락질하 던 사람들도 찾으러 오셨다.
그곳이 어디든 예수님이 찾아오신다.
마가복음 2:17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1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 예수님을 맞이할 때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이 구 원하시려고 마음먹으시면 아무리 동네 후미진 곳, 골목 구석에 있어도 찾아오 실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낮은 자라 여기는 구원받은 사람의 자세를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눈에는 어떤 사람으로 비취었든지 예수님 눈에는 죄인 아닌 사람이 없고 예수님 눈에는 구원받지 못할 사람 또한 없었다.
“속히 오너라.”라는 구원의 부름이 있을 때에 급히 달려가 고, 그렇게 급하게 달려가서 예수님을 맞이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여 주신다. 찾아오신 은혜이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스스로 낮은 자라 여기는 사람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즐거움으로 안에 모시기를 원하는 사람
이미지2(전도폭발 임상세미나)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셧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찾으십니다”
그 찾아주신 은혜가 우리광명교회를 통하여 새생명잔치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셧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새생명잔치”에 가장 기쁜 선물은 바로 한 생명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통하여 그 생명이 주꼐로 돌아오는 그 역사가 이번 새생명잔치 가운데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