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의 상황을 초월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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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12절
장 1-12절
이 본문은 많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본문이지만, 오늘은 “믿음”이라는 것을 초점으로 나누기 원합니다. 본문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믿음”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히브리서 11 장, 소위 믿음 장이라고 하며, 믿음의 선진들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진 장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이 말씀은 아주 놀라운 진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 두번째, 믿음은 무엇을 믿는 것인가?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분명 나의 삶,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번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며 찾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맥상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바로 하나님 그분 자체입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 무엇인가 물건을 찾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상(보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물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찾는 자들에게 필요한 상은 하나님 자신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바로 그분을 향한 확신과 신뢰입니다. 믿음입니다!
여러분, 매일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그분이 반드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며 응답하신다는 믿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가버나움에 오시자 수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일으키신 놀라운 치유의 소식들을 가버나움 사람들도 들은 거죠. “아니 글쎄. 그 나사렛 예수가 우리 동네에 다시 왔다네.” “그래? 그 병자를 고친 그 사람? 어서 가보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예수님이 머무신 집 대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별의별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기적이 진짜 인지, 그의 얼굴은 잘 생겼는지 어쩐지, 아마 그 군중들 가운데에는 병 낫기 원하여서 스스로 걸어온 병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중풍병자와 그 4명의 사람(친구)에게도 들렸습니다. 본문의 상황으로 볼 때, 환자는 중풍병이 심하여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자 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아는 자였던 네 사람(친구)들은 가까이서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아픔을 아는 자들이였습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네 사람이 뭉쳤습니다. 이동식 침상을 만들어서 사람을 비집고 비집어서 예수님이 계신 곳 근처로 갑니다. 근처에 갔더니 이미 사람들이 많아 집에 들어갈 수 없자, 그들은 그 난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냥 돌아가자 하지 않고 옥상에 올라가 지붕을 뚫고 침상을 기어코 중풍병자를 기어코 예수님 앞에 내려다 놓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붕이 걷혀지면서 하늘 위에서 무엇인가 내려오니.
다행인 건, 그 장면을 본 예수님은 그들을 네 이놈들 누가 남의 집을 이렇게 허무느냐! 예의 없는 것들!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리고 상을 들고 일어나 집으로 가라! 하시니 치유 받아 일어나게 되며 그 곳에 있던 군중들은 다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삶에 이런 놀라운 치유,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한 영혼이 죄 사함을 받게 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네 사람의 행위에 주목하기 원해요. 네 사람의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는 히브리서 11 장 6절의 말씀의 성취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믿음은 단순히 말로만 하는게 아니라 나의 발을 움직이고, 손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 중풍병자의 아픔과 고통을 멀리서 “낫도록 기도할게” 하는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픔과 고통에 직접 참여하는 긍휼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나을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군중이라는 장애물이 가로 막고 있죠. “아유, 사람이 너무 많네. 접근 조차 할 수 없겠어.” 하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옆으로 돌아가 지붕을 뜯어내고 구멍을 내고, 줄에 매달아 중풍병자를 내렸습니다.
이들의 불도저 같은 믿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네 명의 사람은 스스로 구원자 앞에,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는 자를 구원자 앞에 나아가게 하는 것 역할을 행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 믿는 성도들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고린도후서 11:2 바울이 성도들과 예수님 사이에 중매한다는 표현처럼, 네 사람은 스스로 나아갈 수 없는 작은 자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위치에 서야 겠습니다. 특별히 한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인 것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한 영혼이 주께 나아와 죄사함 받게 되는 일은 공동체 안에 있는 긍휼이 있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긍휼함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합되는 일 그리고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 그래서 스스로 나아올 수 없는 작은 자들이 물리적인 아픔에서 치유되는 것을 넘어 모든 죄 사함을 받는 일들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