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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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1. 간음이란 무엇인가(27절, 잠7:7)?
간음은 결혼의 기준을 알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결혼 전에 성적 관계나 결혼 후에 남편이나 아내 이외의 다른 남성이나 여성과 성적 관계를 나누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본론
본론
2. 성욕에 대한 두 가지 극단과 예수님의 간음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요(28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동등하면서도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만드셨습니다.
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주신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남성과 여성입니다. 성적으로 다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다르게 주신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녀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친밀감,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면 두 가지 극단에 빠집니다.
하나는 금욕주의, 성을 완전히 금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쾌락주의, 성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입니다.
금욕주의는 성생활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목적상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의 삶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라도 일시적으로 부부간의 성생활을 금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 원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쾌락주의입니다.
쾌락주의는 정해진 부부 사이 이외의 성관계를 자유롭게 용인하는 태도입니다.
결혼 전이라도 원하는 사람끼리 성관계를 받아들입니다.
결혼 후라도 기회만 있으면 외도를 하려고 합니다.
3. 쾌락주의 극단은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롬 1:26-27)?
쾌락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닌 동성애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성이 아니라 내가 성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일반적으로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실제적인 행위를 보통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행동의 간음 뿐만 아니라 마음의 간음까지 금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음욕을 품고 이성을 대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마음 속의 상상을 금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윤리의 핵심입니다. 행동 윤리와 마음 윤리.
죄는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결론
결론
4. 간음하지 않고 성욕을 다루는 세 가지 방법은 무엇인가요(29-30절)?
성욕은 불과 같습니다. 불은 기름을 부으면 더욱 불길이 커집니다.
불 붙은 기름에 물을 끼얹으면 더욱 거세집니다.
성욕은 죽을 때까지 완전히 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욕의 불을 적당하게 잘 조절해야 합니다. 절제
그렇다면 성욕의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는 눈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 외설적인 장면을 보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성욕에 기름을 붓습니다.
눈을 통해 텔레비전, 비디오, 영화, 연극 등의 외설적인 장면에 우리의 눈이 노출되면 될 수록 간음의 죄를 지을 확률은 높아집니다.
간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눈의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둘째는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서입니다.
성욕은 이성간의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성욕의 불에 기름을 붓게 됩니다.
성욕은 점점 더 깊은 신체적인 접촉 욕구를 갈망하는 방식으로 증가해 갑니다.
처음 손을 잡으면, 키스를 하고 싶고, 키스를 하면 애무를 하고 싶고, 애무를 하면 깊은 성적 관계를 맺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부부가 아닌 남녀 간의 육체적인 접촉은 피해야 합니다.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셋째는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 속의 생각과 보는 것을 정결한 것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은 불을 잘 조절하는 방법입니다.
혼자 있을 때, 잠시 쉴 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성을 대할 때에 이성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대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등하고 동일한 인격으로 만드셨습니다.
남녀 사이의 교제가 성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
부부 사이가 아닌 모든 이성 간의 관계는 동일한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부 사이가 아닌 모든 남녀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5. 이혼이 유행인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시나요(31-32절)?
오늘날 권위 없는 결혼식을 추구합니다.
결혼에 신적인 권위가 없기에 스스로 결혼해서 스스로 이혼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신 신성한 제도입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언약안에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독립적으로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람이 함부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와 하나님의 법을 깨고 소중한 결혼을 변질시켜 오고 있습니다.
결혼이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불행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엑셀 부부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너무 쉽게 이혼으로써 불행한 결혼 생활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너무 쉽게 결혼하고 너무 쉽게 이혼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흔한 남매가 아니라 흔한 이혼이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가족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혼하자. 이혼하면 될 것 아니야”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에는 정말 많은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구약에서 이혼을 다루는 유일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첫째, 이혼이 가능한 경우는 수치 되는 일이 발견되었을 때입니다.
둘째, 이런 상황 속에서 이혼을 원하면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합니다.
셋째, 이혼한 전 사람과 다시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이 율법은 이혼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혼을 엄격하게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사소한 이유들로 수치 되는 일을 만들어서 이혼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랍디들은 두 가지 학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혼의 사유가 되는 수치 되는 일이 무엇인가?
삼마이 학파는 보수적이어서 ‘간음’이 수치 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힐렐 학파는 다소 개방적이어서 ‘확대 해석’을 합니다. 음식을 망쳤을 때, 시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을 때, 길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할 때, 자녀를 잘못 양육할 때, 심지어는 다른 여자가 자기 아내보다 더 예뻐 보일 때로 해석하여 남편이 원할 때는 아무 때나 이혼할 수 있는 조항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힐렐 학파들을 더 좋아하여 이혼 가정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리스인들, 로마인들의 이혼관은 어땠을까요?
그리스의 남자들은 부인 이외에 누구와도 마음대로 성적인 쾌락을 즐겼습니다.
고린도를 예로 들면 신전의 여 사제들이 밤에는 창녀로서 공식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고린도로 여행시켜서는 안 된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로마는 그나마 건실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그리스 제국을 점령하면서 달라졌습니다. 그리스 문화에 물든 로마는 이혼이 아주 흔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상류층 사람들은 평균 3번씩 결혼하고 이혼을 반복했습니다.
로마의 모습은 오늘날 서구 문화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문화 속에서 이혼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원칙은 결혼은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나누지 못합니다.
두 번째 원칙은 이혼은 간음의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물론 이혼의 경우에 합당할 지라도 가능하면 용서해 주고 이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혼 증서를 써 주어야 하는 이유는 여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혼 증서가 없을 경우에 여인들은 자칫 간음자로 몰려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법률이 정한 이혼 사유를 보면 1. 외도, 2. 폭력, 3. 성격 차이의 갈등 심화, 4. 중독증후군, 5. 양간 간의 갈등 순서 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에서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대한민국 법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기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1. 외도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부정을 저지른 배우자가 회개를 한다면 성도들은 용서를 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이혼한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사랑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혼한 사람이 바로 우리의 가족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값없는 용서를 한없이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신비로운 연합으로 비유되는 결혼을 소중하게 가꾸어 가도록 기도하고 노력합시다. 결혼을 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가정과 결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