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15 새벽기도회: 마태복음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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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43-4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잘 시작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하신 설교인 산상수훈 중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에게, 이미 하나님 나라 를 소유한 복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에 대한 설교인데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깨닫고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산상수훈 중의 일부입니다. 산상수훈은 이렇게 살아가면 구원받는다는 설교가 아 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된 참된 복 있는 너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말 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시작은 팔복으로 시작됩니다. 이 미 복된 자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8가지 모습을 설명합니다. 8가지 종류의 사람을 말 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8가지 삶의 방향을 말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이미 복된 자는 ‘더 나은 의’를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인데 그것을 6가지로 설명하고 있고, 오늘은 그 맥락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하고, 가장 고도의 정점이며 본질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더 나은 의’의 6가지의 대표적인 구조는 “~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 다”입니다. 이 때 나는 ‘예수님’입니다. 잘못된 삶의 방향을 진리이신 예수님은 고쳐주십니다.
그것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입니 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오히려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악했습니다. 마치 구약이 43절 과 같이 말씀하신 것처럼 해석하여 그것을 따릅니다. 그러나 구약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 다. 43절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19:18절은 다르게 말씀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 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얘기했던 ‘이웃’은 누구일까요? 유대인들은 이웃을 민족적 개념으로 축 소시켰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의하면 오히려 환난 당한 자, 어려움을 당한 자에게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동족만을 ‘이웃’으로 인정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오 늘 제목처럼 이들의 논리를 뛰어넘어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이웃’의 개념을 축소시켰다면, 예수님은 ‘이웃’의 개념을 ‘확장’시키십니다. 예수님의 이웃에는 ‘원수’와 ‘박해하는 자’가 포함됩니다. ‘원수’란 누 구입니까? ‘적대관계에 있는 자, 틈이 벌어진 사람’은 넓은 의미에서 다 원수라고 할 수 있습 니다. 박해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예전 성경에서는 ‘핍박하는 자’로 번역됐습니다. 핍박이라는 말은 한번만 괴로움을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닌 ‘계속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를 사랑하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이웃의 확장이 가능한 일일까요.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를, 한번만이 아닌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 나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된 이미 복된 자, 하나님의 백성만이 지킬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 삶의 지킬 수 없는 소망이거나, 계속해서 회개밖에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 이유는 바로, 말씀의 온전함을 보여주신,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그러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10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자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과 동일한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과 방향은 어떠한지 오늘의 말씀 앞에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원수와 박해하는 자를 ‘이웃으로’ 대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 봅시다. 첫 번째는 ‘사랑하라’입니다. 앞 맥락의 5가지 대조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전제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사랑’의 정석은 누구입니까?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성자 예수님께 맞추어 본문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 된 우리를 위 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온전한 제물 되시기 위해 우리의 모든 약함을 겪으셨습 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제물로 내어주어 죽으심으로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 들을 사랑하실 때에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참 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사라져 버린 현실 속에 진정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숙은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교회의 건물이 커져가고,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더하는 사랑’입니다. 원수와 핍박하 는 자까지도 이웃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결코 감성적인 고백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것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와 같이 이 사랑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아갑니다. 그러 므로 교회된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다름은 다른 탁월함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입장을 내려놓고 기꺼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소유 를 주장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랑을 입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 됐지 더하여 왜 기도하라는 말 을 하셨을까”를 생각합니다. 관계가 허물어졌을 뿐만이 아닌, 더 나아가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 말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가 가장 큰 사랑’의 측면으로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먼저는 진정한 사랑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전체구조의 맥락으로 볼 때 에 가장 중간에 주기도문이 위치합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복된 자로서 그리 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신 그 은혜로 말미암 아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지만 그 또한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보 여줍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붙 잡는 자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 로만 상대를 마음으로부터 사랑할 수 있으며 그 때에만 참 순종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기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는 가장 절정의 사랑은 기도임을 압니다. 한 신학자가 기도해야 하는 책임을 “절제의 절정”이라고 보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맥 락 상 이는 결코 기도만 하고 다른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순종으로서 기도 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순종을 보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45절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는 45절에서, 성부 하나님을 이미 ‘너희 아버지’라고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 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3문에서 예수님만이 성부하나님의 영원하신 참 아들이라고 지칭합니다. 더하여 소요리 문답 에서는 이러한 예수님을 믿어 그분과 연합될 때 그리스도가 누리시는 은 택을 받는데 바로 우리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 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45절의 의미는 그러한 순종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증명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본문의 마무리인 48절에 나와 있는 대로 “온전함”의 길,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 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왜나하면 바로 이것이 참 온전함인 하나님의 말씀에 진정으로 순종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의’의 6가지 비유의 가장 마지막이고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는데, 이것은 모든 순종의 근원이자 더 나은 의로 나아가게 되는 본질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으로부터 시 작하여야 하며, 그 사랑은 우리의 순종을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사랑이 식어져 가는 시대 속 에 세상은 화려한 방법이 아닌 참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화려함보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나의 입장을 기꺼이 내려놓는 사랑으로, 내가 가진 것을 내어놓 는 사랑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는 여러분의 순종의 걸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할 때에, 복음 의 능력은 나타나며 그러할 때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 나라 를 소유한 이미 복된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잘남을 통해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 심 가운데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앞에 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비로소 우리가 원수였음을 알게 되며, 우리가 더하는 사랑을 받은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죽어 지고 그리스도만을 더욱 붙잡음을 통해 우리의 이웃은 확장되게 되며, 우리의 사랑은 그리스 도와 같이 되어,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해 모든 이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될 것입 니다. 또한 기도할 때에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그분의 강함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미 받은 성도 여러분. 세상이 말하는 방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이 말하는 사랑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함’을 경험하며 나타내는 참 순종이 있는 이 가을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