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너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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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말씀
열 가지 말씀
편안하게 / 천천히
잊을만 하면 나타나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 느낌입니다. 기도해주셔서 자유교회 수련회도 은혜 가운데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쉬고)
오늘 십계명 중 1-2계명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십계명보다는 열 가지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열 가지 말씀이라 부를 때 하나님의 메시지가 더 분명하고 명확해지기 때문이죠.
십계명 그리고 열 가지 말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참 오해하지 마셔야 할 것은, 십계명이 틀린 명칭은 절대 아니라는 거에요.
성경에 여러 부분에서도 계명이라 나오기에 맞는 표현이에요.
하지만 성경을 더 자세히 보고 원어를 분석해보면, 계명이라기 보다 말씀이라고 표현될 때가 좀 더 많아요.
(쉬고)
계명!이라고 하면 먼저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오세요?
저는 조금 부담감으로 다가와요.
더군다나 십계명은 “하라” 보다는 “하지 마라”가 더 많기 때문에, 좀 더 차갑고 무서운 그런 부담감으로 다가와요.
(쉬고)
열 가지 말씀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오세요?
구약성경이 부르고 있는 좀 더 정확한 명칭은 열 가지 말씀인데요. 열 가지 말씀이라고 하면 계명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이 것들을 주실 때 이스라엘에게 강제로 주셨다거나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 라는 강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열 가지 말씀이 등장하는 19-22장을 보면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혹은 “명령하다”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아요.
오히려 “말씀하셨다”라는 표현이 10번이나 등장을 하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지켜라! 라고 하신 강제성을 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에요.
(쉬고)
20장 1절을 보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어요. 이 열 가지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사이에서 나온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드린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것들이라는거죠.
열 가지 말씀을 주시기 전의 장면이 19장 3-9절에 나오는데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장로들에게 전해요.
장로들은 모세와 함께 그 말씀을 이스라엘 전체에게 전달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은 이렇게 반응해요.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쉬고)
서로 간의 대화 가운데 서로 동의한 가운데, 언약의 규정으로 하나님께서 열 가지 말씀을 주신거에요.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성을 띈 말씀이 아니에요.
이스라엘의 고백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노예되었던 자신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그들을 광야로 데리고 오신 하나님께, 매일의 삶을 지켜주시고 은혜를 주고 계셨던 모든 것이 감사했어요.
그 고백의 결과로 열 가지 말씀이 주어진거에요.
(쉬고)
여러분의 삶은 어떠한가요?
사실 우리도 노예였잖아요?
죄의 노예. 죄 속에 살아가던 자들이 우리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죠.
그 것을 안다면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시간들이 분명 있어야 해요.
(쉬고)
그래야 이 열 가지 말씀이 과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것을 넘어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래야 이 열 가지 말씀이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어요.
(쉬고)
나랑 너
나랑 너
(PPT)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열 가지 말씀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세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
나는 너의 구원자이다.
너는 나의 백성이다.
(쉬고)
너는 나의 백성이다. 라는 이 표현을 들은 이스라엘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아요.
소름이 쫙 돋아요.
고대 근동 아시아에서 이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가능성 0%의 이야기거든요.
그 누구도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말인거에요.
이 당시에 신이라는 존재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신이 아니었어요.
왕과 귀족들의 신이었고, 자신들은 신의 대리자인 왕과 그를 보필하는 귀족들을 섬기는 역할을 해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신의 백성이라는 이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400년, 430년동안 노예였어요.
신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주셨어요.
그것만으로도 믿기 어렵고 너무 감사한데, 노예였던 자신들을 향해 “너는 내 백성”이야 “나는 너의 구원자야” 라 말씀하시는거에요.
“나는 너의 영원한 구원자가 될거야.”
“너는 나의 영원한 백성이야.”
(2초 쉬고)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세상의 전부였던 애굽을 완전 굴복시키신 그 하나님께서, 노예들의 신이 되겠다. 라는 하나님의 첫 말씀이 이스라엘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쉬고)
마치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정처럼,
은혜를 받아 가슴이 벅차 올랐던 그 때의 그 감정처럼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만 있으면 충분해! 라고 고백했던 그 때의 감정을 이스라엘이 느끼고 있는거에요.
(쉬고)
하나님의 이 고백을 들은 이스라엘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나를 구원해준 하나님이 나와 왕이야. 내 삶의 전부야”
어쩌면 그 때까지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라는 신은 나보다 모세와 아론과 더 가까운 신일거야. 그 분이 나같은 사람을 기억이나 해주시겠어?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이후, 하나님은 다른 누군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셨어요.
(3초 쉬고)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은 누구의 백성인가요?
여러분은 누구를 신뢰하고 있나요?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누가 있나요?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첫번째 두번째 말씀을 함께 살펴보기 전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열 가지 말씀들은, 그 것을 고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이거든요.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며, 그 은혜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선포되어진 말씀이 열 가지 말씀이에요.
(3초 쉬고)
(PPT)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왜 하나님은 ‘나 외에는’ 이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셨을까요?
아니에요.
히브리 원어를 잘 살펴보면 “나 외에도 다른 신이 있다.”라 말하지 않아요.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거에요.
“너와 나는 얼굴을 마주보고 살아간다.”
“나는 너의 얼굴을, 너는 나의 얼굴을 똑바로 봐야 한다.”
“너와 나의 얼굴 사이에, 너와 나. 너랑 나 사이에 다른 것들을 가져다 두지 마라”
한 마디로 우상을 만들지 마라!
(쉬고)
종교학자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찍어내는 공장”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어떤 모양을 만드는 것만이 우상 숭배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다른 것들이 들어온다면, 그래서 그 것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 것이 바로 우상이에요.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셔요.
“나는 너의 구원자이고, 너는 나의 백성이다.”
“나는 너와 얼굴을 마주 보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니 너와 내 얼굴 사이에, 너랑 나 사이에 그 어떤 것도 가져다 두어선 안된다.”
(쉬고)
우상 숭배를 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겨요.
(PPT)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요.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 막게 되는 것이 생긴다면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고, 그 분이 생각나지도 않아요.
여러분 지금 제가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제가 갑자기 기둥 뒤로 숨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기둥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말씀을 듣긴 할거에요. 그런데 집중하는 것이 어려울거에요.
목소리에만 집중하기엔 우리 주위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너무 많거든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엇인가가 끼어 들어오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 어려워요.
(쉬고)
(아내가 들으면 안되는데) 제가 고 3때 처음으로 연애를 했는데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그 여자 친구가 저를 2년 동안 쫓아다녔어요. 잘 만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고 3 남자반 4개가 있고, 1-3학년 여자반 6개가 있고 그 옆에 교무실 그리고 남자 화장실이 있었어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려고 뒷문을 열고 딱 나갔는데, 제 여자 친구였던 사람이 저랑 가장 친한 남자 친구랑 복도에 서서 포옹을 하고 있는거에요.
바람이 난거죠.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헤어졌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엇인가가 세워진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나지 않는다?
그 관계는 멀어져요.
언젠가 깨어질 수도 있구요.
(쉬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로 볼 수 있었다면,
하나님이 우리 앞에 계속해서 나타나주신다면,
여러분 하나님 앞에 다른 것을 가져다 두실 수 있으세요?
하나님이 내 눈 앞에 보이는데도, 무엇인가를 가져다 둔다?
관계를 완전 끊겠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겠죠.
(쉬고)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친밀하다. 가깝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고백하며 결단한, 하나님과 가까워진 이스라엘을 향해, 우리를 향해 선포된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여러 관계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다. 분명히 말씀하시는거에요.
저, 여러분, 우리 모두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첫 번째 말씀부터 요구 하고 계시는거에요.
(쉬고)
(PPT) 우상 숭배를 하면 생기는 두 번째 문제,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려요.
이스라엘은 지금 자유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어요. 400년 430년이라는 노예 생활을 끝났어요.
애굽의 어떤 신들도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지 못했어요.
애굽의 신들은 오히려 그들을 더 괴롭혔어요.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더 많은 것을 가져다 받치고, 시간을 드렸어요.
어쩌면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을거에요.
무엇인가에 매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자유가 사라져요.
온통 모든 신경이 그 곳에 가 있으니까 다른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거죠.
이것만 해결되면 끝날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그 문제가 해결이 되도 또 다른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3초 쉬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이유는 아주 분명해요.
죄에서 자유로움을 주시려고,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라고,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이 세상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너의 구원자되시니
다른 것에 매여서 스스로 괴로워하지 말라고.
우리를 구원해주신거에요.
(3초 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들이에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에요.
(쉬고)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서서, 그 분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아니 저는 누구 앞에 서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고, 누구를 중심 삼아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3초 쉬고)
솔직히 우상 숭배 재미있어요. 즐거워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면 되거든요.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라 여기면 진짜 편해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쉬워요.
체감상 기도 1시간 한 것 같은데 5분도 안지났을 때 느끼는 그 당혹스러움보다, (쉬고) 쉬면서 내가 좋아하는거 하면 시간도 빨리 가요.
(쉬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라면, 그 구원의 은혜를 아는 우리라면 그래서는 안되겠죠.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돌아봐야해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계속 해서 물어봐야 해요.
(쉬고)
예배의 자리에 나온 여러분 앞에
하나님을 만나러 나온 여러분 앞에 무엇이 세워져있나요?
(5초 쉬고)
그리고 우리
그리고 우리
(PPT)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차라리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라도 있으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쉬울 것 같고,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은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은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고대 근동의 모든 신들은 다 형상을 갖고 있었거든요. 눈만 돌리면 온통 우상들이었어요.
제가 예전에 스리랑카로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는데, 2-300m 간격으로 양쪽 길 옆으로 우상들이 서 있었어요. 심지어 생긴 모습들도 다 달랐어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러 갔는데, 제가 그 앞에서 우상들을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인도에서 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룸메이트가 자기 책상에 정말 많은 신상들을 세워놨어요. 신기하기도하고 조각의 디테일들이 달라서 그걸 한참 쳐다보면서 구경을 했었어요.
사람은 보이는 것에 약해요. 신상들을 구경하고 나니까 또 보고 싶은거에요.
다른 모양은 없나? 사람들이 믿는 이 신은 무슨 능력이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신상들을 좋아해서 우상을 숭배했다. 이런 이야기는 절대 아니에요.
(쉬고)
보이지 않는 신을 의지하며 끝까지 신뢰하는 것 진짜 어려워요.
차라리 보이면 들고 다니면서 의지하면서 믿기라도 하겠는데 보이지 않아요.
만들지도 말래요.
(쉬고)
형상을 만드는 것이 당연했던 그 때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꽤나 충격이었어요.
심지어 형상이나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거나 절하다가 걸리면 3-4대까지 벌을 주겠다고 말씀하세요.
왜 이렇게 쌔게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쉬고)
(PPT) 첫째, 고대 근동에서 우상을 만들었던 이유를 아셨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다양한 우상을 만들고 그 신상을 조각 했던 이유는, 신들을 조종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풍요를 위해 신을 지배하고 조종하기 위해서 조각을 했어요.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어요.
풍요의 신을 상상해서 조각하면, 그 신은 이 조각상에 들어오게 된다.
어떤 신이던 우리가 조각하면, 그 조각을 벗어날 수 없다.
신들을 한 장소에 묶어 두기 위해 조각을 한거에요.
인간의 손에 붙잡혀서 아무 것도 못한다면 그 것은 더 이상 신이 될 수 없죠.
하나님은 우리가 임의로 붙잡아 둘 수 없는 분이에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형상을 상상하여 만든다?
처음엔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겠지만 점점 그 것을 통제하려 들거에요.
(쉬고)
(PPT) 둘째,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형상을 주셨어요.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서 인간들에게 주셨어요.
우리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분들을 한번 볼까요? 앞 뒤로도 볼까요?
하나님의 형상 잘 보셨지요?
(PPT)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분의 모양대로 지어진 존재들이에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형상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거기에 매이지 않기를 바라셨어요.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가득하기에,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라 말씀하고 계신거에요.
(쉬고 웃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고 있어요.
저와 여러분을 통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이 세상에 보냄 받은 분명한 하나님의 형상들이에요.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닮은 형상이 필요 없으셨던거에요.
(쉬고)
첫 번째, 두 번째 말씀의 의미를 알았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PPT) 첫째,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두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결단하며 선포하는거에요.
우리 한번 읽어볼까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두지 않겠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두지 않겠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두지 않겠다.”
지금 여러분은 나 자신에게, 옆 사람에게, 우리를 넘어 뜨리려는 마귀에게 그리고 나의 전부 되시는 하나님에게 선포한거에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두지 않겠다.”
꼭 기억하세요.
(쉬고)
(PPT) 둘째,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찾는거에요.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서로를 돌아보고 연락하며 섬겨주세요.
내 옆에 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이 정신을 단디 차리고 잘 살아가고 있는지 서로 돌봐주세요.
한마음교회라는 이름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한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형상들이 계속해서 모이는거에요.
(쉬고)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실거에요.
“나랑 너 사이에 아무 것도 두지 않기를 바래”
“나의 형상을 닮은 모두가 사랑 가운데 교제하고 서로를 섬기고 돌봐주기를 바래”
(쉬고)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번 한 주, 앞으로의 우리 신앙의 여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더 깊은 사랑과 은혜의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