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6:13-24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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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이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쓰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성도들을 격려하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3-14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여기서 ‘남자답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남자처럼 힘을 쓰는, 남자처럼 강한 상태를 생각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주님 다시 오실날을 기다리는 며 준비하는 삶, 믿음으로 굳게 선 상태’를 의미합니다.
새번역으로 보면 5개의 명령어로 되어 있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만큼 더 확실한 사랑은 없습니다. 따라서 남자답다는 것은 믿음의 실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뿌리내린 삶을 뜻합니다. 굳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남자답다는 것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말, 사랑으로 하지 않는 조언, 사랑으로 하지 않는 비판, 사랑으로 하지 않는 봉사와 헌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녹아있지 않는 삶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남자다움의 모범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신랑되시고,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남자다움의 본이 됩니다.
지금 바울은 어린아이와 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이제 너희들도 예수님처럼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한다고 비유적으로 당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스데바나의 집’을 거론합니다.
15절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장 16절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스데바나는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때 복음을 들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스데바나가 아닌 스데바나의 집이 고린도와 아덴을 아우리는 아가야 지방의 첫 열배라고 이야기했을까요?
여기서 집은 – 스데바나의 가족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여 아가야 지방의 첫 열매가 된 스데바나의 가족들에게 바울은 세례를 줍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가 고린도교회의 분쟁을 야기하자 그는 더 이상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 외에는 세례를 준적이 없다” 라고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스데바나의 가족은 다음과 같습니다. 17절입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당시 신분과 계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을 구분하였는데, ‘브드나도’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된 노예에게 붙여지는 이름이고, ‘아가이고는 현재 노예 신분인 자에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을 모두 스데바나의 가족이라 부릅니다. 무엇때문일까요? 스데바나가 노예로 부리던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동역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바나는 항상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교회와 성도의 필요를 살피고, 그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바나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섬기는 자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거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아굴라와 브리스가입니다.
19절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바울과 아굴라 부부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고린도에 이주한 것이 아니라 각각 쫓겨나서 추방당한 채 마치 우연처럼 고린도에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세 사람은 평생 복음의 동지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만남을 통해 고린도교회를 세우실 계획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세 사람이 기거하던 집, 낮에는 천막을 짓고 밤에는 말씀을 공부하던 아굴라의 집에서 고린도교회가 시작됩니다. 아굴라의 집에서 매일 밤 바울을 통해 가슴이 울릴 정도로 놀라운 말씀의 신비가 풀어졌고, 이 소문이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모여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입니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가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로마서 16장 3,4절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이 맺은 풍성한 선교의 열매는 결코 홀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전면에 배치하시고 그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섬김과 헌신과 충성을 통해서 복음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때론, 복음을 전하느라 자신의 몸도 돌보지 못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의사인 누가를 붙여주시기 하셨습니다. 누가는 바울 곁에서 그의 병을 치료해 주었고, 그의 행적을 꼼꼼히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부족하고 엉성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만남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 메시지를 전합니다. 22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입니다. 이 고백, 이 짧은 한마디에 바울의 인생의 모든 과정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고난, 서러움, 눈물, 한숨, 억울함...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행복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땀 흘릴 때,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다]
잠언 25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말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추수하는 날, 얼마나 일이 많겠습니까? 모두들 얼마나 많은 땀을 쏟겠습니까? 그때 시원한 얼음 냉수는 큰 힘과 격려가 될 것입니다. 깊은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마치 이 얼음 냉수와 같은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온 삶으로 목마른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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