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2:1-12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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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장 1-12절
고린도전서 12-14장의 주제는 성령과 은사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고, 그 결과 성도들은 저마다 하나씩 은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령한 것을 더욱 추구했고,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도 취급도 하지 않는 영적 엘리트주의에 깊이 빠져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은사가 그들의 자랑이 되고, 계급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고린도교회는 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받은 사람은 어깨에 힘주고 다니고,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움츠리고 다니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오히려 교회의 분쟁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먼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과거 모습을 상기시켜 줍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당시 고린도 지역에는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자신의 경쟁자를 저주핼 것을 신원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지금 그 풍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가를 저주하시는 분이라고 오해하면서 주님께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저주해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물면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고백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주님의 종임을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종은 다른 말로, “노예”입니다. 주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은사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습니까? 모두 성령에서 비롯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사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모두 한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헬라어 ‘은사’ ‘카리스마’는 ‘카리스’ - “은혜‘에서 출발합니다. 그 뜻은 ”선물“입니다. 우리의 의지, 우리의 동기, 우리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은사는 크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은사와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은사로 나누어 집니다. 만약 구원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은사라면 방언, 예언, 치유와 같은 은사는 후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공기와 물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다 주어집니다. 그런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물은 선택적으로 주십니다.
4-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말씀 가운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다시말해,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또 은사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지닙니다. 모든 은사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통일성을 지니고, 그 종류가 여러 가지라는 점에서 다양성을 지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궁극적인 이유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까지 조국교회는 은사를 계급으로 여기거나 자신을 자랑하는데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시지만, 우리가 그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을 때 거두어 가시는 분이시기도 하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절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여기서 ‘지혜의 말씀’은 단순히 성경 말씀이라기보다는 어떤 내용을 선포하거나 전달할 때의 능력으로 해석하는게 맞습니다. 연설과 담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생생하고 입체감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사의 차이입니다.
한편, ‘지식의 말씀’은 주로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통찰력과 논리력을 의미합니다. 뒤이어 9절에 믿음의 은사와 치유의 은사가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믿음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주권 가운데 열정을 가지고 공동체를 하나로 만들고 격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모두 바울과 모세 같은 주연이 되려고 합니다. 바나바처럼 조연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나바가 있는 곳에는 항상 격려와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치유의 은사는 원문에서는 복수형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병 고침의 은사와 역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10절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 하나입니다.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무슨 신비한 능력을 주시는 분, 마치 무당과 같은 분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은사와 많은 이적과 치유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은사들은 결국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방언도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지금까지 고린도전서 12장에 등장하는 은사들을 짧게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은사가 한 성령으로부터 나온것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장 11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C.S 루이스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작업실이다’ 말했습니다. 작업실은 작가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그분의 목적대로 빚어 가십니다.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라는 말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나누어 주시는 것을 맡은 사람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계급이 될 수 없습니다.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 나에게 주신 은사들을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30,31절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놀랍게도 바울은 은사를 이야기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더 큰 은사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사입니다. 방언이나, 치유의 은사나, 통역의 은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의 은사는 우리 모두가 사모해야 하고, 우리의 공동체 가운데 꼭 필요한 은사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은사들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이끄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여전히 선한 길로 우리의 교회를 이끄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역과 다양한 공동체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따라서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모습도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교회로, 한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은사를 통해 그렇게 세워가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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