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0-17 4 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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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10-17절
<고린도 사회와 교회의 성격>
바울이 찾아가서 복음을 전한 고린도라는 도시는 매우 특이한 도시였습니다. 거기에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성격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배경과 기질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다른 특별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좁은 반도에 위치한 자연적인 항구도시로, 동과 서를 잇는 무역 중심지였습니다.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노예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하나의 국제도시로서 헬라 사회와 로마 식민지의 전형적인 도시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의 구성원은 로마인과 헬라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시리아와 애굽과 소아시아에서 온 동양인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 모든 그룹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종교 신앙과 풍습과 종교 의식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종교적으로 혼합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파당으로 갈라진 교회>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대속하셨다고 하는데 그 십자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 있습니까? 지난 과거의 형틀입니까? 아니면 구원의 도구입니까? 아니면 목의 장식품입니까? 믿음의 지표입니까? 미련한 것입니까 아니면 능력입니까? 우리는 이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본문은 참 많은 문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악이 극심하고 종교적으로도 혼합주의에 빠져 있던 상업도시 고린도에 교회를 세운 뒤 몇 년이 지난 후 세속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던 때 교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첫 부분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서신을 보면 고린도 교회가 마치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가 필요한 방식으로 믿으려는 사람들이 했던 일은 파벌을 만들어 분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 걸기는 했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으레 이런 분쟁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적어도 네 개의 파벌이 있었습니다. 바울파는 설립자 중심에 서 있는 주류로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옹호했습니다. 아볼로파는 구약에 능통한 웅변가 아볼로를 내세워 뭉쳐진 지적이고 이성적인 파벌이었습니다. 게바파는 베드로를 앞세워 정통성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유대인 무리들이 핵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파도 있었는데 이들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고 예수님만 따르겠다며 또 하나의 파벌을 만들었습니다.
고전 1:11-12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주님만을 섬겨야 하는 성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지도자들을 앞장세운 채 바울 파, 아볼로, 파 등 4개 파벌로 나뉘어 서로 치고받고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분쟁은 심해지고, 그 기간도 길어지다 보니 고린도교회 성소들에게 영적인 피로감이 몰려 왔고 결국, 그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아주 중요한 원리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녀인 그들을 사랑하셔서 바울과 베드로와 아볼로를 부르셨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들을 영웅처럼 생각했습니다. 이들을 고린도교회에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섬기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당파를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해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첫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나뉘었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역설적으로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볼로파든, 게바파든, 모두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 충분히 다른 의견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회사는 직원의 능률을 따져서 성과가 없으면 잘라 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칼에 손 끝을 살짝 베어도 온 몸이 아픈 것처럼, 누군가가 아픈 자가 있다면, 그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누군가가 뒤처진다면 기다려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경쟁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틀렸다”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 역시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다 듣었습니다. 그 역시 그들을 향해 틀리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너희가 어리다” 라고 말합니다.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어리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어리다는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함에 이르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중이시라는 것입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로 고린도교회 성들에게 완료형으로 “너희는 틀렸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어리다고 진행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십가가에 못 박혔느냐? 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울 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한 질문입니다. 바울을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이 누구냐?” 질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했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 속으로 세례를 받아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칭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반드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부한자나 가난한자 그리고 높은 자나 낮은 자 모두가 십자가에 자신을 비춰야 합니다. 이럴 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십자가를 알 때,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를 통해 나의 죄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장 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의미를 잊은 채, 교회가 경쟁과 분쟁이 난무한 공동체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진노의 자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중심으로 모여 서로 당파를 짓기도 하고 분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합니다.
셋째,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라고 묻습니다. 바울은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바울은 몇 사람에게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찬식에서 “비록 세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분은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라는 수식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세례는 구원의 증표일 뿐,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서 그분이 이끄시는 목적지를 향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구원의 증표인 세례를 율법화 시키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를 자랑하며 그것을 계급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나의 모든 영역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데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지금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람을 중심으로 모여 당파를 짓고 분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정식으로 임명하고 결정하는 조직 외에 어떤 사조직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이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한 몸, 한 지체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님 오시는 날까지 주께서 명하신 일들을 힘써 협력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야 가길 소원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주신 이유요. 우리가 가야할 방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