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12-20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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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12-20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적인 사고의 틀을 가지고 복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적 사고는 이원론적 사고로부터 출발합니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 땅에 더러운 육신을 가지고 오셨는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은 신령하고, 육은 더럽기 때문에 영적인 것만 중요하게 여기자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고린도교회에서 음행의 문제를 죄로 여기지 않는 성도들의 태도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 우리는 한 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표현할 때, 복수형으로 쓰지 않고 단수형으로 씁니다. 결국 예수님과 우리는 한 몸이니 만일 우리의 몸으로 죄를 지으면, 예수님에게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이라고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7절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바울은 지금 윤리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영지주의자들이 가졌던 육체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음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육체로 죄를 짓는 것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몸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그 과정에서 창기와 몸을 섞는 죄까지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온 도시에 퍼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단호하게 우상숭배와 음행은 분명한 죄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부활 이야기를 꺼내듭니다.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되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병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슨 말입니까? 생명의 주권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몸이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한 몸이 된 우리가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일이며, 동시에 그분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관계는 죄를 합리할 때, 무너집니다. 죄는 사단이 우리에게 심겨 줍니다. 사단은 가장 먼저 말씀의 가치를 속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할 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꾀일 때도 사단은 말씀을 살짝 비틀어서 진리를 속였습니다. 결국 악한 영과 진리와의 싸움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교묘한 논리는 오늘날 교회 안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육체는 귀합니다. 예수님이 육체의 옷을 입고 부활하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훗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영은 육체와 함께 다시 부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온몸과 영이 진실되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값으로 산 것’ 이라는 표현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너희 몸”은 “성령의 전”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복수 명사이지만, “몸”은 단수로 사용했습니다. 문법적으로 둘 다 복수형으로 쓰든지, 아니면 단수로 사용해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한 몸으로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몸은 “헬라어로 ”소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몸이라고 사용할 때, 육체를 의미하는 ”사륵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바울은 여기서 ”소마“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특별히 이 단어는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같이 사용하는데, ”함께 지체가 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인격적인 우리의 삶 전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으로 죄를 짓는 것은 단지 사라질 우리의 육체다. 그러니 우리와 상관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건 우리의 몸이 짓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영과 육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오늘도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사’중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지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미완성작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간다”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이 점점 확대됨을 의미합니다.
성화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이의 대문 앞에서 늦은 시간까지 장미꽃을 들고 있을 수 있는 열정이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밤새 대문 앞에서 장미꽃을 들고 있는 것을 사랑으로 오해합니다. 순서가 틀린 것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은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성령의 거룩한 전이 되어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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