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9:11-14 그리스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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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 11-14절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바울은 9장을 통해 끊임없이 논란이 된 사도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사도권 문제는 어쩌면 바울에게 있어서 평생 가시와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시비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직접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도한 자를 사도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자격을 조건을 갖추지 못한 바울은 가는 곳마다 사도권을 의심받기 시작하였고, 특별히 지식층이 많이 모인 고리도교회는 더 민감하게 이 문제를 다루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큰 괴로움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오늘날 목사님이 받은 안수가 가짜라고 한다면, 그 문제 자체가 너무나 힘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언제 사도가 되었습니까?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사도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으로 향했던 이유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가말리엘 문하의 대학자로서 구약성경을 철저히 연구하고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중에는 에스겔과 다니엘처럼 묵시로 쓰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묵시는 종말과 심판, 그리고 구원과 메시아에 대한 것들을 글로, 시적표현으로 묘사한 책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면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행 22:7 말씀을 듣는 순간, 그는 곧 바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음성은 “주님”의 음성이구나!
지금까지 머리로만 알았던 말씀이 그의 온 몸을 관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 너는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나의 택한 그릇이라” 명령하셨습니다. 정확하게 사도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장 8-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열두 사도 가운데 속하지 않았지만, 바울은 분명 사도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표현대로, ‘만삭되지 못한 자’ 같은 모습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앞장서서 교회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가 어느날 갑자기 사도가 되었으니, 가는 곳마다 사도권에 대한 시비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악착같이 주장했을까요?
왜냐하면, 그가 땀 흘려 가르친 복음이 무너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질 것이고, 그로 인해 성도들이 영적인 손실을 입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사도권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입니다.
9장 2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쳤다” 라는 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사도로서 인쳤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이 만약 가짜 사도라면 어떻게 고린도교회가 세워지고, 부흥되고, 열매 맺을 수 있었겠느냐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교회가 바로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로서 세 가지 권리를 이야기 합니다.
4-6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다시 말해 “먹고 마실 권리”는 생활할 권리,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는 가족 부양의 권리, ’일하지 않을 권리‘는 돈을 벌기 위해 세상의 직업을 갖을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자신의 사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회가 그들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끊임없이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그가 사도권을 그저 밥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오해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해 이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는 동안 우리의 모든 권리를 사용하며 살 수 없습니다. 바울 역시 사도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된다면, 누군가의 영혼을 다치게 한다면, 무엇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면 그는 주저없이 이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에 머물 때, 모두 낮잠을 자는 시간이 그는 천막 깁는 일을 하며 돈벌이를 했습니다. 그러다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 때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생활하며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만 무보수로 일 한 것입니다.
바울은 아직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권리를 얼만큼 내려 놓는가가 신앙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표지가 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자신의 권한과 자유를 행사하지 않는 것에 모범을 보임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절제하며 사는 것이 교회 공동체와 복음전파에 얼마나 큰 유익이 될 수 있는가를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특권을 어떻게 해서든지 휘두르려는 경향이 큽니다. 사람들은 VIP 대접 받기를 좋아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지위와 더 좋은 형편을 누리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가진 권리와 자유를 오히려 절제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사도로서 가진 특권도, 그리스도인으로 가진 자유도 복음 전파가 방해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절제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부름 받은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특권만 주장하기 보다는, 교회 공동체와 복음전파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권리를 겸손하게 내려놓아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일에 걸림돌이 아니라, 귀중한 디딤돌로 사용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작은 공동체는 가족입니다. 가족만큼 혹독하게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아야 하는 현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교회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십자가 사건은 최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 권리를 죽기까지 내려놓으신 사건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누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깊은 묵상과 순종이 있을 때, 이 땅의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회복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