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8-25 교회의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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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18-25절
고린도교회는 서로 경쟁하고 자랑하는 가운데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은사’를 다른 성도들을 섬기고 세우는 데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서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를 내세워 당파를 지으며 좋은 설교자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회는 누가 더 탁월하고 논리적인 언변으로 많은 청중을 모으는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어느 설교자가 더 화려한 수사력으로 듣기 좋은 설교를 하는가? 누가 더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지로 복음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유행하고 있는 두 가지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17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지혜는 19절에 나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7절에서 말하는 ‘지혜’가 말을 폼 나게 하는 능력이라면 19절의 ‘지혜’는 말을 논리적으로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능력보다 하나님의 지혜에 주목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사건과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방법이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인지 쉽게 납득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된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분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 상에서 죽이시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누가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만드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문제는 우리가 늘 이 사실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거저 받은 은혜와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자랑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랑할게 없는 자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망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저 받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전도라는 가장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많은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전도는 천하에 가장 미련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설득력으로, 말의 지혜로 이루어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22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이 말씀처럼 유대인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일관되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반드시 기적과 이적을 함께 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표적을 구한다는 것은 곧 능력 있는 메시아, 로마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민족을 해방시켜 주는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그들에게 치욕스럽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반면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아다녔습니다. 지혜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논리와 설득력 그리고 세련된 언변을 갖춘 철학자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표적도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구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국내, 해외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은 많이 가져서, 많은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낮은 자 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낮은 자를 찾아오시는, 약하고 부족한 자를 통해, 연약한 자를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고, 하나님의 지혜라 믿습니다.
바울이 볼 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아직 어렸습니다.
3장 1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직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합니다.
4장 7-8절입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너희가 이미 배부르고 왕 노릇하는 구나” 바울의 평가입니다. 바울이 볼 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영적 상태는 너무 가난하고 어린데, 그들은 이미 다 가진 듯, 다 이룬 듯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레미야 9장 23-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잘 안다고 스스로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권면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부요함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해 목마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서 나온 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기 때문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지혜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 땅의 영화를 한 순간 누더기로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도를 붙들며 승리하는 삶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