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3:1-9 하나님의 동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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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 1-9절
고린도전서를 비롯한 바울의 서신서를 보게 되면 의학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의학 용어를 자주 사용한 까닭은 그와 함께 했던 동역자였던 누가의 영향 때문입니다. 누가는 눈도 어둡고 몸이 약한 방루의 가르침을 대필할 정도로 친밀한 동역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듯,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구별을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설명하였습니다. 2장 10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3장에 넘어오면서 그 중에서도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구별합니다. 성령님 안에 거하면서도 그분께 철저히 통치받지 않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스스로 가장 지혜로운 성도라 부하며 조금 더 고상하고, 참신하며, 세련된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참된 신앙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바울은 “너희는 아직 복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육신에 속한 너희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어른으로 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을 보면 이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로마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향해 쓴 책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바울의 표현대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에게 쓴 책입니다. 왜? 강조한 것일까요?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인이라고 해서 전부 히브리인이 아닙니다. 과거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며 히브리인들의 민족성과 혈통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앗수르 민족과 강제 혼인 정책을 폅니다. 로마 시대에도 황제에게 절하지 않는 모든 상인들은 생업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묵숨을 걸고 자신의 민족성과 신앙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그의 후손들이 바로 히브리인들 중에 히브리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쓴 편지가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어 5장 11-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신앙에 대해서 자부심이 충만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들을 향해 “지금 너희는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위치인데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에 “경험” 이라는 단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 “아피로오스” 는 “생소한”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를 뿐 아니라, 생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 있으면서 히브리인 중에서 히브리인이면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노출되어 살아왔음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호세아 6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왔고, 말씀도 듣고, 교회도 다녔지만,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은 많이 알고 있죠?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날 명분만 있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히브리 기자는 “너희는 마땅히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될 시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다. 너희는 의의 말씀을 경험해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통해서 동일한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을 육신에 속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들이 애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말렉과의 전쟁은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탈출해 홍해를 건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겪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을 받고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출애굽기 17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신 뒤,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이 사라질 때까지 하나님이 끝까지 전쟁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갈 때, 우리는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길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십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향해 “어리다”라고 말합니다.
3장 2-3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그들 속에는 여전히 시기와 분쟁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기”는 잘못된 열심입니다. 로마서 10장 2절에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달리기만 하는 것은 잘못된 열심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 자체보다 교회의 중심이 사람에게 쏠려 있음을 지적합니다.
3장 5절입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은 아볼로와 자신을 사역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들의 직분이 아니라, 직분이 가지고 있는 직무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시말해, “우리는 너희들이 복음을 잘 먹고 자랄 수 있도록 부름받은 종에 불과한데, 왜 자꾸 사람을 중심으로 패거리를 만들고 분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6-7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씨를 심고 물을 주는 사람은 그 씨앗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습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식물이 자라는 원리를 통해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될 때, 교회는 분쟁하기 시작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역할만 다를 뿐, 그 가치는 동등합니다. 우리 몸 가운데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눈과 귀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3장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표현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는 종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름받고 쓰임받는 사람들, 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교회가 오직 하나님이 은혜만을 드러내는데 집중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