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4 잠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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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장
오늘 본문을 읽다보면, 좀 불편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34절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여성을 비하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하는 말씀으로 오해하고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가 쓰인 당시의 여성의 문제는 비참했습니다. 당시 유대인 기도문에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할 정도로 여성의 지위는 매우 비참했습니다. 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울이 왜? “여성을 존중하라,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대하라” 라는 말 대신에 “여자는 잠잠하라”는 문구를 남긴 것일까요? 이 말은 많은 논란을 가져다 줍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는 하나임을 선포합니다. 지위나 성별을 떠나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녀의 가치에 대해서 더 이상 논할 수 없도록 종지부를 찍는 선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여성을 차별하는 관점으로 잠잠하라고 권면한 것이 아님이 분명해 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끝까지 그분의 곁을 지킨 이들이 누구였습니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이들이 누구였습니까? 모두들 여성들이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뒤 가장 나중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중에서도 하와를 아담보다 더 나중에 만드시고 돕는 베필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돕는 베필은 헬라어로 ‘에제르’ 그 뜻은 “마주 서서 돕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이 쉽겠습니까? 약자가 강자를 돕는 게 쉽겠습니까? 분명 전자일 것입니다. 이런 맥락을 가지고 다시 고린도전서 14장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성을 하나의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던 시대에 바울에 의해 고린도지역에 복음이 들어갔꼬,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고린도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았던 여성들에게 어마어마한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과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갔고, 여성들을 상대적으로 은사가 부족했던 남성들을 무시하고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예배 시간에도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들을 일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우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라” (고린도전서 14장 27절) 고 예배의 질서를 세워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을 말합니다. 무질서의 하나님, 화평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사람들 때문에 질서의 하나님을 강조한 것이라면, 화평의 하나님은 왜 거론한 것일까요?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지 말라는 의도에서 바울은 화평이 하나님의 성품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시기 때문에 열두 제자와 사도를 전부 남자로 구성했을까요? 아닙니다. 만일 여성이 한 명이라도 개입되면 보수적인 유대 사회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확장되는데 효율적이지 않을 것을 예견하셨기에 예수님은 우선 제자들과 사도들을 남성으로 구성하신 것입니다. 여성들을 무시하고, 배제하신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복음을 전하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질서가 회복되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고린도교회 상황으로 비추어 볼 때, 여성들이 잠잠해야 장기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렇게 명한 것입니다. 일부 여성들이 은사를 남용하면서 예배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복음 전파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교회에서 조용히 질서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원리가 아니라, 시대적 특수정을 고려한 충고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조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39-40절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결국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품위있고 질서 정연하게 예배 드리기 위함입니다. 사랑으로 연합된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질서 정연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질서는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신 은사들은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절제하는 가운데 서로 그 은사들을 조화롭게 그리고 품격 있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경쟁적으로 사용할 때, 공동체의 질서는 무너집니다. 분쟁이 생기고, 화평이 깨집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2장 11-12절을 보면, 오늘 본문과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고린도전서 14장 34-45절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교회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이 각종 은사를 남용하며 예배의 질서를 깨뜨리는 여성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라면, 디모데전서 2장은 영지주의적 사고에 빠져 거짓 복음을 전하는 여성 선지자들을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여성들을 거짓교사라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여자는 교회에서 조용하라”가 아니라, “품위있고, 질서 있게 예배를 드려라” 이것이 오늘 메시지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질서와 화평이 하나님의 속성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품격있는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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