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1-11 그리스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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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1-11절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부활’ 이 아닌 ‘죽은 자의 부활’ 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3절 “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5절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죽은 자의 부활도 없느니라“ 가 순서상 맞을 것 같은데,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보다 죽은자의 부활을 우선순위에 둡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죽은자’ 이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헬라어는 ‘네크로스’ 라고 기록된 이 표현은 동사로 쓰일 때와 형용사로 쓰일 때 그 의미가 다른데, 여기에서는 ‘죽어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형용사로 사용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4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둘째 아들이 방탕한 삶을 살다가,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을 가리켜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표현합니다. 이 때 “네크로스”를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물학적 죽음입니까? 아니면 영적 죽음입니까?
영적 죽음입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5장에 등장하는 ‘죽은 자’ 역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심으시고 아담에서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사단은 뱀을 통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합니다. 뭐라고 유혹했습니까? 이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열매를 먹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단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녀들을 낳고 계속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체만 살아 있을 뿐,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이를 성경은 “네크로스” 곧 죽었다. 라고 표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여전히 영적으로 죽어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을 붙들 때, 주님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죽어 있는 부분을 다시 살리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울은 이러한 부활의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음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은 이 땅에 속한 모든 것은 영원한 세계로 연장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35-3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죄를 단숨에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 값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의 부활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모든 성도가 죽음 가운데서 부활할 것을 보증해 주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아담 안에서 죽음을 맛본 사람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습니다. 따라서 십자가 앞에 선다면, 어떤 사단의 위협과 공격에도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3-8절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기서 “보이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의 은혜가 임했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게바, 베드로에게... 열두 제자에게... 오백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사도에게... 또한 바울에게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온 인류에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미 자신의 서신서에게 이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은 이미 부활의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만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 역시 믿음으로 부활의 약속을 받았고, 지금 그 부활의 능력을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활은 “누었다가 서는 것‘ 으로 부활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이러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 가운데 부활의 능력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거룩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힘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시 말해 바울은 지금 부활의 권능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부활의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로마서 6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바울은 부활이 반드시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 철저히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자리한 죄성이 계속해서 죄를 촉발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경건의 훈련을 통해 깨어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죄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길지어다” 는 법정 용어입니다.
죄임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 여기고 인정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사랑하는 신부로 맞아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55-56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이 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사망은 결국 죄를 이용해 우리를 유혹하고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부활의 능력을 회복하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 부활의 약속을 붙들고 흔들림 없이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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