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아끼노라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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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고린도전서 7:25-28
“너희를 아끼노라”
2024. 10. 14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너희를 아끼노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결혼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명령과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권면을 함께 말씀하고 있는데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으면 이혼을 하면 안 돼요.
그런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서 이혼을 하거나 혹은 사별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율법에는 재혼에 대하여 몇 가지 규정이 있습니다.
먼저 남편이 죽은 경우에 과부가 그 죽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을 하도록 하는 규정입니다. 형사취수제라 그러죠. 과부를 보호하고,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가기 위해서, 재혼을 장려해요. 또 만약에 아내가 간음을 한 경우에는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재혼에 대해서 허락하는 규정들이 있어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재혼을 하는게 좋겠죠. 그런데 바울은 견해가 달라요. 바울은 될 수 있으면 재혼을 하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 ‘혼자가 됐으면 그냥 혼자 살아라. 뭐 할라고 재혼을 해서, 다시 그런 부부의 의무에 얽매일려고 하냐. 그냥 혼자서 주의 일 하면서 살아라.’ 이렇게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가지고 권면을 해요.
여러분, 이것은 말 그대로 바울의 개인적인 견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따라도 좋고 안 따라도 좋아요. 그냥 독신으로 살아도 되고, 재혼을 해도 됩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죄가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바울의 개인적인 견해예요. 25절부터 40절까지 단락 전체가 바울의 개인적인 견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바울의 말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개인적인 견해라고 해도 무시하면 안 돼요. 바울이 지금 하는 말이 비록 하나님의 계명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하는 그 지혜의 말에 우리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겠는데요.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결혼한 부부들, 그리고 이혼한 사람들에게 각각 권면을 했다면, 오늘은 처녀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25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5절 시작,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처녀에 대하여 주께 받은 계명이 없기 때문에, 바울이 자기 의견을 말한다고, 지금 밝히고 있죠. 이것은 내 의견이다. 그런데 누구에 대한 의견인가 하면, 처녀에 대한 의견이에요. 이 처녀라는 말이 헬라어로 “파르테노스”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처녀와 총각을 동시에 뜻하는 말입니다. 한번도 성관계를 한 적이 없는 여자와 남자를 가리켜요.
앞에 8절에서는 홀아비와 과부들에게 권면을 했다면, 이제는 처녀와 총각들에게 권면을 하는 겁니다. 자, 뭐라고 권면을 합니까? 2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아멘.
바울이 생각했을 때, 처녀와 총각은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앞에 8절에서는 바울이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26절에서는 “나와 같이”라는 말이 없어요.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라고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한번 결혼을 했었기 때문에, 홀아비와 과부들에게는 “나와 같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 처녀 총각들에게는 할 수가 없죠. 만약에 처녀 총각들에게도 “나와 같이 그냥 지내라”고 한다면, 너희도 나와 같이 한번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독신으로 지내라는 말이 되고 말아요.
그래서 26절에는 “나와 같이”라는 말이 없는 겁니다. 어쨌거나 바울이 처녀 총각들에게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라고 했어요. 왜 그런가 하면, 환난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곧 임박한 환난.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환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의견이 나눠지는데요. 종말을 의미한다는 학자들도 있고,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의미한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종말을 의미한 것이라고 봅니다.
바울은 서신서 전체를 통틀어서 임박한 종말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든요. 주님이 곧 오실 것이다. 이제 곧 환난이 임할 것이다. 이것을 굉장히 강조해요. 그래서 로마서 13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선언을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아멘.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다시 말해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말이에요.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곧 임박한 환난”이라고 표현했고, 또 밑에 29절에서는 “그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종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멈추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달려갔어요.
우리가 그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임박한 종말을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언제든지 종말이 임하리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돼요. 당장 오늘 저녁에 종말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살고 있단 말이죠. 종말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고, 긴장감이 없어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볼 때는, 고린도교회가 그런 거예요. 아무런 긴장감이 없어요. 탱자탱자 놀면서 술이나 마시고, 간음을 하고, 세월을 낭비해요.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과연 저렇게 살아서 나중에 주님 앞에 얼마나 책망을 들으려고 저러나?
그래서 경고하는 겁니다. 환난을 대비하라.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환난이 임박했기 때문에결혼하지 말라고 말을 해요. 물론 결혼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죠. 결혼한다고 해서 죄가 아니에요. 다만 결혼함으로 인해서 더 큰 고난을 받을까봐 걱정스러운 겁니다.
마태복음 24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종말의 때에는 아이들과 임산부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셨거든요. 아마도 바울이 이 말씀에 염두에 뒀을 거예요. 괜히 결혼해서 임신을 하고 애를 낳으면, 종말의 때에 고난이 크단 말이에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그 고난을 감수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당연히 결혼해야 돼요. 하나님이 맺어주신 사람이 있으면 결혼해야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바울이 하는 말은 바울의 개인적인 견햅니다. 우리가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따라도 되고 안 따라도 됩니다.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돼요.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독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결혼 안 하고 살면 됩니다.
그래서 밑에 28절에 바울이 이렇게 덧붙이고 있어요.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아멘.
장가 가도 죄가 아닙니다. 시집 가도 죄가 아닙니다.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결혼하면 고난이 있습니다. 서로간에 부부의 의무에 매이게 되고,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생겨요. 다른 이성에게 눈 돌리지 말아야 하고, 배우자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가 발생해요.
혼자 살 때는 없었던 고난들이 결혼하고 나면 생겨나는 겁니다. 이런 고난을 겪는 중에 갑자기 환난까지 덮쳐오면, 과연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바울이 이것을 걱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개인적으로 권면은 하지만, 선택은 각자에게 맡기는 겁니다. 너희가 선택해야.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아라. 다만, 결혼을 하려거든, 환난과 고난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환난이 임박했고, 또 많은 고난이 있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려느냐?
이것을 깊이 고민하고, 또 기도해서 잘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28절 끝에 바울이 말하고 있죠.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바울이 하는 말에는 저들을 아끼는 마음이 깔려 있어요. 그래서 저들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저들을 아끼고, 저들의 선택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충고를 하는 겁니다. ‘너희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너희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단순히 결혼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선택의 문제를 떠나서,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아끼고, 그 사람을 위해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자상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서 반드시 이렇게 해야 돼’, 라고 말하기보다, 무엇이 그 사람에게 더 유익이 될 것인지, 무엇이 그 사람에게 덜 상처가 될 것인지를 분별하고, 지혜롭게, 그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아꼈던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아끼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서 사랑과 긍휼이 가득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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