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자들에게 명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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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고린도전서 7:10-16
“결혼한 자들에게 명하노니”
2024. 10. 7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결혼한 자들에게 명하노니”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결혼을 했다가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는, 돌싱들에게 하는 권면의 말씀이었다면, 오늘은 현재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현역 부부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개의 단락으로 나뉘는데요. 먼저 10절, 11절이 한 단락이고, 12절부터 16절까지가 또 한 단락입니다. 이 두 단락이 사실 핵심은 같아요. 이혼하지 말아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세부내용이 달라요. 첫번째 단락은 부부가 둘 다 믿는 가정에 대한 내용이고, 두번째 단락은 배우자 한 사람만 믿는 가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자, 먼저 첫번째 단락을 보겠는데요. 10절, 1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아멘.
지금 이 단락은 명령입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그런데 이 명령이 바울의 개인적인 명령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에요.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주님의 명령을 바울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죠.
자, 뭐라고 명령을 합니까?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여자와 남편에게 동시에 주시는 명령이에요. 갈라서지 마라, 버리지 마라. 서로 다른 헬라어 단어를 썼지만, 의미는 같아요. 헤어지지 마라는 겁니다. 한번 결혼했으면, 이혼하지 말고, 계속 살라는 거예요.
마태복음 19장 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아멘.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 말은 금지명령입니다. 사람이 나누지 말라는 거예요. 결혼이 반드시 하라는 명령이라면, 이혼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어기면 죄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기죠. 도저히 성격이 안 맞고, 마음이 안 맞아서 살 수가 없으면, 그때는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갈라서야죠. 그래서 그런 경우에 대해서 바울이 말을 해요. 11절에,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화 화합하든지 하라”
부득이하게 이혼을 했다면, 그대로 지내라는 겁니다. 재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지내라. 아니면, 다시 이혼한 남편과 화합해라. 양자택일이에요. 독신으로 있든지, 다시 합치든지. 여기에 재혼은 선택지가 없어요.
위에 8절에서도 말했죠. 재혼하지 말고, 너희가 나와 같이 독신으로 지내라. 이렇게 권면을 했어요. 이것은 말 그대로 권면입니다. 명령이 아니에요. 이혼문제는 명령이지만, 재혼문제는 명령이 아니에요.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 다만, 되도록이면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바울이 자기 의견을 얘기하면서 권면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두번째 단락으로 들어가는데요. 두번째 단락은 배우자 한 사람만 믿는 가정에게 하는 말씀이에요.
이 두번째 단락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순전히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쪽이 불신자인 부부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적이 없거든요. 두 사람 다 유대인인 경우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두 사람 다 하나님을 믿는 부부에 대한 말씀이죠.
그런데 예수님 승천 이후에 복음이 이방으로 퍼져 나가게 되면서, 여러 복합적인 부부가 형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유대인, 한 사람은 이방인인 부부. 혹은 두 사람 다 이방인인 부부.
그래서 부부간에 종교가 다른 거예요. 특별히 고린도교회는 애초에 한 사람도 믿는 사람이 없었죠. 모든 부부가 다 불신자들이었어요. 그런데 그곳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믿는 자들이 생겨난 겁니다. 그래서 부부가 본래는 둘 다 이방종교를 믿는 가정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혹은 아내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갑자기 부부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먹는 것에서부터 해서 생활방식이 달라지다보니까 불화가 일어나요. 전에는 같이 술도 잘 마시더니, 어느날부턴가 술을 안 마시고, 나한테까지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를 해요. 또 주일에는 무조건 예배 드려야 된다면서 휙 가버리고.
이처럼 생활방식이 달라지니까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큰 소리가 나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질문한 겁니다. 부부간에 종교가 달라서 자꾸 문제가 생기는데,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이 답을 주신 적이 없다 보니까, 바울이 개인적으로 답을 주는 것이죠.
자, 바울이 뭐라고 답을 줍니까? 12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아멘.
바울이 예를 들고 있죠. 남편이 믿는데, 아내가 안 믿는 가정을 먼저 예로 들고 있어요. 아내가 안 믿어요. 그런데 아내가 남편과 함께 살고싶어하면, 아내를 버리지 말고 같이 살라는 겁니다. 이혼하지 마라.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왜 이혼하냔 말이에요.
또 밑에 13절을 보면, 13절은 반대로 아내는 믿는데 남편이 안 믿는 경우예요. 13절에 보니까,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똑같은 말이죠. 버리지 말라. 그러니까 배우자가 안 믿는다고 해서 헤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배우자가 안 믿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에잇, 교회 가자 그래도 교회도 안 가고, 그냥 이혼해!’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전도해야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의 구원을 위해서 전도하고, 기도해야 돼요. 내가 내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족구원을 위해서 생명을 걸어야 됩니다.
이것을 14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아멘.
믿지 않는 남편, 믿지 않는 아내, 그리고 믿지 않는 자녀가 나로 인해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정에 한 사람이 믿으면,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가정 전체가 거룩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몸에 백신이 들어와서 바이러스를 몰아내듯이, 우리 가정에 복음이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물러가지 않죠. 백신이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우다보면, 몸에 열이 나고, 거부반응도 일어나요. 작년에 제가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때, 몸이 막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그런데 코로나보다 더럽고 끈질긴 어둠을 몰아내는 작업이 과연 쉽겠습니까?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돼요. 가정의 영적 체질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거부반응이 심하게 올 수 있어요. 그것을 이겨내야 됩니다. 한번 체질이 개선되면, 그 뒤로는 면역력이 올라가서 어둠을 쉽게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체질개선이 잘 되면 좋은데,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남편에게, 아내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안 돼요.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1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멘.
만약에 안 믿는 배우자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갈라서자고 할 경우에는 갈라서라고 바울이 말을 합니다.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이혼을 허락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뒤에 뭐라고 말을 합니까?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안 믿는 배우자랑 사는 힘든 결혼생활에 구애되지 말고, 이혼하려거든 이혼하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만 보면, 바울이 이혼을 허락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뒤에 바울이 반전을 넣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는데요. 하나님이 화평을 원하시는데, 그러면 이혼을 하라는 것이 말라는 것인가?
안 믿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 더이상의 분란 없이 이혼을 해주는 것이 화평한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인내하고 가정을 지키는 것이 화평한 것인가? 이 둘 중에 무엇이 바울의 의도인지 확실하지가 않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화평하기 위해서, 이혼을 해야 될까요? 아니면 계속 살아야 될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화평을 이루는 길이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혼하지 말라는 뜻으로 봅니다. 이혼하지 말아라. 이미 너희가 한몸이 되었으면, 갈라서지 말고, 계속 한몸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화평을 이루는 길이다.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해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이 말은 명령이 아닙니다. 바울의 개인적인 권면이에요. 사람만 믿고, 한 사람은 불신자인 부부에 대해서 주님이 뭐라고 명령을 하신 일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지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새로운 지침을 만들어낸 것이죠. 그런데 이 지침이 뭐예요? 이혼하지 마라. 바울이 권면하는 겁니다.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따르지 않아도 돼요. 이혼해도 됩니다.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화평을 깨는 일이기 때문에, 너희가 될 수 있으면 이혼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서 바울이 16절에서, 끝까지 인내하고 결혼생활을 계속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요. 1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아멘.
우리가 믿지 않는 배우자를 구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몰라요.
그러나 모른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되죠. 아주 작은 일말의 가능성에 우리는 생명을 걸어야 됩니다. 구원받지 못할 확률이 99%라고 해도 1%의 확률에 생명을 걸고,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 그는 1%도 채 되지 않는 가능성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타락한 음란의 도시 고린도, 이곳에 교회가 세워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또 전했더니,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잖아요. 여러분의 배우자가 아무리 험하다고 해도, 고린도 시민들보다 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춘을 하고, 종교의식이라면서 집단 성관계를 하고, 사람끼리 죽고 죽이는 검투 경기를 보러 다니고, 이런 짓은 안 하잖아요.
여러분, 고린도 시민들이 변화되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배우자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때가 언제일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언젠가 결실하는 때가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화평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버리지 말고,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행했던 것처럼, 주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그 본을 받아서 여러분의 가정에서,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고, 착한 행실로서 배우자와 자녀와 온 식구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