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를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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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605장 “오늘 모여 찬송함은”
고린도전서 7:1-5
“의무를 다하라”
2024. 9. 30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의무를 다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부터는 고린도전서의 2부격으로 볼 수가 있는데요. 6장까지는 고린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입으로 전해준 문제에 대한 답변이었다면, 오늘 본문부터는 고린도에서 온 편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니까,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너희가 쓴 문제, 고린도교인들이 편지에다가 문제들을 써서 보낸 거예요. 이 문제들에 대해서 바울이 답변을 하는 겁니다.
자, 바울이 첫번째로 무엇에 관하여 답변을 합니까? 바로 결혼에 대한 문제죠.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절 시작,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이 말이 지금 고린도교회의 또다른 슬로건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을 하고 있어요. 여기서 가까이한다는 말이 헬라어로 “하프토”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만지다, 손을 대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남녀사이에 쓰이면 “성관계를 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고린도교인들은 남자가 여자와 성관계를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고린도를 비롯해서 헬라인들은 영혼은 신령한 것이고, 육체는 더러운 것이라는 관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남녀의 육체적 결합은 너무 더러운 것이라서 영혼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이것 때문에 고린도교회에서 일부 교인들이 부부사이에 성관계를 금지시키고, 아직 결혼을 안 한 처녀 총각들에게는 결혼을 하지 말라고 강요를 했습니다. 또 부부들에게 이혼을 해야 된다고 잘못된 사상을 주장했어요.
굉장히 아이러니하죠. 지난 시간에는 교회 안에 음행이 너무 넘쳐나서 이것을 책망을 했는데, 이 뒤에는 이어서 너무 금욕적인 문제에 대해서 책망을 해요.
같은 교회 안에, 이처럼 완전히 상반된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음행이 심해서 매춘은 물론이고, 심지어 근친상간까지 저지르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아예 부부 사이에도 관계를 안 해요. 결혼도 하면 안 된다고 하고, 심지어 이혼을 해야 된다고까지 부추깁니다. 이처럼 극과 극의 사람들이 한 교회 안에 있는 겁니다. 극단적인 쾌락주의자들과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이 같이 있으니까 당연히 교회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죠.
그래서 바울은 먼저 음행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이어서 금욕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겁니다. 자,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답변을 하는지 볼까요? 오늘 본문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아멘.
바울의 답변은 분명합니다. 남자는 아내를 두고, 여자는 남편을 두라. 결혼하라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죠.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분명히 명령을 하셨어요. 결혼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울은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라는 이유를 집어넣어요.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을 하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혼은 하나님의 명령임과 동시에 음행을 피하기 위한 좋은 방편이라는 겁니다.
결혼을 하면 의무가 생겨요. 남편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 아내로서 지켜야 할 의무. 이러한 의무로 인해서 사람들은 음행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밑에 3절 말씀에,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멘. 부부는 그냥 혼인신고만 한다고 부부가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지킬 것을 지키면서,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부부예요.
이 의무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 가족을 지켜야 하는 의무,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의무. 여러 가지 의무들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의무는 바로 “성관계”에 대한 의뭅니다.
부부는 반드시 자기 배우자하고만 성관계를 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랑 하면 죄가 됩니다. 십계명 중에 제7계명이 “간음하지 말라”예요. 간음하지 말라.
결혼을 하는 순간에, 부부는 배우자하고만 관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부간에 지켜야 할 가장 첫번째 의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것을 어겼죠.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을 할 때, 이미 그에게는 여섯 명의 아내가 있었어요. 한 사람도 아니고 여섯 명에 대한 의무를 어긴 겁니다. 나중에 그가 회개하긴 했지만, 이 잘못으로 인해서 그가 잃은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명예를 잃었고, 부하들에게는 존경을 잃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가정이 이래서 깨지는 거예요. 서로에 대한 의무를 어기는 순간에, 신뢰관계가 깨지고, 가정이 깨지는 겁니다. 반드시 부부는 배우자만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첫번째 의뭅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번째 의무가 있는데요. 그것은 배우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의뭅니다. 배우자가 성관계를 원하면 그것을 거부해서는 안 돼요. 물론, 피곤하고 몸이 안 좋으면 몇 번 거부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이 계속된다면 문제가 돼요. 한쪽은 원하는데, 한쪽은 계속 거부를 한다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밖으로 나가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 어떤 여자 개그맨이 방송에서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남편이 나랑 안 해주면, 나는 어디 가서 하냐?’ 우스운 말이지만, 이게 거부당하는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욕구는 쌓이는데, 해소가 안 되면 문제가 돼요.
그런데 이 문제가 고린도교회 안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겁니다. 남편은 원하는데, 아내가 거부하고. 또 아내는 원하는데 남편이 거부해요. 육신은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성관계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오히려 배우자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밀어내요. 그러면 상처가 되는 겁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의무에 충실해야 됩니다.
배우자 외에 다른 곳에 눈 돌려서도 안 되고, 그리고 음행을 피한답시고 배우자의 요구를 거부해서도 안 돼요. 음행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에게 충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밑에 4절에, 바울이 이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요. 4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아멘.
부부는 각자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주장해요. 남편이 아내 몸을 주장하고, 아내가 남편 몸을 주장합니다. 여기서 주장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엑수시아제이”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지배하다, 권리를 가지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부는 서로의 몸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아내의 몸에 대한 권리가 남편에게 있고, 남편의 몸에 대한 권리가 아내에게 있어요. 이 말은 배우자를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만큼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강하게 귀속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두고 함부로 다른 여자한테 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남편 몸은 아내 것이기 때문에. 아내도 마찬가지. 서로가 서로에게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쪽이 성관계를 원하면 다른쪽이 따라줘야 돼요. 내 몸이 내 개인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배우자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따라줘야 됩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의뭅니다. 부부간에 이 두 가지 의무를 지켜야 돼요. 그래야 음행을 피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 그러면서 밑에 5절에 가면 분방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요. 5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이 분방하지 말라 했습니다. 여러분, 분방이 무슨 말일까요? 분방, 방을 나눠서 각방 쓰지 말라는 말일까요? 개역개정은 그런 의미로 쓴 게 맞아요. 부부간에 각각 방을 나눠서 살지 말아라, 라는 의미로 “분방하지 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번역을 제대로 못한 겁니다. 헬라어 본래 의미는 이게 아니에요. 헬라어로 “아포스테레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에게서 빼앗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번역을 하면 “서로에게서 빼앗지 말라” 라는 말로 번역이 되겠죠.
그러면 뭘 서로에게서 빼앗지 말라는 걸까요? 위에 4절에 서로의 몸에 대한 권리가 있었죠. 바로 이 권리를 빼앗지 말라는 겁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권리가 있어요. 이 권리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되어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권리를 빼앗는다면, 부부간에 의무도 깨지는 거예요. 그러면 가정이 깨지는 겁니다. 단순히 각방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권리를 빼앗지 말고, 인정하라는 거예요.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하여 섬기겠습니다.
특별히 지금 5절에서는, 배우자가 성관계를 요구했을 경우에 대한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요구에 대한 권리를 빼앗지 말라는 거예요. 동침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도 있죠.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거부할 수 있다는 거예요. 기도한다는데, 당연히 이해하 줘야죠. 그런데 기도를 하루 종일 합니까? 기도 다 하고 나면 그때는 합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합하라. 왜냐하면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기도 때문에, 혹은 어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서 배우자의 요구에 거부를 할 수는 있겠지만, 얼마 동안만 거부하라는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받아주라는 거예요. 안 그러면 배우자가 더이상 못 참고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버릴 수가 있어요. 집 밖으로 나돌 수가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성관계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내 배우자가 사탄에 넘어가느냐 안 넘어가느냐의 문젭니다. 사탄에 넘어가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지켜야죠. 부부간에 반드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배우자만 바라보고, 배우자를 뜨겁게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아기들의 웃음소리가 우리교회에 가득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장로님들, 권사님들,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관계에 집중을 해서 말했지만, 본질은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 뒤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서로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서로에 대하여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찬송가가 혼례에 대한 찬송이었는데요. 여러분이 처음 결혼할 때의 그 설렘과 그 마음을 다시 떠올리시고, 그때 그 시절처럼, 뜨겁게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우자를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본이 되고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