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4:9-13 나를 본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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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9-13절
고린도지역은 항구도시로 무역 거래가 활발하고 왕성한 도시입니다. 그로인해 자원은 항상 넉넉했습니다. 거기에 시민들의 지적인 욕구도 컸고,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철학자 같은 지식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 가운데 큰 은혜를 주셔서 각종 은사도 넘쳐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만족해 하며 왕 노릇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4장 8절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교회와 유사한 교회의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합니다.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고린도교회처럼 부유한 무역 도시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식층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의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재정이 풍부해 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A.D 17년 경 라오디게아 인근에 큰 지진이 났습니다.
로마 정부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재정 지원 계획을 수립했는데, 유일하게 그 지원을 거절한 도시가 바로 라오디게아 도시입니다. 그 만큼 라오디게아는 많은 물절적 풍유로움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풍족하다 보니,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절실함이 없었습니다. 대신 더 높은 차원의 지식과 매너와 교양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 교회에 사자를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16, 20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메시지는 불신자가 아닌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의 벌거벗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금은보화를 비롯해 각종 자원을 다 가졌지만,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그 교회는 가난한 교회입니다. 벌거벗은 교회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9절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바울은 로마의 통치 시대에 고린도전서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전쟁 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각 종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그 때 승리한 개선장군이 가장 선두에 서고 맨 끝에 포로들을 세웁니다. 전쟁터에서 죽이지 않고 일부러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구경거리로 삼는 것입니다. 왜? 바울은 자신을 전쟁 포로와 비교한 것일까요?
고린도후서 11장 22-33절을 보면 자신의 처한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스펙을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누구입니까?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시 최고 학문인 가말리엘 문하생입니다. 그는 부족할 것이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면서 30절에 “내가 부득별 자랑할 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어떻게 약한 것이 자랑이 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그도인은 종말론적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마지막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이 매력적이라면 우리가 천국을 소망 할 수 있을까요? 다시 오실 주님만 고대하며 살 수 있을 까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시편 73편을 보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붙들고 살았던 시편을 기록했던 아삽이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1-3절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이랬던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비로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합니다.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성소에 들어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25-26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때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에서 바울처럼 고난과 수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 땅에서 보상해 주십니까? 아무런 보상도 해주시지 않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조차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말합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 역시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본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눈으로 천국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이렇게 고백합니다. 11-13절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더러운 것’이란 말은 쓰레기(scum), 폐기물이라는 말입니다. 찌꺼기란 말은 청소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버려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마룻바닥에서 훔쳐 내져진 것, 목욕할 때 나오는 때를 의미합니다. 아무 쓸모없는 것이란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일행들이 세상에서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와 폐기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그런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말함으로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이것저것을 좀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이렇게 복음을 위하여 고생하고 있으니 그것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되고 자신을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16절)
바울은 이렇게 말함으로 그 자신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자신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품위있고 우아하고 고상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조롱과 박해를 받으며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 할지라도 오히려 따뜻하고 친절하게 그들을 대하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려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상의 쓰레기와 찌꺼기 취급을 당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를 돌아보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 사람들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생각과 가치관으로 봄으로 영적으로 황폐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들이라면 세상의 관점이 아니 그리스도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살고 있을지라도 더 이상 세상적인 관점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본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에서 쓰레기와 찌꺼기 취급을 당하여도 그것에 개의지 않는 영적인 강건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기대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최종의 승리와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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