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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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명품
몇년전에 한번 한국에 명품 유행이 있었습니다. 막 사람들이 명품을 사재기하고 가방 하나 사는데 몇 백만원씩 쓸 정도로 사고, 그걸 비싸지면 다시 파는 사람도 있고 하면서 아주 이 명품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는데요. 근데 여러분 사실, 유럽의 명품들 중에 아주 많은 수가 대부분 다른 나라에 하청을 맡기고 예를 들어서 신발이면 깔창 하나만 자기네 나라에서 만들고서는 메이드 인 프랑스 이렇게 도장찍어서 내보내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오죽하면 그렇게 명품 브랜드를 하청받은 나라 사람들이 짝퉁을 만들면 원래 그런 명품들을 만들던 사람이다 보니까 기술이 늘어서 오히려 명품보다 더 튼튼하고 오래 쓰는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명품이라고 하는 것이 가격이 비싸고, 무슨무슨 장인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명품이라고 하는 것도 그 알맹이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따져보다보면 허황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구찌, 샤넬, 에르메스 이런 이름들에만 집중해서 그렇지 사실 정말 때깔이 좋아 보이려면 누가 그걸 입고 걸치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패완얼’이라는 줄임말을 씁니다. 패완얼, 즉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라는 말을 줄인건데요. 아주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어도 아주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이 입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입고 있던 간에 그 사람의 잘생기고 예쁜 얼굴이 그 옷마저 빛낸다 라는 말로 쓰입니다. 즉, 중요한 건 옷이 아니라 입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명품이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제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혼돈한 세상 가운데 질서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었죠?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자 하는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브랜드의 명품입니다.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2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혼잡하다라고 하는 단어는 헬라어로 ‘돌로’라고 하는 말인데, 이는 당시 고대에 물건을 팔때에 값싼 물질을 불순물로 섞어서 팔았는데 바로 그 ‘불순물’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쌀을 팔아야하는데 거기다가 돌맹이를 섞어가지고 무게가 나가게 만들어서 파는 행위가 바로 이 혼잡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고대 사람들은 말만 잘하고 그 말의 알맹이가 없는 것, 즉 겉만 번지르르 하게 이야기하고 정작 그 말하는 내용에는 제대로된 것이 없는 사람을 보고서 불순물을 섞어 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속임수로 하지 말고, 즉 이상한 불순물을 섞지 말고 오직 진리를 말하라 라는 것입니다.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말에는 그 중심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핵심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쭉 읽어 오고 있는데요.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바울이 항상 말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지요. 근데 저희가 지난주 금요일에 이주혜 전도사님이 전하셨던 것처럼 바울이 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몇몇 추천장 받은 율법교사들에 의해서 사도성을 의심받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거기에 대해서 “나는 추천장 같은건 없지만 여러분이 내 추천장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이면에는,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 그 사람이 진리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담겨있습니다. 멋있는 옷을 입으면 예쁜 옷을 입으면 우리의 겉모습을 치장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을 입어도 누가 입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에요. 아무리 이쁜 옷을 입어도 저한테는 이주혜 전도사님이 안입으면 이뻐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보배를 질그릇에
바울이 7절 말씀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담임목사님께서도 한번 말씀을 전하셨는데, 이 질그릇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 굉장히 험하게 다뤄지는 그릇입니다. 왜냐하면 이 질그릇은 진흙을 구워서 만드는 건데 진흙은 그냥 바닥에서 긁어모은 흙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아주 흔하게 쓰고 또 흔하게 깨뜨려버리는 그릇입니다. 조금 더러워지면 “에이, 그냥 버리고 다시 쓰고 말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아까운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유출병이 있는 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리고 나무 그릇은 다 물로 씻을지니라
나무 그릇은 물로 씻어서 다시 쓰는데 질그릇은 그냥 깨뜨려버려도 되는 그릇이었습니다. 유출병이 있는 사람이 만진 것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는데 부정해져도 나무 그릇은 씻고 질그릇은 그냥 깨뜨려버리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라고 하는 말은 사실 굉장히 이상한 말입니다. 보통 보물은 똑같이 광태가 나는 그릇에 담아야지 아무때나 깨뜨려버릴 수 있는 질그릇으로 담아서는 안되는데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이 다른 유명한 사람의 추천장을 받거나 엄청난 능력이 있거나 똑똑하거나 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것, 즉 질그릇이냐 금그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았냐가 중요하다고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어제 해피워십으로 저희가 예배를 드렸었는데, 저희 함께 찬양팀으로 섬겨준 악기팀이나 싱어팀이나 사실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사실 연습할 때 보면 엄청 많이 헤매고 틀리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아 내일 해피워십인데 망치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들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번 해피워십은 제가 연습보다도 기도로 많이 준비하자 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하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 무슨 음악적인 스킬이 뛰어난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도 안 틀리고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함께 찬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하고서 함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찬양을 하는데 제가 참 많이 은혜를 받았던 것은 비록 부족한 점은 있더라도, 좀더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은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찬양을 할 때도 비교하려고 하면 끝도 없습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노래를 잘하네, 저 사람은 악기를 엄청나게 잘치네, 하다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양하지 못하고 찬양을 해야하는데 음악적인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5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이것이 우리가 비록 이것이 안되고 저것이 안되고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고 남들이 보기에는 천한 것처럼 보여도,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우리가 내세워야할 것은 우리가 이것이 잘났고 저것이 잘났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는 것이 우리가 가진 너무나도 소중한 보물입니다.
생명이 나타나게 함이라
생명이 나타나게 함이라
그러니 저희가 살면서 좌절하고 낙심하고 “아이고 망했다 망했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사람이기도 했지만,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여러가지 방해들과 박해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마치 깨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사람들이 내치고 쫓아내고 “저놈을 잡아죽이자!”해서 감옥에도 갇히고 했지만, 낙심하지 하고 버린 바 되지 않고, 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또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이심을 저희가 믿기 때문에, 비록 겉으로보기에는 깨져가는 질그릇 처럼 보여도, 겉으로보기에는 죽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부활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결론
결론
그래서 여러분, 저희는 저 사람보다 내가 좋은 옷을 입었어 하면서 우쭐댈 필요도 없고, 저 사람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야 하면서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는 보배를 우리 마음에 품고 세상 가운데 나아갈 때에, 비록 우리의 육신은 나약해 보여도, 비록 우리는 스스로가 부족해보여도, 질그릇조차 보배를 담아 귀히 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저희는 부족해보여도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는 보배를 가진 사람은 날마다 감사로 날마다 넘치는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겉으로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지만, 깨지지 않고 우리안에 부활의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고서,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은혜가 넘쳐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