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1-4 네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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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4절
자동차를 타고 모르는 길을 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네비게이션입니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어떤 길이 가장 빠른지, 국도로 가야 하는지, 고속도로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예전에는 이 네비게이션이 없어서 자동차 마다 지도책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도책을 보고 가다가 새로운 길이 생겨 지도에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네비게이션으로 인해 얼마나 편리하게 생활하는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스마트폰에 있는 네비게이션 하나면 얼마든지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는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목적지가 어디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로로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까? 그 방법은 시험을 기쁘게 여기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지형은 어떻습니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가는 길목에 “여러 가지 시험” 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가지” 문자적으로 “여러 색깔”을 말합니다. 매번 모양과 그 색깔이 다릅니다. 마치 파도가 모래사장과 바위를 부딪히는 것처럼, 매번 그 모습이 다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인생길이 매번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같은 삶”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험의 형태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면의 죄”로 인한 시험입니다. 나의 욕망과 정욕으로 인해 생되는 허물들입니다. 영어로는 temptation “유혹”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시련들입니다. 특히 믿음을 지키려고 할 때 당하는 시험과 고난들입니다. 더 넓게는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가운데 만나는 모든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시험이 된다고 말합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인간과 이 세상은 원래 하나님께서 그리셨던 모습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타락한 상태로 비틀린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메커니즘 속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의 일부가 되어 계속해서 부조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 가운데서 신앙 양심을 지키면서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유혹에 취약할 뿐 아니라 거대한 구조의 힘이 우리를 계속해서 짓 누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여러 가지 색깔의 시험이 우리 안팎을 넘실거리며 떠밀려 옵니다.
온전함을 이루기 위한 이 땅에서의 삶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오늘 이러한 상황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쁘게 여기라”
2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헬라어 가정법은 가정하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시험을 만난다면’이 아니라, ‘너희는 반드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난다’ 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상황이든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성적인 명령입니다.
시험을 마주할 때,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는, 즉 우리가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고보는 어려운 시련 앞에서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절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서 ‘시련’ 이라는 헬라어 ‘도키미온’ 이라는 단어는 진정성을 시험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왜? 믿음의 시련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 그것은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인내 자체가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지만, 목적지를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종착지인 온전함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바라보게 이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때, 어려움을 만납니까? 그건 우리가 바르게 걷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아무런 장애도 없고, 시험도 없는 길은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을 기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욥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 욥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약 5:11
구약은 인내의 모델로 욥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온전하고 정직한 자라 평가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자라고 기록합니다. 게다가 그는 물질적으로도 부유했고, 7남 3녀를 두었습니다. 자녀들이 생일이 되면 잔치를 해 줄 정도로 우애도 좋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또 재산은 어땠나요? 양이 7천마리, 낙타가 3천마리, 소가 5백 겨리, 암 나귀가 5백 마리였고, 종은 셀수 없었습니다. 굉장한 집안입니다.
어느날 사탄이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욥을 시험코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허락하셨고, 사탄은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가진 소유물, 심지어 자녀들의 목숨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욥의 머리끝부터 말끝까지 악창이 났습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기왓장으로 몸을 긁어댔습니다.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 되자, 평생 함께 했던 아내가, 욥을 향해 모진말을 퍼 붓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세요”
이번엔 친구들이 욥에게 찾아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너가 잘못한 것이 있는게 분명하다고, 잘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으라고 말합니다.
이 끔찍한 일이 욥의 어떤 행위와 관계가 있습니까? 욥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탄과 하나님의 대화 끝에 벌어진 일입니다. 욥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 앞에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욥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욥기 23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 말은 언뜻 보기에는 고백이라 보이겠지만, 하나님을 향한 항변입니다. 새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왜? 나한테 이러세요? 하나님 얼마나 내가 정직하게 살아왔습니까?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그러지 않습니까? 우리는 살면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되지 않을까?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는가? 나름 교회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왜 고난이 끊이지 않는걸까?”
하나님은 욥에게 답을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질문하십니다.
욥기 38장 4절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기 38장 16절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욥은 깨닫습니다. 고난의 문제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앞에 순복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때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42장 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가치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봉사하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잘 믿고 있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서 얼마든지 욥과 같은 고난과 시련이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뛰어넘는 것이 믿음의 정수요, 성숙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주께서 주신 결말이라는 무엇입니까? 목적과 완성입니다. 우리는 욥의 인내를 통해 주님의 목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욥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버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그를 그 자리까지 인도하셨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어려운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며,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욥의 고난은 사람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고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견디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그리고 긍휼하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인내로 고난을 통과한 자들만이 깨달을 수 있는 신비입니다.
지금 야고보는 이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도의 인내는 긍휼과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다”
그래서 야고보는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이를 악물고 버티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내를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의미입니다. 놀랍게도 욥의 인내는 하나님의 기다림으로 주신 결말입니다. 욥의 고난의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기나긴 기다림이 있었고, 내 안에 의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새로운 의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칠흑같은 어두운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주님은 온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안에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깨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막히는 시험 속에 있는 것이 느끼십니까? 나를 대신하여 아들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종 목적지까지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 앞에 붙들려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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