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1-7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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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7절
1장에서 야고보는 참 된 경건의 삶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개인이 가져야 할 지표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혀에 재갈을 물리고,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돌보고, 매일 매일 하나님 말씀앞에 자신의 죄를 씻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 2장에는 경건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1장에 내용과 연결됩니다. 그러니깐, “이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참 된 경건은... 이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주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차별 혹은 차별 대우”입니다. 1-9절까지의 주된 내용입니다. 뒷부분에서는 14-26절까지 “믿음”이라는 주제가 등장합니다. 거의 모든 절에서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깐, 야고보는 1-7절의 차별의 죄를 짓는 것은 주 예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것이 8-13절을 통해 순종의 길에서 벗어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14-26절까지 더 명확한 질문을 우리들에게 던집니다. “우리의 믿음의 진정성을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차별없는 삶”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을 성품이나 인격의 문제가 아닌, 정확히 “죄”로 보고 있습니다. 나아가 차별은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일이라 말합니다.
1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여기서 “영광의 주” 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차별이 왜 무서운 죄인지를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걸 내려놓으시고, 죄인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셨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 하나입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온전하고 완전하게 드러난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9절에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 영광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4장 4절,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반영됐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난 생명이라면, 우리 안에는 자연히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대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반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비워내고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광의 주”라는 말은 단순히 높임 받고 칭송 받는 주님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내고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보았다면, 차별하지 말라고 야고보는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2-4절의 모습을 보면, 이런 차별은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서로 차별하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차별”이라는 단어 헬라어 “디오크리노” 라는 단어를 1장 6절의 “의심”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1장 6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의심을 무엇에 비유하였습니까?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에 비유했습니다. 바람과 바다 두 힘이 부딪혀 그 힘에 의해 풍랑이나 파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의심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왜? 의심과 차별을 같은 단어로 사용했을까요? 이 안에 우리의 본성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는 것과 삶, 즉 본성이 부딪힐 때, 차별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이 차별이 죄라고 말합니다. 왜? 죄일까요?
이 차별, 의심 이라는 “디오크리노” 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뜻은 “의심하다, 비난하다, 알아보다 논쟁하다 판단하다, 정죄하다, 고발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나의 자아, 내 생각, 내 고집이 들어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정확히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부정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판단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고발하고, 내가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의 사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왜? 사람들은 분노합니까? 왜? 이 사회의 분노가 뜰끊는지 추적해보면,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분노 사회는 나쁜 행동을 한 개인의 문제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우리의 태도가 낳은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철저하게 구조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로 끌어안고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도 크고 작은 차별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내세우고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으로 인해 부요함을 입은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자들은 우리도 낮아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차별을 회복하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가 편지를 보내는 교회들에도 이런 차별의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다는 것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 생계를 넘어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일부러 거론합니다.
15-16절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보통 서신서를 쓸 때, 그리스도인을 총칭해서 형제라고 하는데, 야고보는 이를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이것은 여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구제에 있어서 배제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는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오늘의 양식 뿐 아니라, 미래의 양식까지를 표현합니다. 그러니깐, 오늘의 양식조차 없다는 것은 내일의 소망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그들을 어떻게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몸에 쓸 것을 주라” 이것이 당시 교회 공동체의 과제 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야고보 때나 지금이나 이 시대를 향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구제하는 손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제조차도 관념화해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2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평안히 가라”는 말은 얼핏 인사와 복을 빌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당신과 나의 관계는 여기까지니깐 평안히 가라”는 뜻입니다. 매우 비열하고 냉소적인 표현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는 이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중요한 사회 이슈로 떠오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야고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교회와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답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태도가 변하고,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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