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전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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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복음과 네 번째 복음
공관복음과 네 번째 복음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synoptic gospel 이라고 하는 데, optic은 눈을 말하고 syn은 함께라는 뜻입니다. 공관복음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증거 한 공통점은 가졌고, 요한이 전한 네 번째 복음은 사건이나, 예수님의 가르침 보다는 그 사건들이 가지는 영적인 의미를 해설하고 또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읽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The Gospel of John opens with a unique theological prologue (1:1–18) that sets it apart from the other Gospels. Unlike Matthew, Mark, and Luke, which begin with genealogies or the birth of John the Baptist, John emphasizes the divine nature of Jesus. The prologue invites readers to understand Jesus not just through His actions but as God incarnate. Key themes introduced include "life," "light," "darkness," and "truth," which are essential for grasping the message of the Gospel. The terms "the Word" (Logos) and "grace" are also significant, establishing a foundation for the theological exploration of Jesus' identity and mission. This introduction serves to frame the narrative and deepen the reader's comprehension of Jesus as both fully divine and fully human.
20장 마지막에 이 복음서를 쓴 목적이 잘 나와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첫째,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증거 하는 바이지만, 유독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인 것을 확실하게 밝힙니다. 이 증언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증언이지만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는 증거를 계속 제시합니다.
John 1:1–3 (NKRV)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Jn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 두번째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는 그 뜻이 구원자입니다. Mt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단어입니다. 그 뜻은 기름 부은 받은 자 입니다.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기름 부음을 받습니까? 제사장, 선지자, 왕이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거룩한 사람으로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은 기름 밖과 안을 분리하는 막이 됩니다.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밖에 있는 물과비늘로 분리되는 것 같이 기름 부은 받은 사람은 이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이시며, 완전한 선지자이시며, 완전한 왕으로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하나님과 원수된 인류를 그의 피로 죄를 대속하셔서 하나님과 화목 시키시는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몸을 화목제물로 성전인 자기 몸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시는 제사장이십니다. 그는 완전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고, 죄인들을 회개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세우셨는데 스스로 왕노릇하는 반역을 저질렀으나, 이제 원수된 사람들과 거룩하신 하나님을 화목시키신 예수께서 참되신 왕, 의로우신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를 들어가게 하시는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인류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려면 반드시 창세기 셋째 장을 묵상하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이 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들을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창조의 완성상태에서 쫓겨난 인류는 언제나 에덴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이나 성전의 문은 동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즐기던 그 동산에 어디로 들어가야 합니까? 동편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에덴 동산을 지키는 그룹천사들을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화목제물의 피를 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언약궤 위에 부음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아브라함이 어느 쪽에서 왔습니까? 동쪽에서 요단강을 건너 왔지요? 야곱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 왔을 때는요? 동쪽에서 왔습니다.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약속의 땅에 들어왔을 때는요? 동쪽에서 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대인들이 어느 쪽에서 왔습니까? 동쪽에서 왔습니다. 이 이미지가 계속 반복되다가 어떻게 완성이 됩니까? 하나님의 어린 양이 자기 자신을 예루살렘에서 제물로 드려, 자기 피를 뿌리고 목숨이 끊어졌을 때,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 세번째는 그를 믿음으로써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역사학적 믿음으로요. 영어로 Historical Faith, Salvific Faith 라고 합니다. 역사학적 믿음이라는 것은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에 대한 모든 진리를 인정은 하지만, 자기의 삶이나 인격과 연합되지 않는 즉 인정하는 수준의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 계신 것도 알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알고,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을 알고 인정하는데, 이렇게 나타난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의 믿음을 말합니다. 반면에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성경에 계시된 이 기쁜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자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돌이켜 순종하는 방향으로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믿음입니다. 교회 안에 역사학적 믿음 이상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지 않고 스스로 왕노릇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복음을 다 알고 깨달아도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연합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에덴 동산 밖에 있고,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요한복음 설교 속에서 여러분은 꼭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그가 정말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신지, 그가 참으로 우리의 왕, 제사장, 선지자이신 메시야이신지 확인하시고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열고 사도 요한의 증언, 세례자 요한, 그를 만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 보시고, 이 증언들이 정말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자세히 탐구하고 확인하시면서 어느 쪽이든 확신에 이르는 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한복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유대인의 명절과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예수께서 누구이신지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1장 1절부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하면서 성경의 첫 구절과 유사한 증언을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증언함으로써 예수께서 태초부터 계신 이,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이라는 것부터 증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유대인의 절기는 출애굽 사건과 성전봉헌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이 아홉 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가지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마침내 열 번째 재앙을 당하고 나서 제발 나가달라고 말하게 됩니다. 심판의 천사가 온 애굽 땅을 다 방문하며 장자를 치고 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 안에서 서서 양고기를 구어 먹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을 제외한 모든 집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을 때, 바로는 갑자기 그들을 출애굽 시킵니다. 그들은 너무 급하게 나와서 누룩 없는 빵을 한 동안 먹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후로 유월절 의식과 무교절 의식을 행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던 일을 기억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세 번의 유월절 기록 중에 마지막 유월절에 예수님은 잡히셨고 유월절에 사형 집행을 당하셨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과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초막절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불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던 일을 기억하며, 또 광야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 일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주님은 그 절기의 영적 의미를 밝히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광야에서 하나님이 만나를 먹이신 배경 속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광야에서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비쳐 주셨던 배경 속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한복음에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이 몇 개 있습니다. ‘믿었다', ‘증거한다’, ‘증인’, ‘생명’, ‘영’ 등. 이런 단어들을 염두에 두고 요한복음을 읽으시면, 사도 요한이 또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증거 하시고 깨닫게 하려 하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공관복음에서 미쳐 말하지 못한 깊은 영적 의미를 해설하는 요한을 따라가다가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깊은 영적 교훈과 증거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요한복음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저 나대로 요한복음을 연구하여 이 복음서가 증거하는 것을 잘 알아듣게 여러분을 섬기겠습니다.
God the Father is speaker, God the Son is the speech, and God the Spirit is the breath carrying the speech to its destination. The Spirit is also the power who brings about its effects. - Vern Poyth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