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을 지키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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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시편 119:9-16
“주의 말씀을 지키는 삶”
2019. 10. 11
조 정 수
제가 전공이 중국학입니다. 중국학은 이름 그대로 중국에 대해서 배우는 학과인데요. 중국의 언어, 문화, 사회, 정치, 역사, 문학 등등 중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그런데 제가 3학년 때 학과 수업 중에 “중국 고전문학의 이해” 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수업 때 무엇에 대해서 배웠는가 하면, “논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논어가 공자가 쓴 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모으고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래서 논어는 쉽게 말해 공자의 어록집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논어는 공자의 가르침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과거 조선시대에도 사서삼경 중 으뜸으로 높였던 책이었는데, 과연 그렇다면 논어의 가장 첫머리에는 무슨 말이 쓰여져 있을까요?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그의 제자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직하였기 때문에 논어의 가장 처음에 기록해 놓은 그 가르침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것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라는 말입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배우는 것과 또 그것을 끊임없이 익히는 것, 세상의 법도와 이치를 배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배우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익히고 연구하고 훈련하는 것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공자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행할 때 참된 즐거움이 있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세속에서의 명예나 성공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고 공부를 하는데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본 본문 말씀도 이와 같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가. 우리가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그 중심에 말씀을 두고 그 말씀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때때로 익혀야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9절을 보면,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답변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편 기자는 먼저 청년이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질문합니다. 여기서 청년은 어린 소년에서부터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건장한 장정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모두 일컫는 말로서 가장 힘과 열정이 넘침과 동시에 그만큼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단순히 나이를 구분 짓는 것을 떠나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아울러 표현하는 말인 것입니다.
따라서 청년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9절 말씀은 곧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시편 기자는 이 질문을 던져서 우리가 고민하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뒤이어서 시편 기자는 곧바로 답변을 던집니다.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이 답변은 우리에게 분명한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우리가 육적으로 영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주의 말씀을 지키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의 말씀을 어떻게 해야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주의 말씀을 지켜서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아멘.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시편 기자뿐만 아니라 과거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그랬고,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찾는 갈급함이 가득한 줄로 압니다. 나의 환난 때나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내가 의지할 바위가 되어주시는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 찾고 찾는 그 간절한 마음, 뿐만 아니라 내가 평온하고 기쁨이 넘쳐나는 때에도 나에게 이 큰 복락을 주신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나의 찬양과 경배를 받아주옵소서. 이처럼 주님을 찾는 갈급함이 우리 모든 심령 가운데 가득할 때에 우리가 자연히 주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일반계시로 우주 모든 만물 가운데에도 우리에게 영광의 빛을 비춰주시지만, 특별히 계시하신 성경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펼치고 그 깊고 넓은 세계로 진리의 바다로 헤엄쳐 가시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12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쳐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스승이 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지혜를 더하여 주실 것을 구하는 겸손한 간구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성경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편 1편 2절 말씀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특별계시로 성경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껏 양식 삼아 먹을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말씀, 그 율례들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의 때에 이미 이스라엘을 향하여 주신 그 모든 말씀,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금 다시 가르쳐주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몰라서 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혹은 하나님의 율례들을 잊어버려서 가르쳐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밤마다 머리맡에 앉은 엄마에게 어젯밤 들려준 동화책 이야기를 다시 들려달라고 칭얼거리듯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도록, 우리 심령에 깊숙이 새겨져서 영원히 잊히지 않도록 오늘 또다시 가르쳐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공자가 배운 것을 익히고 또 익히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받은 계시의 말씀, 우리 앞에 놓인 이 성경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주야로 묵상하며 읽는 그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임하여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이 솟구쳐 마음 가득 즐거움이 넘쳐나시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14절에서 기자는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16절에서는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재물”,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대상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재물이 가장 큰 즐거움일 수 있어요. 많은 재산, 땅, 건물.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즐거움이 될 수 있지요. 또 누군가에게는 재물이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즐거움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함께 발맞춰 걸어갈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또 누군가에게는 자녀들이 잘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일 수 있어요. 자녀들이 건강하고 좋은 직장 얻어서 순탄하게 사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획득했을 때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든, 아니면 거저 얻은 것이든 말이죠.
그런데 시편 기자는 그러한 최고의 즐거움이 주의 증거들의 도에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의 그 어떠한 즐거움보다도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어를 깊게 살펴보면, “그 이상과 같은” 이라는 뜻이 있어요. 그래서 다시 번역을 하면,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그 이상으로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다” 이렇게 번역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증거들의 도,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고 높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모든 재물이나 세상의 많은 유익을 즐거워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서 오는 깨달음의 지혜가 더해질 때에 무한한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15절과 16절을 우리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15절, 16절입니다. 시작,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아멘.
이 15절과 16절은 시편 기자가 자신의 다짐과 결심을 강조하여 나타내고 있는 구절입니다.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말은 우리말 성경에서는 보통 “묵상하다”라는 말로 쓰여지는데, 사실 묵상하다는 말보다는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말이 번역상 더 올바릅니다. 묵상은 소리 없이 조용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거든요. 히브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소리를 내서 중얼중얼 입으로 읽습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서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처럼, 성경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물론 소리 내서 읽든 묵상으로 읽든 은혜가 다르게 임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소리 내어 읽을 때 기억에 더 잘 남게 됩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는 눈과 입이 함께 읽는 것이 더 기억에 깊게 새겨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편 기자는 16절의 다짐처럼 주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잘 기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읊조리며 읽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다짐이고 결심이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입술에 감미로운 꿀과 같은 향기가 감도는 그 즐거움을 우리도 모두 맛볼 수 있도록,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주의 말씀을 지킴”으로 깨끗해진다는 답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곧 청년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지켜야 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데, 첫째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갈급함을 안고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일깨워주시는 지혜와 지식으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또 배우고, 끊임없이 익혀서 그것을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우리의 입술로 날마다 읽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때로는 지겹고 잠이 몰려오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입술로 읽고 마음으로 묵상하는 가운데 평안과 기쁨이 샘솟는 은혜가 반드시 찾아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 가지 방법,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찾고, 그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을 즐거워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어떤 풍파나 환난 앞에서도 담대히 승리하며, 세상의 그 어떤 유익보다도 크고 깊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득히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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