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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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하박국 3:16-19
“믿음으로 살리라”
2019. 6. 28
조 정 수
오늘 본문성경인 하박국서는 크게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단락은 1장과 2장이고, 두 번째 단락은 3장입니다. 첫 번째 단락인 1장과 2장은 하박국 선지자와 하나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 두 번째 단락은 하박국의 기도와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단락을 살펴보면, 하박국이 하나님께 항변하는 모습이 처음 등장합니다. 1장 2절 말씀인데요.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박국의 이 외침은 당시에 이스라엘의 의인들이 악인들에 의해 압제를 당하고 정의가 시행되지 않는 시대상황에 대하여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하나님은 구원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바라만 보고 계시느냐”는 절절한 외침이었습니다.
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의인들은 피해를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마땅히 심판 받아야 할 악인들은 도리어 의인들을 핍박하며 떵떵거리면서 살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이 의문을 약 2,600년 전의 선지자인 하박국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하박국은 참고 참다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그때 들려온 하나님의 대답은 하박국의 의문을 풀어줄 만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걱정스럽게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의인들이 고통을 당하느냐는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사납고 성급한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서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점령하게 하겠다.”
이 대답은 하박국의 질문의 요지를 벗어난 동문서답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박국이 조금도 예상한 적 없는 끔찍한 말씀이었습니다. 갈대아 사람을 통해 모든 성을 쳐서 점령하겠다는 이 말씀은 다시 말해서 갈대아 사람, 곧 바벨론제국을 통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점령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의인이 왜 악인들에게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고 질문했는데, 갑자기 왜 갈대아 사람으로 우리를 심판하겠다고 하시는 것일까?” 하박국은 너무나 황당해서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검은 양에게 괴롭힘 당하는 흰 양을 구해달라고 했더니, 이리떼를 풀어서 검은 양이고 흰 양이고 할 것 없이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처음에 하박국이 외쳤던 것보다 더 극심한 차원의 문제가 다가온 것이죠. 의인들이 구원받고 악인들이 심판당하는 것을 기대하고 외쳤는데, 악인만이 아니라 의인들까지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더군다나 그 심판을 행하는 자가 현재 이스라엘의 악인보다 더한 악인인 갈대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다시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1장 2절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하박국은 갈대아 사람들을 악하고 패역하며 거짓된 자들이라 말하며 어찌하여 그런 자들을 사용하여 우리를 삼키시느냐고 항변하였습니다. 눈이 정결하시고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 어째서 악인을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사용하시는 것인가.
하박국의 이 두 번째 항변, 두 번째 의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박국 2장 3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아멘.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종말이 반드시 올 것이니 비록 더디게 올지라도 인내하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장 하박국이 듣고 싶은 대답은 하나님께서 계획을 물리시고 악인은 심판하고 의인은 복을 주겠다고 하시는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하나님은 그저 기다리라고만 하십니다. “기다리라. 곧 일이 이루어질 것이니, 너는 잠잠히 그 일을 기대하며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이 말씀은 듣는 이를 답답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응답이 이루어지고 역사가 일어나는 거야?
아마 여러분도 이러한 경험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 당하여 이 일이 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전혀 응답이 없는 상황들. 꾸준히 기도 열심히 해왔는데 일은 안 풀리고 점점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암담한 상황들.
왜 그럴까? 간절한 기도에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실까? 내 삶이 혼탁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예배생활 잘 하고,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나라도 안 팔아먹고. 착실히 살았는데. 왜 내 삶은 더 어려워만 질까? 이 의문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의문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 될 의문이에요. 이 의문을 지금 우리도 갖고 있고, 2,600년 전의 하박국도 갖고 있었고, 스가랴, 예레미야, 다윗, 욥, 이들도 모두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경건한 삶을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도 고난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특히 욥은 신실하게 하나님 믿으면서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 때문에 재산을 잃게 되고, 자식도 잃게 되고, 몸의 건강까지 잃게 됐습니다. 욥이 갑작스레 그 모든 고통을 당하게 된 원인은 모순적이게도,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욥기 1장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욥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정도로 욥은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이 당하는 고통은 오히려 그 신실함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욥이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고난과 고통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욥이 그냥 적당히 정직하고 적당히 신실했다면, 하나님이 주목하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그랬다면 고통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욥은 당대에 견줄 자가 없는 완전한 믿음의 소유자였기에 사탄의 시험을 당하게 되었고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산을 잃고 자식도 잃고 몸에 고통스러운 병이 들어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한 번도 아니고 연타석으로 오는 상황 속에서도 욥은 자신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날이 계속되다 보니까 결국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서히 원망을 하기 시작합니다. 욥기 3장 1절을 보면, 욥의 저주가 시작됩니다. 욥기 3장 1절,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아멘. 욥은 자기가 태어난 것 자체를 저주합니다. 그리고는 나아가서 이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이릅니다. 욥기 9장 17절 이하에 욥은 하나님이 까닭 없이 나에게 상처 입히시고 나를 괴롭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2절과 23절에서는 급기야 이렇게 말합니다.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아멘. 지금 욥은 하나님이 의로운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똑같이 멸망시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구별이 하나님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죄한 사람이 절망에 빠지고 참혹한 죽음을 당해도 긍휼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비웃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참람된 말을 쏟아낸 뒤에도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저주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자신이 받는 고통의 부당함에 대해 호소합니다. 그런 욥에게 세 친구들이 찾아와 논쟁을 벌입니다. 그들은 욥이 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고난이 찾아왔으니, 하나님께 회개하고 의롭게 살라고 충고합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정도로 신실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죠. 이 친구들은 선의 결과는 복이고, 악의 결과는 고난이라는 고리타분한 신앙으로 욥을 정죄하고 있기 때문에 욥은 전혀 그들의 말에 승복하지 못합니다. 내가 뭐 아무 죄도 안 지었는데 너희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또 나중에는 엘리후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욥을 비난합니다. 당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데, 그거 교만입니다. 어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높이고 있습니까? 이렇게 막 뭐라고 하니까 욥이 더 할 말이 없죠. 싸가지가 없긴 한데 구구절절 맞는 말이거든.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욥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들과,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서 말씀하시고는 그것이 다 나 여호와가 만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 앞에서 욥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됩니다.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욥기 42장 5절에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아멘.
욥은 자기가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욥기 2장까지는 욥은 분명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그의 신실함은 깨어지고 원망과 저주가 흘러나왔습니다. 신실하고 정직하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지고, 남은 것은 원망이 가득한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주한 그 때에 옛사람은 깨어지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이 아니라, 눈으로 본 하나님은 감히 자신의 의로움을 갖다 댈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의로우신 분이었고, 너무나 선하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 앞에서 자신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고, 너무나 죄 많은 인간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욥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여호와에 대해 말한 것이 옳지 못하다.”
이 말씀은 욥기에서 긴 분량 동안에 이어진 욥과 친구들의 긴 논쟁이 단지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 지식에 불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이러쿵저러쿵 떠든 그 모든 말이 다 틀렸다. 그것은 너희가 머리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차원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의 생각을 뛰어넘고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이며, 너희가 나를 보고 만날 때에야 너희가 진정으로 나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선하시고 신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 선하심이 얼마나 깊은지, 그 신실하심이 얼마나 높은지, 그 사랑이 얼마나 넓은지,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획하신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 가운데 처하게 하시는지, 왜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시는지. 왜 응답 없는 고요 속에서 혼자 몸부림쳐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서 놀랍게도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찬양이 순수한 기쁨과 즐거움에서 나온 찬양이 아니라 갈대아사람들을 통한 환란을 앞둔 비장한 심정으로 올려드리는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하박국은 갈대아사람이 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렸으며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온 것과 같은 두려움과 참담함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으면 창자가 흔들리고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와서 뼈가 썩는 것 같은 지경이 되었을까요?
그런데도 하박국은 그 두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비록 이 환란으로 말미암아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는, 이런 소망 없고 아무런 희망 없는 환란이 닥친다 할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처음에 갖고 있던 의문, 왜 의인은 고통당하고 악인은 형통하는가 하는 그 의문은 어쩌면 그 뒤로도 풀리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 이유에 대해서 더이상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뜻에 따르며 기다리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가시든, 어떠한 곳에 끌고 가시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순복하겠다는 거룩한 결심이었습니다.
이 결심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함께 오늘 본문 17절부터 19절까지를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아멘.
하박국의 이 찬양이 우리의 찬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 나에게 문제가 있고, 내가 가진 재산이 없고, 나를 위로해 줄 친구조차 없을 지라도, 나에게 하나님 한 분만 계신다면,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문제나 고난을 만나더라도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쁨의 찬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향수병이 거친 바위에 부딪쳐 깨졌을 때 그 안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흘러나오듯이, 겉만 아름다운 향수병이 아니라, 비록 겉은 조금 볼품없더라도 그 안에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고난에 짓눌려 쓰러지더라도 여러분에게서 그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이 나오고 시기와 다툼이 아니라 봉사와 헌신이 더욱 배어나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 이웃과 세상을 향하여서 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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