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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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도 말과 행동으로 선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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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도 말과 행동으로 선교하자

우리는 모두 선교사이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올해 5월에 올라온 김성현 신부님 다큐멘터리를 혹시 보셨는지요. 제목은 “초원의 바람”입니다. 유튜브에 있으니 한 번 찾아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전교주일을 맞아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저에게 가장 감명깊었던 것이 있습니다. 김성현 신부님은 선교학을 전공하시고 또 선교학으로 유학도 다녀오셨습니다. 그런데 뭐 서품 받고 사제 되면 하고 싶은 데로 할 수가 없지요. 당연히 평범한 교구 사제가 그러하듯, 어느 본당의 보좌 신부님도 하셨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하고 싶으신 것은 바로 선교였지요. 그렇게 선교라는 이상과 본당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 하시다가 깨달은 게 있으시답니다. 바로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바로 선교지이며, 본당 신부도 선교사이다.”라는 깨달음입니다. 이런 접근이 아주 저에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습니까. 신앙인은 세례를 받는 그 순간부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과 선교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다 선교사입니다.

부족함의 문제: 제자들도 부족한 사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선교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그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일까요. 나는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교리에 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믿음도 그다지 커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을 한 번 봅시다. 누가 나옵니까. “열한 제자”가 나옵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마태오 복음의 맨 마지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열두 제자를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열둘이 아니고 열한 제자입니까. 한 명은 어디 갔습니까. 바로 그 한 명이 유명한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이지요.
이미 여기서부터 이상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열둘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시간을 쭉 되돌려서 창세기, 탈출기 때를 떠올려 봅시다. 이스라엘 민족에 지파가 몇 개였습니까. 열두 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열두 명 뽑으셨다는 것은 이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을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명이 모자라다는 것은? 무언가 부족해 있는 상태, 완전해 있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지요.
또 하나의 증거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문제삼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꿰뚫어 보시면서 “왜 나를 의심하느냐?” 이렇게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그 상태 그대로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하시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지요. 제자들은 무언가,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부족해도 선교하자

그러니 우리의 부족함은 예수님께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해서 선교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선교하면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습니다. 부족한 지식, 부족한 믿음, 부족한 사랑을 선교를 통해서 배우고 채우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가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이 미사가 끝나면 당연히 우리는 성당에서 벗어나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선교하라는 사명을 받았음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선교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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