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을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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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역대상 15:25-29
“”
2019. 12. 13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다윗이 두 번째로 여호와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려고 시도하여 마침내 옮기는데 성공하게 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서 13장을 보면, 다윗이 첫 번째로 옮기려는 시도를 하였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때는 끔찍한 실패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수레에 실어서 옮기다가 수레를 끌고 가던 소들이 날뛰자 여호와의 궤가 흔들렸고, 그래서 웃사라고 하는 사람이 급히 궤를 손으로 만졌다가 여호와의 진노를 사서 죽임을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사건은 하나님이 너무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여호와의 궤가 넘어질까봐 그것을 막으려고 손으로 조금 붙잡은 것이 그렇게 죽임을 당할 만한 일이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이죠. 인간의 상식과 윤리로 생각했을 때는 하나님이 너무나 쉽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역대상 15장 13절을 보면, 다윗이 이 실패한 일을 두고 한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다윗은 우리가 실패한 이유,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가 단지 여호와의 궤를 손으로 만졌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규례대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 레위 자손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갔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방인들처럼 수레에 떨렁 실어서 갔기 때문이고, 또 그 수레 옆에서 마치 언약궤를 지키는 수호자인 양 거들먹거리며 걸어가다가 수레가 흔들리자 이때다 싶어 궤를 붙잡은 교만 때문에 우리가 실패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실패가 단지 웃사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이스라엘 전체의 실패이고, 이스라엘 전체의 찢어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만진 것은 웃사이지만, 설령 그 수레 옆에 웃사가 아니라 다른 누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언약궤를 만졌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고백인 것입니다.
다윗은 이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두 번째 시도에는 시작부터 철저히 준비를 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이 일을 단지 인간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일로 여기고 철저하게 규례대로 준행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낮아지고 낮아져서 겸손함 가운데 준비하고 이 일에 동참하는 모두가 성결을 지키며 준행할 때에 하나님이 은혜를 더하셔서 능히 성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다윗이 깨달았고, 그것을 온 백성과 더불어 실천함으로써 마침내 은혜 가운데 성공적으로 언약궤를 예루살렘 다윗 성으로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것,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발 앞서서, 이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방식이나 사람의 생각, 윤리, 도덕으로 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맡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 줄로 압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고, 사람을 통해 많은 일들을 이루시는데, 특별히 우리 광주서광교회를 통해서 크고 놀라우신 일들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소망하며, 그날을 기대하며. 우리가 맡은 여러 모양의 일들을 능히 잘 감당해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습니다. 실질적으로 궤를 멘 사람은 레위 자손들이지만, 궤를 멘 레위 자손들과 함께 오벧에돔의 집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오는 그 여정을 모두가 함께하며 합심하여 이 일을 감당하였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일을 감당할 때에 참여한 모두가 즐겁게 감당하였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올라왔다는 것.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하였을 때, 언약궤는 잠깐이지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었습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떨어져 웃사를 죽게 한 언약궤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궤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다윗마저도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한탄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언약궤를, 이제는 온 백성이 합심하여 한 뜻으로 즐거워하며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로 우리를 불과 같은 재앙으로 때리시고 고난과 역경을 주시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안다면 이처럼 우리는 즐거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맡는 것이 설령 두렵고 떨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에게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득히 누리며 능히 감당해 나가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본문 26절을 보면, 온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옮긴 것이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셨기에 이룰 수 있는 일이었음을 고백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은 기쁨과 즐거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누가 시켜서 감사하는 것 아니요,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도우셨음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히 감당할 힘을 주셨음을 알기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저절로 감사의 노래가 솟구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심에 감사하고, 또한 때때로 힘과 능력을 주셔서 능히 감당케 하시고, 열매의 기쁨을 주신 그 은혜에, 감사의 찬양과 고백을 힘껏 노래하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즐거움과 감사만 넘쳐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우리는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절에 보면,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갈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다윗의 아내였습니다. 다윗과 한이불을 덮고 자며, 함께 식사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는 아내가 남편의 기쁨과 감격에 조금도 공감을 하지 않고 있어요. 저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싱글이라서 남녀의 문제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정상적이지는 않게 보입니다.
만약에 다윗이 로또에 당첨돼서 춤을 췄다면, 그때에도 미갈이 업신여겼을까요? 아니요. 아마도 같이 팔짝팔짝 뛰면서 더 좋아서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로또 1등이 아니라 3등에만 당첨됐어도 춤을 추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미갈은 이와 같은 세속적인 일이 아닌,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어요. 무슨 그런 일로 왕의 체통도 없이 구냐며 타박을 했습니다. 사무엘하 6장 20절에 보면, 미갈이 다윗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 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너무나 신랄한 비난입니다. 왕이 춤을 춘 일이 방탕한 자가 자기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낸 것과 같은 천하고 염치없는 일이었다는 거예요. 왜 다윗이 춤을 췄는지, 왜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기뻐 날뛰었는지, 조금도 관심이 없고, 그저 춤을 춰서 체통을 잃어버렸다는 것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 미갈은 이렇게 다윗의 감격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을까요. 왜 다윗을 업신여겼을까요.
그 이유는 미갈이 하나님의 일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로또가 당첨되거나, 세상의 명예나 권력, 그것들을 조금만 맛보더라도 기뻐하며 춤을 췄을 것이지만, 조금도 관심이 없고 흥미도 없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이 어찌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갈은 기뻐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일하는 그 기쁨과 감격을 안다면, 결코 미갈은 이와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크고 기쁜 일인지,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미갈은 함께 뛰지는 못하더라도 결코 업신여기거나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조금도 몰랐기 때문에, 다윗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그 열정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미갈은 온 백성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단지 한 명의 관객처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로 미갈은 평생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만약 미갈이 다윗을 부끄러워하거나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뛰어 놀았다면, 어쩌면 미갈을 통하여 또다른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갈에게 자녀를 주셔서 다윗의 새로운 계보가 만 대까지 흘러가는 복이 임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업신여기는 불신앙의 계보가 이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일을 업신여기고 그 기쁨을 폄하하는 죄악의 입술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미갈의 태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사명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돌아보는 귀중한 오늘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일, 전도하는 일, 봉사하는 일, 가르치는 일, 구제하는 일. 교회와 세상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일들을 대하여, 결코 무관심으로 고개 돌리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도저히 감당하기 버거운 일도 있을 것입니다. 왜 꼭 내가 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도 일어날 수 있어요.
저 역시도 신학을 결심하고 전도사로, 또 지금은 강도사로 사역하고 있지만, 이 길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한숨이 있었습니다.
갔다 하면 죽는다는 악명 높은 십자가의 길을 꼭 가야하나. 그러나 하나님은 가라고 하십니다. 그 길이 진정으로 사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해 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분명히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그 안에 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는 오늘, 새로운 2020년 한 해에, 우리를 통하여 이루실 놀라우신 일들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다같이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함께 기쁨의 찬양과 감사의 제사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며,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가득히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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