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의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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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과거 혁신을 잘하는 기업이 각광을 받았다면
오늘날은 콜라보를 잘하는 회사가 트렌드를 선점 합니다.
혁신도 마찬가지였지만 콜라보는 협업을 통한 새로움의 추구 라고 할 수있습니다.
야쿠르트x베라31 나이키xoffwhite
이것은 단순한 브랜드와 브랜드의 조합인 플러스의 개념 이라기 보다는
효과를 극대화 하는 곱하기의 개념 입니다.
오픈 콜라보래이션 이라는 것은
같은 목표 아래 누구와도 협업 할 수 있다는 개념 입니다.
이 협업을 통해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채우고 또 배우는 윈윈의 기회 입니다.
우리가 초대교회에서 부터 오늘 본문의 3차 전도 여행 까지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가 명확하게 발견 할 수 있는 부분은
복음 전파 라는 대의 아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권속들의 협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 날 구세군 시드니 한인 교회는 이 자리에 세워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통해 일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3차전도여행의 기사 더 정확하게는 고린도와 에베소 사역을 통해서
악한 세력의 도전에 맞서 이기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협력을 볼 것입니다.
내가 속한 이 교회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이김의 협업을 할 수 있을지 깊히 생각하고
명확한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브리스길라+아굴라 X 아볼로
아볼로 X 바울
1. 브리스길라+아굴라 X 아볼로
1. 브리스길라+아굴라 X 아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아볼로의 평신도 간의 협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특징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들의 협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8:27 (NKRV)
…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어떤 협력이 있었기에 많은 영적 유익을 믿는 자들에게 주었을까요?
“담대히(παρρησιάζομαι)” 에서 “더 정확하게”(ἀκριβῶς)로
“담대히(παρρησιάζομαι)” 에서 “더 정확하게”(ἀκριβῶς)로
“담대히(παρρησιάζομαι, 파레시아조마이)” 에서 “더 정확하게”(ἀκριβῶς, 아크리보스)로
아볼로(Apollo)는 유대인 입니다.
그의 고향은 알렉산드리아 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북 아프리카 지중해 지역 중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 지역에 인접한 도시로
무세이온(Musaeum, Mouseion) 라는 도서관이 있었고 기원전인 이집트 전성기 때 부터 그 이후로도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하고 집필을 하게 하는 등의 학문의 중심이었던 곳입니다.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필로(Philo)라는 유대인 대학자가 있었던 곳이고
예수님 시대 이전에 이미 쓰여진 70인역이 간행 된 곳도 알렉산드리아 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아볼로에 대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라고 소개 합니다.
그는 학자요 연설가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주의 도를 배우고 그 도를 열심히 그리고 담대히 전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런 그가 만난 사람은 아주 상반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이었습니다.
학자의 길을 걸었던 아볼로가 만난 사람들은 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아굴라와 그의 부인 브리스길라 였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더 정확하게 풀어”라는 말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사역을 설명 합니다.
학문이 상대적으로 깊고 열정적으로 주의 도를 전하고 있는 아볼로가 더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알고 있고 아볼로가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힌트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는 25절로 다시 돌아가봐야 합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모든 성경에 대한 지식과 언변, 그리고 열심과 담대함을 갖춘 아볼로에게는 한 가지 불완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요한의 세례만 믿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을 것임을 쉽게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들과 여러가지 모호한 신앙이 존재 했습니다.
지금 같이 교리가 정리되고 정경이 확립된 시대와는 다릅니다.
믿음을 더 명확하게 할 더 정확한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였습니다.
바울을 만나기전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로마에 살때 부터 신앙을 가졌지만
바울을 만나면서 더 확실한 신앙의 진리를 알게 되었고
그 결과 바울과 동역하면서 예수의 제자된 삶이 어떤 삶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삶의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볼로도 성경을 공부하고 요한의 세례와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 라는 것을 배웠지만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개 낀 것같이 뿌옇던 그의 영적 식견에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말씀의 증인으로 살 수 있게 된다는
명료한 복음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새로운 교육은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세세한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패트릭 슈라이너; Patrick Schreiner- 패트릭 쉬레이너
이미 알던 것을 명확히 하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더 정확하게”(ἀκριβῶς, 아크리보스)” 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조용히 데리가서 나누는 성도의 정서적으로 교류와
서로 서로 성장 할 수 있게 돕는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치는 교제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 세 사람의 만남은 아주 특별합니다.
이 평신도 간의 만남은
지식이 많다고 하여 교만 하지도 않고
성경의 지식이 많고 열정적인 전도자 앞이라고 하여서 위축됨도 없었습니다.
소탈하고 정감 있는 정서적 교류와
더 정확하게 하나님의 도를 풀어주는 가르침의 나눔과 영적 성장이 있는
그저 복음의 진리 앞에 순수한 콜라보래이션 이었습니다.
적용:
우리는 복음에 대한 대략의 지식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나름 성경을 깊히 있게 공부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를 수 있고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깊히 있게 공부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배움으로서 서로 지식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누가 더 높고 더 낮음은 없습니다.
이번에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느낀 것이 많은데
특히 이번 컨퍼런스가 좋았던 것은
교회가 크고 작고 상관 없이
내가 아는 것은 알려 주고 내가 모르는 것은 서로 물어보면서
앞으로 서로 돕는 목회의 좋은 동역자들을 많이 얻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각자 다른 속도로 성숙해 가듯, 한 영역에서 어떤 사람은 성큼성큼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나중에 따라잡아야 하듯,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어서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 원천에서도 배우고, 성경을 통해,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믿음의 가족의 평범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든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톰 라이트-
여기서 관가 하면 안될 부분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영적 실력 입니다.
예수 복음에 대해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잘 가르쳤지만 이 부부도 잘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지금 까지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참령급 사관님들이
여러분 다녀 가셨습니다.
이것은 좋은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처럼
오늘 예수 복음에 대해 5분 동안 설명 하라면 할 수 있습니까?
나의 받은 은혜를 간증하라면 할 수 있습니까?
부서에 공석이 생기면 큐티를 나누면서 인도 할 실력이 있습니까?
그게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이 평신도 부부의 실력이었습니다.
아볼로는 자신의 지식과 언변이 있었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생업을 해야 하는 평신도 였습니다.
그런데 영적실력이라는 것은 지식이나 경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데는 그런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충성되고 얼마나 복음 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느냐의 문제 입니다.
지금 내가 그 부분에 부족하다면 배우고 훈련 해야 합니다.
못한다고 덮어둘 수 없는 일이고 가장 시급한 일이기 때문 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실력과 충성됨은 담대하게 또 좋은 인품으로
아볼로 라는 훌륭한 선교사를 온전하게 서게 했습니다.
자신들도 교회를 섬기며 자신들의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베푸는 선교사로 살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성도의 합력함은
믿는자 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2.아볼로 X 바울
2.아볼로 X 바울
오늘 본문은 바울이 2차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갔다가 다시 3차 여행을 떠나 다시 선교지로 나아가는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2차 전도 여행은 많은 어려움에 나약하고 두려워 떠는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던 시기 였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핍박은 극에 달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로 법정에 끌려 갔었고
그를 돕던 사람들은 위협을 받고
회당장 소스데네는 바울을 숨겨주거나 도운적이 없는데도
모함을 받아 폭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만날때마다 폭행의 위협과 격렬한 논쟁에 노출 되었습니다.
사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갈때,
다시 돌아오겠다는 확답을 하지 않고 떠났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바울은 1년 6개월을 고린도에서 보냈지만
주의 성령의 환상이 없었다면 떠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에 대해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 상황에 3차 전도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바울에게 아볼로의 등장은 어떤 의미 일까요?
초대교회 역사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볼로 라는 이름이 등장했을때 스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분열의 장본인으로 기억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분란 중에 아볼로파와 바울파로 나뉘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바울 입장에서는 아볼로는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특히, 아볼로는 바울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볼로를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고 소개 합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상당수의 성도님들은 바울이 언변이 좋고 학식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바울의 고백은 다릅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우리는 바울서신을 멀리 떨어진 교회와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 교훈과 지침을 주며 사랑의 교제를 하기 위한 거룩한 목회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지만 당시 바울을 비난하던 자들은 바울에게 험한 말로 아프게 했습니다.
이 구절은 한글로 번역 되면서 순화되었지만 원어번역에 보면 바울은 스스로를 혹독하게 평가 합니다.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비천하고’ 떠나 있으면 ‘겁쟁이 개와 같이 짖는’ 나 바울은”
정작 만나면 아무말도 못하고 떠나서 편지할때만 목소리를 높힌다고 빈정 거렸습니다.
바울의 약한 부분은 언변 이었습니다.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아볼로의 장점은 바울의 가장 약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수 많은 재주가 있어도 못하는 한 가지에서 열등감을 느끼기 마련 입니다.
고등학교 전교 2등을 하는 사람은 1등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전교 1등은 전국 1등에게 열등감을 느낍니다.
서울대학교 합격한 아이는 아이비 리그 못가서 열등감을 느낍니다.
내 지향점이 멀리 있으면 있을 수록 열등감은 더 강력하게 휘몰아 칩니다.
바울은 열등감을 느꼈을까요?
아마도 사울이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볼로를 처음 만났을때는 잠시라도 위축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볼로를 동역자로서 존중 합니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바울이 아볼로를 존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소명을 받았다고 믿었으며
각자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 했기때문 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바울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거의 모든 지역을 짧은 시간을 머물면서 먼 거리를 이동 했습니다.
마치 넓은 지역을 다니며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대를 마주하면 그곳을 떠나는 일이 반복 되었습니다.
물론 아볼로도 전도를 하며 이동 하였지만 바울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떠날 시기를 잡는 것에 대해서는 지난 설교를 통해
잠시 설명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았지만 바울 자신도 의문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볼로의 등장으로 바울은 이 의문점에 대한 해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씨를 뿌려 놓은 곳을 다니며 물을 주는 역할이 아볼로의 역할 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장 부족한 부분인 언변을 가진 아볼로는 유대인들의 말을 이겼습니다.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유대인들의 말을 이기는 것은 바울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것을 아볼로는 해냈습니다.
하지만 이 이김은 아볼로 혼자만의 이김이 아닙니다.
바울과의 합력의 결과 입니다.
바울이 씨를 뿌리고 아볼로가 물을 주는 협업 위에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어떤 개인의 승리가 아닌 복음의 승리 입니다.
바울은 바나바가 그랬듯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열등감으로 받지 않고
협업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은 각자의 이름을 내고 세력을 모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동역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 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칫 가장 좋은 동역자를 적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그와 나의 동역을 방해 하는 것은
나의 자존심과 주변의 잘못된 추종입니다.
선한 목표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종종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하시기도 합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볼로가 있던
고린도를 피해 에베소로 갑니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는 에베소를 피해 고린도로 갑니다.
어떤 성도가 교회에서 가장 취약한 부서를 찾아 그곳에 가서 헌신 한다면
그 헌신은 누구를 위함도 아닌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함 입니다.
교회는 경연장이 아닙니다.
세력 싸움을 하는 정치판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영혼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동역하는 공동체 입니다.
바울과 아볼로의 동역은
서로의 명확한 역할을 이해하고
서로의 사명을 존중하면서
각자 역할에 충성하였고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였고
그 어느 곳에도 공백이나 차질을 만들지 않고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갔습니다.
결론
결론
바울의 전도 여행의 여정은 바울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회심하는 시점에서 베드로와 바나바
그리고 전도여행을 함께한 실라와 디모데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아볼로 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콜라보래이션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하나님은 이들의 겸손을 들어서 복음이 전진하게 하였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들의 합력함이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들과 같이 모두 선교사 입니다.
선교사는 어떤 삶을 삽니까?
선교사는 그저 해외에 나가 선교를 하는 사람이라는 틀을 깨야 합니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국을 떠나온 사람 입니다.
선교사는 베푸는 사람 입니다.
선교사는 함께 눈물 흘려주는 사람 입니다.
자신의 삶 보다 타인의 삶을 더 보살피는 사람 입니다.
나는 선교사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 하십니까?
바울을 통해 위안을 받으시고 도전을 받으십시오
그는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지만 동역함으로 이겼습니다.
나는 생업이 있어 안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도전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선교사의 삶을 누군가 멀리 타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들을 불상해 하며 외면하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시간을 복음 전파할 수 있는 영적 실력을 키우는데 투자해야 합시다.
누군가는 오늘도 좋은 차를 사고
앞으로 가격이 오를만한 부동산을 사는데 돈을 쓰며
그것을 과시하며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른데서 그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돈을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우리의 돈을 우리가 직접 선교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단기 선교로 장기 선교 후원으로 써야 합니다.
누군가는 몇천불씩 낭비하느냐 말할지 모르지만
어떤 청년들은 렌트방을 빼고 차에서 잠을 자며
단기선교를 위해 비행기 값을 모으고
그 돈을 복음전파를 위해 아낌 없이 사용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이 땅에서 부터 시작하여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가치 있는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 합니다.
모두 일어나셔서
찬양 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일하고 피곤하다하여서 밀어두었던 영적인 훈련과 실력을 키우는 일에 나의 시간을 투자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민생활하면서 나태하여진 나의 신앙생활을 이제는 첫사랑의 열정으로 되돌아가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돈을 이제는 정말 가치 있는 일에 쓰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