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든지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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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초등부 헌신예배>
열왕기상 3:4-15
“하나님의 마음에 든지라”
2020. 10. 18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두고 "하나님의 마음에 든지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의 마음에 들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라는 말이 됩니다. 주이 마음에 든지라. 이것은 곧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에 흡족한 대로 솔로몬에게 많은 복을 베풀어 주셨다.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내용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솔로몬. 그렇다면 과연 솔로몬의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것일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요? 오늘 그 이유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한 예배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솔로몬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갑니다. 거기에는 큰 산당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때 당시에는 아직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산당에 갔습니다. 산당은 이방인들이 이방 신들을 위해 제사 지내던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다가 우상숭배에 빠져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솔로몬도 마찬가지예요. 언제든지 우상에 빠져버릴 수 있어요. 제사 드리다가 잠깐 한눈 팔면 나도 모르게 이방 신에다가 제사를 지내고 마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솔로몬이 먼 나중에 천 명의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들이 들여온 이방 신들을 용납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이 이처럼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던 것에서 비롯된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혼탁한 곳에서 예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에요. 다만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그러한 위험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산당에서 드린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기쁘게 받아주셨어요.
장소가 어떠하든지를 떠나서 이때 솔로몬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3장 3절을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가 어디에서 제사를 드리든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솔로몬의 중심을 보시고, 그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그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일천 번제를 드린 곳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물으셨어요.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하나 줬으니까, 나도 하나 줘야겠다, 하고 일천 번제에 대한 값을 치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많은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거기에 감동을 받으신 것도 아니에요.
로마서 11장 35절에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누구도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갚는다는 것은 빚을 지고 그 빚을 청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하나님께 빚을 지울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제물을 많이 받으신다고 놀라거나 감동하실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제물의 많고 적음에 감동하시지 않아요. 다만 드리는 이의 마음을 보십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릴 때도, 온 맘과 정성으로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흡족히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향유를 아끼지 않은 여인처럼, 솔로몬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의 제사를 드린 거예요. 그리고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드린다는 것, 그것은 곧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유초등부 헌신예배로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드릴 때 반드시 하나님이 받으시고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은 겸손한 자였습니다.
오늘본문 5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십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든 내가 너에게 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솔로몬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인 다윗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 은혜가 무엇인가 하면 다윗을 이어서 왕이 될 아들을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위를 이을 아들을 은혜로 주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7절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내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었는데, 내가 작은 아이라서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내가 맡은 일에 대해서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한 마디로 "나는 왕으로서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겁니다.
또 8절에서는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작은 아이에 불과한데, 내가 왕으로서 다스려야 하는 백성은 큰 백성이라는 거예요. 나는 작은 아이, 저들은 큰 백성. 이렇게 자신과 백성을 대조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정치인들과 매우 비교되는 모습이죠. 나를 포장하고, 거짓으로 꾸미는 많은 정치인들이 있는데, 솔로몬은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어요. 나는 작은 아이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출입할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솔로몬은 매우 명석한 사람이었어요. 아직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기도 전인데도 매우 똑똑하고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열왕기상 3장 1절을 보면,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의 딸과 결혼을 하거든요. 바로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애굽이라고 하는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왕권을 공고히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뛰어난 정치감각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그 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보면,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아도니야와 아비아달, 요압, 시므이까지도 정리를 하면서 자신의 왕권을 다잡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머리가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따라서 솔로몬이 매우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솔로몬이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솔로몬의 나이는 스무살이었어요. 어쩌면 그보다 더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결코 나이가 작은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러므로 작은 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이 작고 작은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내가 왕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그 직분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나를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솔로몬은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애굽이라고 하는 든든한 배경도 있고, 자신을 위협할 라이벌들도 다 사라져서 앞으로 꽃길만 놓여져 있는 것 같지만, 솔로몬에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맡기신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것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명석한 두뇌로도 어려운 일이었어요.
저 큰 백성, 오래 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셨듯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는 저 큰 백성을 내가 어떻게 잘 다스려나갈 수 있을까.
그러한 부담과 두려움 앞에서 솔로몬은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그것을 구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허락하시는데, 때로는 분에 넘치는 엄청난 것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로, 그래서 "나는 못합니다" 하고 포기하고 도망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유초등부 헌신예배를 드리시는 우리 교사 선생님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신앙을 지도하는 교사의 직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 말씀을 가르치고 이 아이들의 본이 되기 위하여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때로는 부담이 되고 어려운 것이 바로 교사입니다.
그러나 교사로 세우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아이들을 맡기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거나 가르치는데 탁월한 어떤 은사가 있어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하여 변화시킬 아이가 있기 때문에, 나를 통하여 그 아이의 인생에 기억될 말씀 한 구절을 가르치시기 위해 나를 교사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세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담대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는 작은 아이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명이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큰 무게로 다가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믿으며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겸손한 가운데 담대하게 맡은 직분에 충성을 다하는 우리 유초등부 교사 선생님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이유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자기를 위하여 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고 구합니다.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구했어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듣는 마음을 통해서 주의 백성을 재판할 때 선악을 분별하게 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고대에는 왕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재판을 하는 일이었는데, 오늘처럼 과학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재판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판결을 내려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재판할 때에 결코 그러한 억울한 백성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 큰 백성을 재판할 때 그들의 송사를 잘 듣고 잘 분별하여서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왕으로서 구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왕이라면 전쟁을 잘하는 능력이나, 백성들을 잘 설득할 수 있는 언변과 같은 것을 구하는 것이 더 유익한 일이었을 겁니다. 또는 진시황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권력자가 바라는 무병장수를 구한다거나, 원수의 멸망을 구하는 것이 더 유익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은 다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성도들도 흔하게 구하는 것들입니다. 육신이 강건하게 장수하는 것, 물질의 복을 얻는 것, 원수 마귀가 멸망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우리들도 하나님께 구합니다.
이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을 구하는 것이 왜 나쁘겠어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요.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구할 때에, 우리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내가 이것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까?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일까?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하나님은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구할 때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을 구하는 솔로몬의 마음이 거짓됨이 없이, 왕이라는 직분을 자랑하거나 교만함이 없이, 오직 하나님이 맡기신 백성들에 대한 걱정과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하는 거룩한 부담감으로 가득한 것을 보셨기 때문에, 솔로몬의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 듣는 마음을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이라고 바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하였지만, 하나님은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곧 듣는 마음이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듣는 다는 것,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쉐마 이스라엘. 신명기 6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던 이 말,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이여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법도를 들으라는 이 말이 과거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어져 있습니다.
듣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법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설교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며 그 안에서 나의 심령에 부딪쳐오는 감동에 주목하고, 귓가를 두드리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구하였던 “듣는 마음”, 그 마음을 오늘 우리도 구하여서 참으로 세상 가운데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그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우리가 얻고,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 우리가 꼭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들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마음에 든 자,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든 자가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량없는 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또 14절에서는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라고 장수의 복까지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아낌없이 주십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 하나를 구하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과 장수의 복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이 모든 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 이는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그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하여서 첫째로 전심으로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자기의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따라 그 직분을 따라 맡은 바 책임과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헌신예배로 드리는 우리 유초등부 어린이들이 참으로 솔로몬과 같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장차 교회의 다음세대를 책임지고, 세상에서 크게 쓰임 받을 우리 유초등부가 “듣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세상에서 유익한 말들을 잘 분별하여 들을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이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처럼. 우리가 이 세 가지의 것을 잘 지켜서,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성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 우리가 구하는 것만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받아 차고 넘쳐나는 크신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