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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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의 생명 본문: 요한복음 4:1-6 찬송: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한 사람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한낮에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얼핏 보기에 너무나 다릅니다. 마치 밤과 낮처럼,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사람의 영혼 깊숙한 곳에는 동일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물을 향한 갈증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10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말씀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이 생수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영혼이 진정으로 목마른 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 종교성과 영성의 괴리>
우리는 종종 종교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혼동합니다. 마치 니고데모가 율법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a)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당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을 꿰고 있었고, 종교적 의례를 완벽하게 수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갈급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어떠했습니까? 그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였고, 종교적으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도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요 4:25)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봉사하고, 헌금하면서도 종종 우리의 영혼이 메마른 것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는 종교적 행위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즉 영적인 삶에는 서툴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2)
우리의 신앙생활이 단순히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형식적인 말의 나열이 되어버리고, 우리의 예배가 그저 주일 아침의 의례가 되어버리면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진정한 영성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것은 니고데모처럼 밤중에라도 진리를 찾아 나서는 열정이며,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성과 영성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에 있습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우리의 종교성은 참된 영성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피상적 종교성의 위험과 인간의 실존적 운명>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더 이상 물 길으러 오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종종 신앙의 본질보다는 지금 현재 삶의 축복과 편안함만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의 물, 즉 세상적인 성공과 안락함은 잠시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곧 다시 목마르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명의 물입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 안에서도 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 높은 직분을 얻고자 하는 마음,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싶은 바람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이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 영혼 깊은 곳의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모든 인간의 죄값을 치뤄야 하는 운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니고데모였든, 사마리아 여인이었든, 아니면 오늘을 사는 우리였든 간에 우리 모두는 이 죄로 인해 죽는다는 운명 앞에서 평등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 지위, 학식이 과연 이 실존적 죄로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니고데모의 종교적 지위나 사마리아 여인의 사회적 지위가 그들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듯이, 우리의 세속적 성취 역시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9b)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동시에 도전을 줍니다. 우리의 구원, 우리 영혼의 궁극적인 갈증 해소는 우리의 노력이나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는 겉으로 들어나는 종교성에서 벗어나,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직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듯이,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듯이, 우리도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갈망을 채우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겉모습만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성의 위험에서 벗어나 참된 영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존적 운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과 현대 기독교의 도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종교성과 영성의 괴리, 그리고 겉모습만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성의 위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 바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4장 6절 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4:6 NKRV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낮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예수님은 피곤하여 우물가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가장 연약하고 피곤한 순간에도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고, 사마리아 여인은 한낮에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직접 밝히십니다(요한복음 4:26). 이 만남 이후 여인은 완전히 변화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신분, 인종, 성별의 차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화려한 교회 건물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때로는 우리가 가장 연약하고 피곤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니고데모처럼 밤중에 찾아와 질문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솔직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각자의 인생의 우물가에 앉아계십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아시고,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의 신앙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우리 모두가 참된 변화를 경험하고, 이 시대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가 때로는 니고데모처럼 밤중에 찾아가야 할 만큼 두려움과 의심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희에게 용기를 주셔서 모든 의문과 고민을 주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넘어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 저희가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고백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부족함, 연약함, 그리고 죄까지도 주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영혼의 깊은 갈증을 오직 예수님만이 채우실 수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우리 마음의 공허함을 예수님의 생수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경험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웃들과 나누며, 그들도 주님을 만나 변화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의 신앙이 단순한 종교적 의무나 관습에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매일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주님을 구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제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땅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와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의 장소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임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참된 변화와 회복을 경험하는 곳이 되게 하옵소서. 생수가 흘러넘치는 생명의 장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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