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2 새벽기도회(수정)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이 새벽을 깨우시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머리 숙여 기도하며,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 크고 작은 어려움과 시험이 있지만, 주님 안에서 새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오늘도 주님의 보호 아래 거하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예물 드린 손길들 있습니다. 이 예물 기쁘게 받아주시고 이 예물이 사용되는곳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예물드린 손길 축복하시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20:9–19 (NKRV)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도착하시자 마자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청소 하신 것입니다. 성전에 있어서는 안될 그래서 없어야 할 것이 있기에 예수님은 성전을 청소하신 것입니다. 청소는 버리는것이 시작이지만 청소는 버리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없어야 할 것들은 버려야 하지만 필요한 것은 제 위치에 놓는 것이 청소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없어야 할 것들은 버리고 반드시 있어야 할 것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와 예수님께 따지듯 이렇게 묻습니다.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여기서 그들이 말한 이런 일들은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성전에서 가르치는 일은 산헤드린에서 공인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질문은 타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가 옳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것만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마음이 불편한 것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오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은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들이 허락해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 장사하는 것이 잘 못되었다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 냈으니 그것을 허락해준 입장에서 얼마나 불쾌 했겠습니까? 그리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이 끊긴것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좋을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예수님께 따지듯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은 하는 것입니까? 당신에게 이런 권위를 준 사람이 누굽니까 하며 묻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에게 온 것이지 물어보며 그들의 질문이 잘못된 질문임을 꼬집으며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주인이 수확의 일부를 받기 위해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들이 그 종을 때리고 능욕한 뒤에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농부들은 세를 내고 포도원에서 농사를 짓기로 했기에 당연히 수확의 일부를 주인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에게 바쳐야 할 몫을 주지 않으려고 주인이 보낸 종을 때리고 모욕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을 자기 멋대로 관리하고, 그 소출도 마음대로 자기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농부들의 행동은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은 것 처럼 보입니다. 만약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정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포도원의 주인은 자비가 많았습니다. 자기가 보낸 종이 세번식이나 매를 맞고 쫓겨 왔다면 일반적으로 당장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결판을 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비유속에 주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주인의 마음은 자신의 아들은 농부들이 존중하리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이 왔다는 것은 주인이 온 것과 다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주인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들의 권위는 주인의 권위와 동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농부들은 주인이 아들을 보낸 이유를 알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였다면 아들의 권위도 인정하여 아들을 통하여 수확의 일부를 받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오히려 아들이 죽으면 포도원이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해 아들마저도 죽이게 됩니다.
농부들의 욕심이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을 이야기 합니다. 종들은 선지자들이고 아들은 예수님 이십니다. 그러기에 비유속에서 주인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가며 죄악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비유에서처럼 욕심입니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과 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지, 메시야인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내게 유익이 되는지 안되는지가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장애물로 여겨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비유를 다 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본문 16절 입니다.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비유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들은 직후의 반응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말씀을 듣던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듣고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난 이후의 우리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한 사람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쳤던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유의 마지막은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농부들이 주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지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농부의 최후는 죽음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심판입니다.
비유를 마치시고 예수님은 시편 118편 2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이 말씀에서 건축자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의미하고,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머릿돌이 되어야 할 돌을 건축자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버리듯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 이 돌은 심판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와 같이 주인이신 예수님을 몰라봐 자신의 욕심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심판이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 이십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욕심으로 인해 예수님의 권위를 무시하면, 다시말해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오늘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심판의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또한 잘 보여주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이 욕심을 내려놓고 주인 되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길 오래 기다려 주십니다.
오늘도 이 새벽 기도회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니 내 욕심때문에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마시고, 그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해 우리의 주인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을 살아 오늘하루가 주님 보시기에 기쁜 날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참좋으신 주님 오늘도 우리의 주인되신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저희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 욕심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그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주님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