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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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정치적 도덕적 형상을 가진 인간과 그 타락, 하나님의 형상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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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 호모 사건

스페인에 캄포 데 보르하 라고 하는 지방에는 인구 5000명 정도되는 작은 마을인 보르하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자비의 예배당이라고 하는 1539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예배당이 있었는데요, 이 성당 안에는 19세기 화가에 의해서 그려진 에케 호모라고 하는 예수님을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에케 호모는 요한복음 19장 5절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고 한 말을 라틴어로 이야기한 것인데요. 거의 1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다보니 아무래도 여러모로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띄워진 사진을 보시면 왼쪽에 있는 그림은 같은 화가가 벽화가 아닌 유화, 즉 기름에 갠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구요. 오른쪽이 성당 안에 있었던 벽화입니다. 아무래도 벽화라고 하는 특성상 습기 때문도 있고 사람들이 만지기도 하고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서 이 그림이 점점 훼손되었는데, 2012년에 세실리아라고 하는 당시 80세 할머니가 이 그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그린 그림인데 이렇게 훼손된 그림으로 둘 수 없다!”라고 생각해서 이 할머니가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해야겠다!”하고 복원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딱히 그림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결과물이 다음과 같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할머니는 좋은 마음에 그려보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이 작품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당연히 성당 측에서는 완전히 화가 나서 할머니를 소송하려고 했었는데요. 근데 누가 이것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아주 감자로 만들어놨다고 하면서 “감자 예수”라고 하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고, 실제로 고작 5천명 밖에 안되던 마을에 당시에 인터넷을 보고 찾아온 사람이 무려 4만 명이나 되었다라고 합니다. 결국 처음에는 할머니를 소송하려고 했던 성당도 나중에는 관광객한테 관광비도 받고 할머니랑 5대5로 관광 수입료도 나누면서 하나의 웃기기도 슬프기도 한 헤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술 작품 하나를 복원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에는 자신이 상상하고 머릿 속에서 그리는 “이미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붓을 한번 슥 그리는 것에도 심혈을 기울여서 그림을 그리는데요. 그렇다보니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 화가가 생각한 “이미지”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여러가지 과학적인 방법을 시도해야 간신히 복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이미지” 라고 하는 말은 한국어로는 심상, 또는 형상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요, 오늘 설교의 제목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에서 이 형상이 바로 그 “이미지”입니다. 지난 주에 저희가 하나님의 창조성을 가지고 저희가 창조되었지만 이것이 타락으로 인해 훼손되어서 질서에서 혼돈으로 이르게 하는 창의성을 가지게 되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질서를 세우는 하나님의 창조성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어떤 형상들을 가지고 계셨는지 알아보고, 망가져버려서 도저히 복원하기 어려운 이 형상, 즉 이미지를 어떻게 저희가 복원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연적 형상

감리교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자연적 형상, 정치적 형상, 도덕적 형상 이렇게 세 가지 인데요, 먼저 자연적 형상을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이성, 이해력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혼돈에서 질서로의 창조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나님의 그 창조성, 창의성도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을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막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창의적인 사람들을 보고 저희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의 이성을 엿볼 수 있는데요. 근데 하나님의 형상인 이 이성은 그냥 이성이 아니라 만물에 조화를 이루는 지혜로운 이성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salm 104:24 NKRV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그래서 저번주 말씀에서 보았듯이 아담도 이름이 없어 혼잡한 만물들에게 이름을 주는 지혜와 이성이 있었음을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성, 이해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실행해야 의미가 있게 되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세상을 보니까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면 땅은 그냥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혼돈하게 놔두시는 것이 아니라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실 의지가 있으시다 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노예로 있게 놔두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실 의지가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이 이성과 의지를 선하게 사용하게 하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자유하심에 대해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까꿍을 통해서 알아본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추시기도 하시고 나타내시기도 하시는 자유가 있으시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역시 그 자유하심을 통하여서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끔, 즉 그 자유로 저희를 구원하신다 라고 말씀드린 바가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 자유하신 형상에 따라서 저희도 선악을 선택할 자유를 주셨다라고 저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Genesis 2:16–17 NKRV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임의로 먹어라, 라고 하시는 말씀은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지 말라 라고 하신 말씀은 못 먹게 하신 것, 즉 자유를 빼앗으신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죽을 것을 알고서도 먹을 수 있는 자유 또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가진 자유는 선악을 선택할 자유인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항상 선을 택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저희 또한 선을 택해야 마땅한데, 이후에 이야기는 여러분도 다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죄가 발생하고 타락이 생겨나게 되면서 죽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저희에게 있는 하나님의 자연적 형상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질서를 세우는 이성과 선을 행할 의지, 그리고 선을 선택할 자유는 남아있지만, 반대로 혼돈으로 돌리는 이성과 악을 행할 의지, 그리고 악을 택할 자유가 있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전쟁과 관련한 뉴스가 끊이지가 않는데요, 러시아에 북한 병사가 파병되었다느니 하는 이러한 소식들을 보면, 분명 모두가 평화를 사랑할 자유가 있을 텐데, 너무다도 끔찍한 악한 선택을 해버리는 것을 저희가 지금 목도하면서 마치 인간이 아니라 지혜 없는 짐승처럼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기에서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에 짐승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Job 39:16–17 NKRV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 중 하나인 자연적 형상, 즉 이성, 의지, 자유는 부패해서 인간이 마치 짐승처럼 지혜롭지 못하게 되고 악을 선택하게 되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형상

저희가 지난 주에 알아본 하나님의 형상, 즉 혼돈에서 질서로 다스리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저희가 다른 말로 정치적 형상,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치라고 하는 단어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같은 정치인에 관한 것이 아니고, “다스림”에 관한 형상이기 때문에 정치적 형상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는데요,
Psalm 8:4 NKRV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Psalm 8:6 NKRV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다스린다 라고 하는 말은 우리 맘대로 막 휘두를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질서를 세우고 조화롭게 하는 일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질서를 세우고 조화롭게하는 다스림이 가능하려면 저희가 필요한게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조화로운 관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Genesis 1:27 NKRV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이야기하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는데, 굳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도 남자와 여자처럼 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일까요? 저희가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아버지”라는 호칭을 쓸 때가 많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아버지니까 남성이신 걸까요?
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이 조화롭게 하는 관계, 즉 연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Genesis 2:24 NKRV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가 있는 이유는 한 몸이 되어 연합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주로 아버지로 등장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저희들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다스리시는 왕이심과 동시에 아버지라고 하는 가족과 같은 관계가 되신 것은 저희 또한 이 세상, 즉 하나님의 피조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화목하게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2 Corinthians 5:18 NKRV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저도 결혼해서 이제 두 달이 조금 안되게 살아보니까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은 그냥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또한 배우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집을 잘 가꾸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은 부부 사이에 화목한 관계가 전제되어야합니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는 가정이 무너지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정치적 형상, 즉 다스림과 관계가 무너지게 된 이후에는 가정이 무너지고, 단순히 부모 자녀로 형성된 가정 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이 세상과 저희의 관계가 무너져서 전쟁이 일어나고 환경 파괴가 일어나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도덕적 형상

마지막으로 볼 하나님의 형상은 도덕적 형상입니다. 이 도덕적 형상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한 구절은 너어어어무 많고 또 여러분들이 너어어어무 잘 아시기 때문에 저희가 받게 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공의와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하나님을 잘 사랑하고 이웃을 잘 사랑하고, 정의를 행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즉 도덕적 형상에는 저희가 놓치기 쉬운 중요한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1 John 4:7 NKRV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이는 먼저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마련입니다.
John 14:15 NKRV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즉 하나님의 의로우심 또한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게 합니다.
Micah 6:8 NKRV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훼손된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졌다라는 것입니다.
Hosea 4:1 NKRV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그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됨으로 인해서, 타락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모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 즉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해야하는 인간의 목적이 사라짐으로 인해서 그저 이 육신의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영혼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모르니 육신과 영혼이 모두 죽게 된 것이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입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하나님을 모르게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그 하나님의 형상의 본연의 모습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참으로 감사할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 장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 Corinthians 4:4 NKRV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저희가 다른 것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저희에게 없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저희가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Hebrews 1:3 NKRV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죄로 인해서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저희들을 정결하게 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흔히 구원에 대해서 오해하시는 것이 예수님을 믿으면 “나 이제 구원받았다, 구원 도장 땅땅땅! 이제 맘대로 살아야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가는 길,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Philippians 3:12 NKRV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사로잡혀서 그 형상을 잡으려고 회복하려고 달려가야만 합니다.
골로새서 3:9b–10 (NKRV)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날마다 날마다 타락하여 훼손된 이전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날마다 새 사람을 입어야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저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선을 알고 선을 택하는 이성과 의지, 자유를 가지고, 조화롭게 하는 관계를 쌓으며 하나님과 피조물을 조화롭게하는 관리자이고, 또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저희가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둘째, 저희는 죄로 인해서 타락했고,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해왔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이는 아담에게 죄를 돌릴 문제가 아니라 저희 또한 저희의 죄 때문에 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것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리고, 불화를 일으키는 관계를 쌓으며,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악에 빠지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었으니 이제는 막 살아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과정, 즉 다시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회복해나가는 여정으로서 날마다 새 사람을 입고 예수님을 따라 달려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이 땅에 오셨음을 믿으며, 타락한 옛 사람을 벗어던지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새로워짐으로, 다시금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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