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 믿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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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씩 나열하지 않아도 공감하실 것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기본을 놓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를 예상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꾸준히 메시지를 내놓는 미래학자 최현식 박사님도 교회 본질의 회복을 미래를 준비하는 주요 과제로 주장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교회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인이 말씀을 읽고, 기도와 기도회를 강조하고, 전도에 집중하고, 북한 선교, 해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의 능력에 기초하여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가 잃어버렸던 기초를 다시 쌓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회복하여 사용하시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이런 흐름 가운데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인 믿음에 대해 깊이 살펴보고 점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가진 믿음에 대한 생각을 성경과 비교해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으로 우리 생각을 수정해야 합니다. 각자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보여주신 믿음의 삶을 본보기로 삼아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믿음이 무엇인지 말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믿음의 예를 보여줍니다. 믿음이 영적인 실체이기에 설명하기 어렵고, 여러 믿음의 삶을 통해 전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아벨과 에녹을 통해 믿음의 삶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믿음의 삶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 모두 중요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이 우리로 살게 하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온전한 삶을 살게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합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본문에서 노아의 삶, 노아가 보여준 믿음의 삶을 한 절로 요약해서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가 믿음으로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노아는 보이지 않는 일, 홍수 심판에 대해 경고하심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였습니다.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노아는 믿음으로 홍수 심판에 대해 경고하심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땅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홍수 심판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방주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심판에 대해 경고하신 말씀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지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믿었으니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심판을 행하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땅에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12-13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 시점이 있습니다. 몇 년 몇 월 몇 일이 아니라,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입니다.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을 때, 죄악이 가득하여 회개의 가능성이 없을 때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성품에 합당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심판하셔야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있을 때 하나님의 자비가 심판을 미루게 합니다. 그러나 어떤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을 때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으로 시행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실 때 하신 말씀도 동일합니다.
창세기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가나안 땅의 족속을 심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차지 아니하였다, 죄악이 가득차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족속을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실 시점이 있었는데 그들의 죄악이 가득찰 때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심판에 대한 기록이 또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창세기 18: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곳에 의인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소돔 땅에 살다가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황과 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여 없애셨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이, 땅이 더 이상 회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 노아에게 이런 상황과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떻습니까? 반인륜적인 범죄는 넘쳐납니다. 살인, 장기매매, 존속살해, 근친상간, 아동포르노, 동성애 등 셀 수 없이 많은 죄악이 일상이 되다 시피 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소식이 뉴스에 나와도 이제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이런 범죄를 주제로 한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만큼 드문 일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노아 시대의 악함은 세상 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노아 시대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에노스는 아담의 손자이고, 노아는 아담의 10대 손입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많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37-39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님께서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심판을 모르고 멸망했던 이유를 말씀합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이것이 죄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맥락으로 보면 노아 시대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땅에 일에 몰두되어 심판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해 멸망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아 시대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도 모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는 어떻습니까?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여러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그들 중에 정기적으로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성도들도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 분명한 죄악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개를 거부하고, 거룩, 경건, 경외와 같은 단어를 듣기 싫어합니다. 성도들의 다수는 자기 삶, 땅에 일에 몰두되어 살아갑니다. 헌신된 성도들조차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 기준으로 이 시대를 보십시오. 저는 지금 당장 예수님이 오시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 시대가 노아 시대보다 나은가? 이 시대가 소돔과 고모라 때보다 나은가?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신앙적인 경로를 제외하고도 여러 곳에서 세상의 끝이 가까웠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표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소식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동대구역에 기후 시계는 우리에게 지구 멸망까지 5년 남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는 일을 경고하신 것을 믿었습니다. 홍수 심판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시대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중 어디 쯤 와 있는지 시대를 보고 분간하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시대를 통해 말씀하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십니까? 믿음은 우리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정말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종말이 눈앞에 다가와도 우리의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잊은 채로 일상만을 사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눈앞에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작은 갈등에 삶이 흔들리고, 물질의 부족에 고통스러워하고, 오늘의 문제에 삶이 끝난 것처럼 여기는……. 그것은 땅에 속한 삶이고,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지난 주일에 영상을 통해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 작다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존재인지를, 우리 일상의 고민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봤습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우리 일상의 문제는 얼마나 하찮습니까. 심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우리 일상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 앞에 서서 우리 삶을 결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에 집중해야겠습니까. 노아는 믿음으로 심판이 있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믿었습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행했던 일, 두 번째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한 것입니다.
노아는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체적인 설계도대로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방주 건조 기간은 100년 안쪽이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500세가 되어서 아들 셋을 나았습니다. 정확한 방주 건조 기간을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 80-90년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는 한 사람의 평생에 해당하는 기간 전부를 노아는 방주 건조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님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도록 합니다. 그것이 나의 평생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일이라도 말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그렇게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경외’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호렙산에 다다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산 가운데 임하셔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임하시고 우레와 같이 큰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두려움에 떨며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신명기 5: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신명기 5: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서워 죽을 것 같다, 제발 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해 달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해주면 우리가 모두 순종할 테니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칭찬하십니다.
신명기 5: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처럼 하나님을 향해 두려운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심, 엄위하심, 권능, 사람이 가히 측량할 수 없는 존재이심을 알고 두려운 마음을 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품어야 할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경외는 이런 마음입니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인간으로 하나님을 알면 그분의 온전하심 앞에 두려운 마음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사람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깁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바른 마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방주를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10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방주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평생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이 말세라고 경고하십니다. 심판을 예비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준비하라 하신 데로 평생 방주를 건조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데로 심판을 이길 방주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심판을 피할 방주 건조 방법을 알려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심판을 이길 방법을 말씀해주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벧드로전서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누가복음 21: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베드로후서 3:11-12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마지막 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분명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전심으로 기도하고, 사랑하고,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100년 가까이 방주를 건조한 노아처럼, 믿음이 있는 우리는 남은 수십 년을 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교회 출석하는 모든 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지 못할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가 적지 않다고 하십니다. 천국이 사랑의 나라인데 사랑하지 않는 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데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지 않는 이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를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은혜라는 이름 아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무효화 시키는 것 같습니다. 왜곡된 신앙, 은혜, 사랑에 대한 이해가 자신을 돌아보거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구원 교리에 대해 논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 실제 믿음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할 믿음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심판에 대한 경고를 믿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로 심판을 이길 방주를 준비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노아는 믿음으로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이고, 방주를 건조했습니다.
본문 이후 구절은 노아가 살았던 믿음의 삶의 결과를 말해줍니다.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가 믿음으로 살았던 결과는 3가지입니다. 자신의 집을 구원하고,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3가지 중에 세상을 정죄했다는 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고 방주를 준비하므로 세상을 정죄했습니다. 노아가 세상을 정죄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죄를 지적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노아가 믿음의 삶을 살아서 세상을 정죄하는 결과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심판이 있음을 알아 경건하게 의를 행하며 살고, 100년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는 그의 삶이 세상을 정죄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다. 노아는 삶으로 세상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노아의 삶이 지금 우리도 정죄하고 있지 않습니까? 노아의 삶이 믿음의 삶은 이런 것이라고 우리에게 증거하면서 우리의 삶이 믿음의 삶이 아니라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라고 우리를 정죄하지 않습니까?
당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믿음으로 살지 않는 이들에게 노아의 삶은 믿음의 기준이 되었고, 심판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으로 세상 사람들을 불의하다고 정죄하였습니다. 노아의 삶이 우리를 정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죄 받으면 회개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입니다.
베드로후서 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베드로후서에서 노아가 의를 전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전파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선포하다, 설교하다, 가르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노아가 말로 의를 전파했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순종하므로 방주를 건조할 뿐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습니다.
노아가 전파하는 의를 거절하므로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멸망에 합당한 자로 확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은 이미 노아의 삶에 의해 선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노아에 의해 선고된 심판을 실행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은 전하는 것, 전도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을 교회에 데려오기 위함이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확증하는 역할도 합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는 평생 순종하며 전도했지만, 자기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께로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구원하고 하나님께 나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누구보다 믿음의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의의 기준이 되며, 심판의 기준이 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노아의 믿음의 삶으로 인해 세상은 정죄 받았고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으십니까? 그런 줄로 압니다. 그러면 믿음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살펴본 아벨이, 에녹이, 그리고 노아가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그들의 삶으로 증거합니다. 우리도 같은 믿음을 받은 자로 그리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으로 믿음이 무엇인지 증거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대를 분별하여 심판이 가까운 때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심판을 예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의를 전파하며 거룩하고 경건한 행실로 살아가며 심판을 이길 방주를 예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노아가 우리에게 보여준 믿음의 삶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