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발판 삼아(갈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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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제목 : 사랑을 발판 삼아
본문 : 갈라디아서 2:20
1. 육상 경기에 있어 추진력은 매우 중요하다!
1) 단거리 달리기에 추진력은 스타트블록에서, 그렇다면 신앙 생활은?!
바울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마치 ‘육상 경기’와 같다고 말합니다. 한 번쯤은 다들 달리기, 해보셨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생각하시기에 육상 경기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물론 수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게 훈련량 일 수도 있고, 내 몸에 맞는 장비를 준비하는 등 중요한 것들이 참 많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추진력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 목회자로 부름받아 사명의 길을 달려가고 있지만, 학창시절 저는 육상 특기자이자 체육교사를 꿈꿨던 준비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기자라해서 압도적으로 육상을 잘했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단거리 달리기를 특기로 해왔기에 초반 추진력이 얼마나 결과에 크게 작용되는지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단거리의 경우 출발선에 앉아 ‘스타트블록’에 발을 얹혀 ‘땅’ 소리에 블록을 밟아 첫 발의 추진력을 얻어 달려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발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얼마나 잘 얹었고, 잘 밟았고, 잘 내딛었는가에 따라 그 다음 발에 실리는 힘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바울 역시 성경 곳곳에 신앙 생활을 육상 경기가 떠올리게끔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중 우리가 가장 익숙한 성경은 디모데후서 4장 7절과 8절일 것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신앙의 육상 경기는 단거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장거리 달리기, 마라톤에 가까워 보이고, 심지어는 마라톤보다 훨씬 더 길고 오랜 시간 달려야 하는 끝없는 레이스같아 보이기 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육상 경기는 단거리와 달리 추진력을 얻는 힘이 첫 발로 그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추진력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추진력 = 십자가에서 확증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 푯대를 향하여! 체육교사를 꿈꾸게 했던 ‘정직’
한창 공부에 열중할 수 밖에 없던 고3의 시기를 떠올려 보면, 제게 있어 그 당시 푯대는 ‘체육교사’라는 꿈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운동은 두 말할 것 없이 당연히 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길이 늘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시기도 있었고, 부상으로 성적이 저조해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장애물은 불면증이었습니다. 매일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 4-5시 겨우 잠에 들어 5시30분에 눈을 떠 6시에 학교를 향했던 그 시간을 떠올려볼 때, 이를 그저 아름다움에 포장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다해서 푯대를 향한 달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 해서 극적으로 성적이 오르고,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을 향해 달려갈 추진력이 제게 확실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추진력은 바로 ‘정직’에 있었습니다. 반드시 체육교사가 되어 ‘정직한 교사의 본’을 보이고자 하는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어떤 장애물도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렇다면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푯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며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럼 이 푯대를 향해 달려갈 우리에게 필요한 추진력은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5장 13절부터 15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있어 푯대를 향해 달려갈 충분한 힘, 그 추진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했다고 기록합니다. 강권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에게 신앙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도록 ‘강력한 힘을 제공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도대체 그 사랑이 무엇이기에 바울이 열정적으로 살도록 강력한 힘을 제공한 것입니까? 그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그 사랑은 바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 곧 십자가의 사랑 아닙니까? 바울이 흔히 예수에 미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낼 수 있었던 그 추진력은 바로 십자가에서 확증된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다는 겁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고난도 역경도 넉넉히 견딜 힘!
이쯤에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확증된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의 힘이 있음을 우리는 떠올리고 또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충분히 그럴 힘이 있기도 하지요.
바울의 삶을 되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오히려 예수 믿기 전의 삶이 더 안정적이고 풍요로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후로 고난도 이런 고난이 없습니다. 핍박과 고난과 조롱이 수도 없이 다가옵니다. 때론 죽음의 문턱 앞에 그를 내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삶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확증하게 되었으며,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자랑하죠. 그리곤 그는 베드로후서 1장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기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엔 어떤 삶 속에서도 실족치 않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음을 모두에게 선포합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신앙 생활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힘!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고난과 역경을 넉넉히 이기게 할 힘 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을 날마다 새롭게 할 힘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라톤을 하고 있다 생각해 봅시다. 출발도 빨랐고, 초반 호흡조절도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끌고 갈 추진력이 부족하다면, 이후의 모든 페이스가 일그러질 것입니다. 아무리 초반 스타트가 완벽하다 해도 끝내 완주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지요.
마찬가지로 신앙의 삶 속에서 예수를 믿고 그 감격으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훈련과 교육에 동참하고, 매일의 경건 생활로 시간을 드렸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확증이 사라져가고 약해져 간다면, 즉 추진력이 약해져 간다면 끝내 우리는 신앙의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날마다 확증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신앙 생활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5) 청교도가 말하는 추진력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아마 이 책이 청교도를 기반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교도들은 신앙의 추진력을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이들 역시 추진력을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청교도 학자인 ‘존 플라벨’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게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굳게 확신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신앙 생활하며 가장 간절히 구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말합니다.
이 사랑이 중요한 이유에 있어서 또 다른 학자인 ‘토머스 브룩스’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영적으로 갓난아이였을 때, 사탄은 당신의 꺼져 가는 심지가 확신이라는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지 못하도록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당신이 어느 정도 성숙한 지금, 당신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사탄은 당신이 구원의 영광과 복락을 확신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다 쏟아 붓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이 깊어져 가면 깊어져 갈수록 사탄은 더욱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힘은 다른데서 오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넉넉히 이기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3. 간구와 변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증하는 방법!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증하는 방법 : 1. 간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젠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확증합니까?” 라는 의문입니다.
어떻게 확증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랑을 확증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어떠한 노력에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랑을 확증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간구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쟁취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랑을 누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십자가 사랑을 누리는 것은 믿음으로부터 오는데, 믿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무엇입니까? 믿음은 곧 선물입니다. 내가 쟁취할 수도 구매할 수도 없습니다. 주셔야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선물로 주어져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간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아니, 사랑의 확증을 구했으면 사랑이나 주시지, 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내가 구한건 성령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을 보십쇼.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물며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냐’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앞선 내용들이 중요하죠. ‘어떤 아비가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고, 알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며,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겠느냐! 가장 좋은 것 주시지 않겠냐!” 라는 겁니다. 그리고 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니 내가 사랑을 구했는데 내게 성령을 주신다면, 무엇을 의미 하겠습니까? 성령은 내가 구한 것에 대한 대체품목이 아니라 내가 구한 것의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게 당연한 마음 아닙니까? 상대는 그것이 가장 좋은지 어떤지 잘 모른다 한들, 주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은 것 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좋은 것은 단순히 비싼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주는 이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에 성령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성령을 어떻게 잘 누리며 살아낼 수 있을까요? 온전히 맡겨보는 겁니다. 그저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믿고 순종으로 살아내보는 겁니다. 내가 예상한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더라도, 그래서 내게 혼란이 찾아오더라도 맡겨보는 겁니다. 늘 그랬듯,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며 말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증하는 방법 : 2. 변화, 삶의 열매를 목격하라!
또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두 번째 방법은 실제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변화를 경험해 보는 겁니다. 경험은 이론적으로 아는 것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의 경우 변화를 통해 경험한 그 사랑을 확증하게 되었으며, 이를 요한일서 5장 13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는 먼저 경험했습니다. “내게 영생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보니,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게 영생을 허락하셨더라! 그래서 나는 이 사실을 너희도 경험했으면 해!” 이게 지금 사도 요한의 고백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은 삶의 변화를 반드시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이전 것으로 살아내서는 그 사랑을 유지할 수도, 흘려 보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설교를 들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미 압니다. 부모와 싸워 가출했던 한 청소년이 훗날 목사가 되었습니다. 감나무의 감을 따서 이웃의 자동차에 던지던 한 유치원생은 자라다 자라다 너무 자라 키가 큰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목사가 된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래서 개과천선의 결과로 선택한 결과가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했고, 그 경험이 삶의 변화를 일으켜 그 안에서 부르심의 소명이 있어 목사로 세움받은 것입니다.
저 역시 자주는 아니지만, 청소년기에 경찰서를 가까이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제 삶을 채우고, 그 사랑이 제 삶을 변화시켜 목사라는 소명으로 이곳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윤리적으로 좋지 못한 지난 날을 살았습니다. 회개의 의미로 제가 목사가 되겠습니다.” 라는 인과응보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자연스러운 변화로써 저는 목사가 된 것이지, 잘못에 대한 죄값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억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어나는 것은 변화지 댓가나 보상의 지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 번 발견해 보십시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변화의 열매가 있는가를 말입니다. 만약 변화의 열매가 없다면 ‘예수님의 사랑’부터 점검해봐야 합니다.
또 우리 주변에 변화가 필요한 어린 양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남편, 아내 또는 우리의 자녀들.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는 왜 이렇게 밖에 못하니? 너는 왜이리 행동이 비판적이고 독단적이니?” 비판하고 책망할 것이 아니라, “주님!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아!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끼도록 강하게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세상의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세상의 시각이 정답이라면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의 변화된 삶은 실패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했기 때문에 고난을 준 것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가장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 살아냈습니다.
4. 정리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은 일회적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서 뜨겁게 누려져야 합니다. 이 뜨거움은 ‘예수님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뜨거워져!’ 물론 그런 뜨거움일 수 있지만, 그것만 뜨거움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뜨거움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에 의함’ 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어떤 어려움에도, 어떤 유혹에도 날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판 삼아 일어나 달려 나가는, 날마다 그 사랑으로 승리를 선포해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 사랑(후렴)
-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빼어놓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 바라옵기로는 그 사랑을 온전히 붙들며 그 사랑에 사로잡힌 자 되길 소망합니다. 날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사랑을 날마다 구하고 묵상하며 그 사랑 위에 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 주님의 사랑을 채워주시옵소서.
- 주님의 사랑은 기회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조건부 사랑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사랑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 주변에 필요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나의 가족들에, 나의 이웃들에게 그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새생명축제를 앞두고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자들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우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사랑을 이제 그들이 경험하고 삶의 변화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2. 그 사랑 + 주께 가오니(후렴)
- 이 시간 우리 다음세대를 위해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이들이 살아낼 시대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과 좋지 못한 시선이 더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다른세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구하며 그 사랑에 힘입어 변화된 모습을 지녀 빛과 소금으로 살아내는 우리의 다음세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어진교회 다음세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되어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다음세대를 주께서 사랑으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