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후에야 보이는 소중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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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잃어버린 후에야 보이는 소중한 것들
주제: 고난은 우리의 삶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보게 하며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만든다.
[서론]
힘겨웠던 코로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굉장히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도 언제 코로나에 감염될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더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초반에는 중국에서 관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두려음은 이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일상을 언제쯤 다시 되찾을수 있을지 두려워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우리가 일상으로 누리던 것들, 예를 들면,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함께 식사하고, 마음껏 공연을 즐기며,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잃어버린 후에야 그 일상의 소중함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가진 것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잃고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마주해야할 미래는 어둡기만 합니다.
전쟁위기, 기후위기, 전염병위기, 식량위기, 에너지위기 등이 두렵기만 합니다.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 삶의 당연한 것들이 언제 또다시 흔들릴지 모릅니다.
분명 또다른 고난은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이런 어두운 현실 속에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소망을 가질수 있을까요?
예레미야애가 5장은 고난가운데 우리가 할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본론1]
지난주 설교한 것처럼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서 견디기 힘든 이유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위로해줄 사람이 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본질은 결국 이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끝을 알면 인내할 힘이 생길텐데 그것을 모르니 더욱 괴로운 것입니다.
지금 예레미야애가에 기록된 유다의 상황도 그렇습니다.
나라가 멸망한후 유다 땅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큰 고통을 겪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다행인게 아닙니다.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다고 괜찮은게 아닙니다.
비참하고 괴로운 삶이 이어집니다.
지금 유다땅에는 바벨론 점령군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이상 그 어떤 것도 자기들의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게 여기며 농사짓던 땅을 잃었고, 살던 집을 잃었습니다.
전쟁중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되었고,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죽으나 살아 남으나 그 자체로서 너무나 참혹한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땅과 집을 잃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의미합니다.
땅과 집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집트에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던 민족을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 곳에 정착해 집을 짓고 살게 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졌기에 고아와 과부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떠한 보호도 받을수 없는 가장 취약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모든 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 땅에 남은 사람들이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두가지입니다.
1절입니다.
‘기억해주십시오,살펴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 응답도 하지 않는다면 그냥 하나님을 버리면 오히려 속이 편할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믿음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부르짖음 자체가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절망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처럼 우리도 그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를 기억해달라고 내 사정을 살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있을때 그들이 한 유일한 일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치 아이가 부모를 찾듯 부르짖자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울부짖음 그 자체가 하나님을 움직인 것입니다.
[본론2]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때때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우리 인생에서 고난이 찾아오면 때로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곤 합니다.
당연했던 것들을 누릴수 없게 됩니다.
코로나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집단적으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코로나에 걸리면 격리되어 혼자서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운동도 못하고, 콘서트도 볼수 없었습니다.
해외여행도 할수 없었습니다. 결혼식, 장례식도 참석할수 없었습니다.
교회도 올수 없었습니다.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던 것입니다.
지금 유다백성들이 그렇습니다.
4,5절입니다. 자기 땅에서 나오는 물인데도 나무인데도 값을 치뤄야 합니다.
물과 나무는 생필품입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이제는 이런 생필품들이 품귀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그 땅에 남은 사람들은 바벨론에 의해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쉬고싶어도 쉴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민족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나라들을 의지한 결과입니다.
매일 누리던 일상이 파괴되었고, 자유와 쉼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 값없이 누리던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누릴수 없는 것들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고난이 힘들고 어렵지만 고난이 축복이 될때가 있습니다.
바로 죽었던 감사가 다시 살아날 때입니다.
고난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수학공식처럼 고난이 오면 감사해야한다 것을 외워서 억지로 감사하라는게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때로는 불평하다가 때로는 아파하고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감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결국 우리를 그 지점에 이르게 합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실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우둔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사소하게 여기던 것들의 얼마나 가치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목숨걸고 살았던 것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들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제서야 철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건강을 잃고난후 먹고 자는 것같은 일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업에 실패한후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죽다 살아난 사람을 보십시오.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깊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간증들이 그 증거입니다.
삶의 불순물들이 제거되는 순간입니다.
그때가 되면 이것 저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찐감사가 올라옵니다.
억지로 하는 감사가 아닌 진정한 감사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일상이 하나님이 감춰두신 보물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깊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게 되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상의 실체입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
내가 의지하고 붙잡으려 했던 것들입니다.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 빛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우상들이 모두 무의미하고 헛된 것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상으로는 내 삶이 행복해질수 없다는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유다 백성들을 보십시오.
6절입니다.
그들은 나라가 멸망해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집트나 앗시리아를 의지하려 했습니다.
우상들에 의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 기독교 최고의 지성으로 알려진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우리의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교만하고 우둔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많은 선물들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치 내가 스스로 얻은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당연해서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의 진정한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일상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해주는 쓰디쓴 약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광야의 시간입니다.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삶의 갈증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잃어버려 일상이 흔들리거나 무너질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현실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죄로 인해 스스로 초래한 고난은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허락하신 고난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은혜의 도구가 됩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지 영적인 눈을 뜨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소망을 붙들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애가 5장이 우리에게 답을 줍니다.
예레미야애가를 통해 우리는 고난 속에서조차 소망을 붙들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기억하시기 때문임을 배웁니다.
그것 자체가 믿음의 표현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런 응답이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중에도 부르짖는 신음과 몸부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이 바로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소망의 근거입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고 진정한 감사를 배웁니다.
고난은 우리의 매일의 일상이 하나님이 감춰두신 보물임을 일깨워 주는 귀한 시간입니다.
고난은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 땅을 파는 인내의 시간입니다.
불과 같은 고난은 우리 삶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믿음을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일상 속에 감춰두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우리 찬양형제에게 감동받은 것 한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 찬양형제가 갓피플에 여전히 감사기도제목을 홀로 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보면 찬양형제가 뭐하는지 대충 알수 있습니다.
감사 속에 그의 일상을 많이 엿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일까지도 감사하는 찬양형제를 보며 목사로서 많이 배웁니다.
꾸준히 감사하는 훈련이 우리 찬양형제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줄 믿습니다.
우리 또한 찬양형제처럼 일상의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훈련을 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