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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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강력한 장점 중 하나가 시작부터 여실히 드러나는 시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입니다. 시작부터 강렬하게 블레셋의 장수를 쓰러뜨리면서 역사에 데뷔한 다윗은 그 후로도 민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왕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고난도 있었고, 때로는 교만함으로 죄를 짓기까지 했으나 그 모든 것은 각 민족의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결국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의 놀라운 장점은 위대한 왕이 되었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다윗의 위대한 점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였고, 신실한 주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이 오늘 시편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내게, 나는, 내가, 나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이 고백이 나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언급합니다. 역전의 용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그저 ‘나’의 고백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고백은 4절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다윗 본인으로 서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 위에 여러 가지 옷을 덧입기 마련입니다. 회사에 가면 직원이 되고, 학교에 가면 학생이 됩니다. 집에서는 가족의 일원이 되고, 교회에서는 성도가 됩니다. 우리는 각 자리에 맞는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건 어쩔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그저 연약한 인간, 작디 작은 피조물, 그저 ‘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보일 때에 착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해냈으며,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에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신학을 공부했고, 내가 목사이며, 내가 모태신앙이고, 아는 것도 많고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서나 의미가 있는 옷들인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겉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작디작은 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나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뵐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정답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난 지식을 입었고, 명예를 걸치고, 권위를 덧입어도 그런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입고, 걸친다고 한들 전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 앞에서 무엇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창조주 앞에 서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우리 스스로를 가꾸고 꾸미고 높여봐야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우리를 덧입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낮고 낮은 나, 거짓으로 꾸며낸 감정이 아니라 더 진실하고 근본적인 내면, 어떤 척 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 앞에 피조물일 뿐인 나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처럼 말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스스로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왕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 꿇고 고백할 뿐입니다. 때로는 가난함을, 때로는 궁핍함을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며 오직 하나님만 구하는 자세로 노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다윗은 소망합니다. 주의 도를 가르쳐달라고 말입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말입니다. 이것 역시 놀라운 고백입니다.
다윗 정도의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을 결정하지 못하겠습니까? 다윗이 용기가 부족합니까, 지혜가 부족합니까? 다윗은 충분히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제반이 마련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도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를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방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길로만 걷겠다는 다짐이자 고백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길만 구하겠다는 굳은 각오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놀라운 점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구하는 것만 아니라,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길을 가르쳐주시면, 내가 충분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길과 도를 내가 해낼 수 없사오니, 부디 자신을 긍휼히 여기사 그 모든 것을 행할 힘을 주시고 구원과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간구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과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주신 은혜를 의지하겠다는 고백.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이룬 것들, 혹은 태어날 때부터 누리던 재능과 은사들이 마치 우리의 것인것마냥 착각하고 자꾸만 교만해지고 높아지려는 습성을 지닌 우리에게 다윗의 이러한 점은 너무나 큰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다윗보다 뛰어납니까? 다윗보다 훌륭한 신앙을 가지셨습니까? 아니면 다윗보다 능력이 있습니까? 다윗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셨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는 다윗 자신의 모습으로 서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다윗보다 못한 우리는 자꾸만 우리 스스로를 높이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저런 옷들을 걸치며, 자꾸만 남들과 비교하려고 합니다. 우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난해지는 것은 오히려 복을 받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