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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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25-27
찬송가 295장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곁에는 네 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와, 글로바는 예수님의 아버지의 형제입니다. 예수님의 작은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아버지 글로바의 아내이므로 숙모입니다. 마리아 숙모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입니다.
전부다 마리아입니다. 그래서 많이 헷갈리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이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여성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미리암의 헬라적 이름입니다. 모세의 누나였던 미리암의 헬라적 이름입니다. 그래서 여성을 부를 때 마리아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누구네 집 마리아', 또는 마리아네 첫째 딸 이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누구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도 막달라 지역 마리아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여성을 부를 때 '마리아'라고 대략 불렀습니다. 우리가 소유물에 이름을 안 붙이는 것처럼 여성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성을 다르게 대하셨습니다. 여성이 인간으로 대우 받지 못하던 시대에 예수께서는 언제나 약한 자들의 편이셨기 때문에 여성들에게도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주방에서 일만하기보다 말씀의 자리에 여성이 나아오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어두운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인들도 만나시고 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그랬습니다.
몸을 파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시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영국 성공회 소속 선교사 에드위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선교 본부에 파송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시카고로 가서 창녀촌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들과 함께 기숙하며 건강과 복지를 담당했습니다. 그녀들을 상담하고 간호하고 헌신했지만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취객 손님이 와서 돈을 주고 이 에드위나를 사겠다고 합니다. 선교하러 왔다가 오해를 받습니다. 그 때 여주인이 나오더니 취객에게 말합니다. "에드위나는 지금 에이즈 치료 중입니다." 주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취객은 도망쳤습니다.
에드위나는 창녀촌 선교사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떠나기로 결심합니다.그런데 다음 주일 낮 예배에 많은 창녀들이 참석했습니다. 에드위나 선교사는 진정한 희망과 감사를 갖고 하나님께 눈물의 예배를 드리고 본격 창녀촌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245171
하나님은 이런 여인들도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여성들도 십자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위해 삶을 드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십자가 앞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서도 가장 먼저 찾아가 가장 먼저 부활의 소식을 전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인간으로 존중 받지 못하고 창녀로 살아가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 속의 여인들까지 기록하며 십자가의 넓은 팔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이토록 연약한 자들을 사랑하셨고 약자들을 챙기시고, 위하시며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들과 말씀을 나누십니다.
예수께서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여자여'라고 하신 것은 요한복음 2:4에서도 등장합니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이적 앞 상황에서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하셨고, 처음 사역도 하시기 전에 '여자여'라고 하며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때에는 포도주를 공급해 달라는 어머니의 요청에 아직 내 피를 흘릴 때가 아니라며 반응하셨지만 지금은 자신의 물과 피를 쏟는 때라는 의미로 '여자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창세기 3:15 말씀을 봐야 하는데요.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사탄으로 상징되는 뱀의 머리, 곧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께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구원자를 낳은 복의 사람으로 쓰임 받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 당신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리스도를 낳은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그 일을 성취합니다.'의 의미입니다. 처음 이적을 행하시면서 '여자여'라고 하시면서 피를 흘릴 때가 아니라고 하셨고요.
십자가에서는 '여자여' 하시면서 '이제 피를 흘림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때'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제 새로운 가족을 맺으시는데요. 옆에 있는 제자를 가리키면서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시며 이제는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십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손의 어머니로서의 사명을 마치셨으니 이제 나의 어머니가 아닌 저 제자와 다른 이들의 어머니가 되라는 소명입니다. 그 다른 제자 즉 요한을 가리키시면서, '여자ㅣ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며 이제 요한을 아들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라고 부르시면 마리아와 어머니와 아들로서의 관계로 형성되니까 '여자여'하고 부르시면서 저들의 어머니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새로운 가족을 만드십니다. 피보다 진한 것은 보혈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맺은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새로운 가족, 자매, 형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며 삽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시면서 연약한 자들을 한 데 모으시고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주님의 보혈로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죄인들, 연약한 자들을 서로 연결시키시며 서로 아들처럼, 어머니처럼 모시고 존중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자격과 조건으로 맺어진 자들이 아닌 주님의 죽으심으로, 주님의 보혈로 맺어진 보혈 가족입니다. 사망의 권세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 가족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 안에서 가족처럼 모시고 내 주변 사람들도 잘 모시는 우리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흠 많은 우리를 주님의 보혈로 가족 삼아주셨습니다. 서로서로 가족으로 여기며 모시는 사이가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