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과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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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막 6:1-13 (막 6:1-6)
제목: 배척과 파송
오늘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6장 1절에서 6절 말씀은 마가복음 5장 21절 이하의 문맥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6장 1절 말씀 보세요.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거기를 떠나셨다고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를 고쳤던 장소를 떠나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이 지명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거기를 떠나사”라고만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가가 본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님의 이동 경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의 흐름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5장 21절에서 43절까지의 말씀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서 치유되는 기적이 등장합니다. 두 기적 모두 믿음과 관련이 있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마가복음 6장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은 믿음으로 인해 발생한 기적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본문 말씀을 한절씩 살펴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말씀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번째 특징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진리의 말씀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성경말씀으로 기록되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큰 유익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 마가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씀을 기록하면서, 더욱 중요한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특징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가르치셨는지, 가르치는 방식은 어떠했는지, 내용은 어땠는지. 이런 내용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정확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가가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 독자들로 하여금 꼭 기억하게 만들고 싶은 내용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이 아닌 이 사람들의 반응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지역 주민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부터 지켜봐 온 마을 어르신들과 이웃 주민들 그리고 형, 누나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텐데요. 반응의 특징과 내용을 나눠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반응의 특징입니다. 마가복음 6장 2절과 3절 말씀에 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는데요. 그 표현은 바로 이 사람입니다. 2절 중간 부분부터 보세요.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권능이 어찌됨이냐.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이 사람이라는 표현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죠. 물론 예수님을 지칭할 때 단순하게 이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랄 때 보이는 최소한의 반응은, 예수님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내용을 모두 담아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왕직, 제사장직, 선지자직. 이렇게 삼중직을 모두 감당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선지자라는 표현 하나만으로는 예수님에 대해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느낄 때, 구약성경에서 등장하는 선지자들과 비슷한 정도로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느 정도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죠.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의 특징은 예수님을 이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사렛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저 이 사람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3절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내용까지 보지 않아도,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평가절하해도 한참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 대해 반응한 세 가지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반응입니다. 6장 2절 중간 부분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거나, 회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거나. 이런 것이 아니라, 어디서 이런 것들을 얻었냐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 반응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얘 원래 이런 능력 없던 애잖아. 갑자기 왜 이래? 갑자기 왜 잘해? 어디서 이런 능력을 얻었대?”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이어서 두 번째 반응입니다.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파악하는 일에 있어서 완벽하게 실패했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지혜와 권능은 분명하게 인지했습니다. 여기서 지혜라는 단어는 생활의 지혜. 지혜롭게 행동하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적인 배경에서 지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지식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혜는 일상생활의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단어로도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권능이라는 단어는 큰 기적과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우리는 나사렛 사람들의 지독한 모순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들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예수라는 동네 꼬맹이가, 이제 좀 컸다고 뭘 가르치고 뭘 보여주는데. 생각해 보니, 별 것도 아닌 걸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것, 신적인 지혜와 권능을 분명하게 나타낸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마땅하겠습니까? 과거에 내가 알고 지냈던 그 코찔찔이 예수가 아니다. 이제 랍비님이라고 불러도 모자르겠네. 이런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죠.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신적인 지혜와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본인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반문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반응입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몇몇 학자들은 이 표현이 내포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이 누군가를 설명할 때, 어떤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상식적인 화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말합니까.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예수님을 가리켜 요셉의 아들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이 부분에서 몇몇 신약신학자들은 나사렛 사람들이 이런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정상적인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비방한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런 신학적인 추측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마리아가 요셉과 혼인하기 전에 임신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이 사실이 누군가에게 알려졌다면, 과연 그 사람들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 말씀 들어보세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징조는 구약성경에서 한번 등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징조를 제외하고는 처녀가 잉태하는 사건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임신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만한 사건이 아닌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마리아의 혼전 임신 사실이 외부에 드러났다면,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들에게 사생아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물론 이런 신학적 추론이 불편하신 분들은,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표현보다 목수라는 표현에 집중하시면 되겠는데요. 목수라는 단어 자체에는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을 비하하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예컨대, 목수라는 직업은 예수님 시대에 손기술이 필요한 직업들을 포괄하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수는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다양한 일들을 도울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굉장히 친숙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손으로 뭘 만들고 고치고 하는 목수가 신적인 가르침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 이런 뉘앙스를 담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렇게,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이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살펴보고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5절 말씀 보세요.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능이 제한되어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 때문에 기적을 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믿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있는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도래와 확장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은 예수님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믿지 않는 패역한 죄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기적을 행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을 보시고 권능을 행하지 않으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실 때, 6절 말씀 보세요.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을 이상하게 여기시며, 나사렛 땅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6장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나사렛 사람들의 잘못된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만 합니다. 불신앙에는 기적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엄청난 권능을 지니신 분이 어떤 환경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사렛 땅에서 소수에게만 기적을 일으키시고 떠나셨다는 말씀을 통해 확실하게 기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 이 따위 반응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패역한 마음이며,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절대로 체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성경은 불신앙에 대해서 평가할 때, 사람이 이성적으로 어떤 증거를 세밀하게 평가한 뒤에 냉철하게 내린 논리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자,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친히 내어주신 분을 완고하게 거절하는 것이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불신앙으로 자기 소견의 옳은대로 인생을 만끽한 죄인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불지옥이라는 끔찍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신 분들이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주님께 간구하시는 줄로 압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과 친척과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의 자세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분들을 바라보며, 지금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언젠가는 믿겠지.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을 보시고, 그 고향 땅을 즉시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영원히 머문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지옥의 심판이 예비되어 있는 우리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시면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들이 우리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건져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경제가 어렵고, 삶이 퍽퍽하게 느껴지더라도, 우리에게 예비해주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청지기된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 하나 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영혼들의 불신앙을 안타까워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기를, 믿음을 허락해 주시고, 그들의 발걸음이 주님의 전을 향하도록 힘을 내어 기도하며, 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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