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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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렘 50:21-32
제목: 성전의 보복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엄중하게 심판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어떻게 심판하실지, 심판의 내용에 관해 살펴본 뒤에 바벨론을 심판하신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바벨론을 향한 심판의 내용에 대해 살펴볼텐데요. 예레미야 50장 21절 말씀 보십시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을 치며 브곳의 주민을 쳐서 진멸하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다하라”
이 말씀에 보면, 므라다임과 브곳이라는 두 지명이 등장합니다. 므라다임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데스 강이 페르시아 만으로 유입되는 바벨론의 남쪽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두 지명을 바벨론의 영토에 해당하는 지명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히브리어 사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전 중 하나인 BDB사전에 따르면, 므라다임은 “이중의 반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브곳”은 처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반영해서 읽으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이중 반역의 죗값으로 처벌하시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벨론 땅을 어떻게 처벌하실까요. 2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므라다임의 땅을 치며 브곳의 주민을 쳐서 진멸하라고 말씀합니다. 21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심판의 내용이 자세하게 나타납니다만, 우리는 이미 21절 말씀에서부터 심판의 성격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진멸하다”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 주민들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적당하게 손봐주고 넘어가려고 하시는 것이 아닌, 완전히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는 예레미야 50장 26절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요. 26절 말씀 보십시오. “먼 곳에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고 그의 곳간을 열고 그것을 곡식더미처럼 쌓아 올려라 그를 진멸하고 남기지 말라” 26절의 “진멸하다”라는 표현은 21절에 나온 “진멸하다”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한 단락에서 “진멸하다”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반드시 진멸시키시겠다는 뜻을 품고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어떻게 진멸시키시는지,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2절 말씀 보세요. “그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이 있으리라” 여기서 그 땅이라는 것은 바벨론 땅을 의미하는데요. 바벨론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대적인 배경을 감안하고 읽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대는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 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시대였습니다. 바벨론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직접 체험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바벨론이 심판받는다는 말씀을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실 때, 남유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을 심판하실 때에도 사용하셨습니다. 23절 말씀을 보시면, 바벨론은 온 세계의 망치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바벨론이 하나님께 심판 받는다거나, 다른 나라에게 멸망 당한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임에 틀림 없습니다. 도구로 사용하다가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냉정하게 버린다?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의 인격이 마치 이중인격처럼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도구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도구는 그저 도구에 불과합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주인은 도구가 잘못되면 주인의 의지와 뜻에 따라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습니다. 물론 도구를 사용하는 주인의 인격과 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도구는 억울할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시며 전능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도구의 관계가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도구의 입장에서 억울할 만한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도구가 도구의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기만 한다면 본인의 일자리를 빼앗길 일이 없는 것이죠.
그러나 본문 말씀에 따르면 바벨론은 온 세계의 망치로 사용되다가 진멸의 대상으로 정죄 당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나라들을 멸망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던 바벨론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이 있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어 구문론을 적용해서 읽으면, 22절과 23절 말씀은 미래의 사건을 마치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 사건 환상에 해당 됩니다. 이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예레미야만 이 말씀을 생생하게 느끼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바벨론 땅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소리와 바벨론이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진멸당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이 진멸 당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 말씀에따르면 세 가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이유는, 바벨론이 하나님께 대항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24절 말씀 중간 부분부터 보세요. “...네가 여호와와 싸웠으므로 발각되어 잡혔도다” 바벨론이 하나님과 싸웠다는 표현에서 싸웠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자극하다, 대항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바벨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하나님과 동등하게 싸울 수 없겠죠. 또한 바벨론이 하나님과 싸우고싶다고 해도 영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싸움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반대편에서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분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가기보다, 본능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인생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행위,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겠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진멸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성전에 대한 보복입니다.
예레미야 50장 2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의 소리여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것, 그의 성전의 보복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데, 무엇을 보복하십니까? 그의 성전의 보복하시는 것, 다시 말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그들의 악한 행위를 보복하시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5장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8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바벨론은 남유다를 점잖게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완전히 불살라버리는데요. 열왕기하 25장 말씀에 따르면, 그들이 불사른 성전은 여호와의 성전입니다. 제아무리 바벨론이 남유다를 완전히 멸망시켰다고 하더라도, 시온산에 우뚝 서 있는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인 여호와의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불태운 것도 모자라 성전에 비치되어 있던 기물들을 탈취합니다. 이 기물들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만든 기물들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5장 말씀에 따르면,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바벨론의 행위들,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방화, 파괴, 탈취 행위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 50장에서 성전의 보복하시는 소리가 선포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진멸하시는 세 번째 이유는 바벨론의 교만함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50장 31절과 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31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32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리니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키리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2절 말씀에 따르면, 교만한 자는 걸려 넘어질 것이며, 교만한 자를 일으켜 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주위에 도움을 청할 수는 있어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굉장히 두려운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심각한 질병이 생긴다거나, 교통사고를 당한다거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장애가 생긴다거나.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겠습니까. 또 주위에 도움을 청해도 자신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어떻겠습니까. 교만한 자의 결말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교만한 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생긴다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교만한 자는 반드시 넘어질 것이며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적용하면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벨론이 진멸당하게 된 세 가지의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벨론이 하나님께 대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항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을 가볍게 여기고 교회의 존재 가치를 함부로 폄하합니다.
물론 지상의 교회들, 다시 말해 가시적인 교회들 가운데 바르지 않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지탄 받을만한 세속적인 교회들이 실존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며 혼자서만 깨어있는 양, 모든 교회를 가리켜 손가락질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교회를 비난하는 소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편향적인 뉴스 기사들과 악성 댓글들을 보면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한 바벨론을 주님께서 심판하셨듯,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 일일이 반응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그 처분을 맡겨드리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어야겠습니다.
이어서 바벨론이 진멸당한 두 번째 이유는, 바벨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인 성전을 파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게 예루살렘 성전을 신격화시켜서 바벨론을 보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라는 거룩한 상징성을 훼손시킨 것에 대해 보복하신 것이었죠.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얼마나 고귀하고 고결한 것인지를 기억해야 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해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위인지를 기억해야겠습니다. 과거에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은 교회 예배당을 거룩하게 여기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강대상에 함부로 올라가서 장난치고 그러면 다리몽둥이 부러졌죠. 요즘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다루지 않습니다만, 믿음의 선배님들이 품으셨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향한 경외심이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친근한 이미지, 사랑의 이미지. 이러한 이미지들이 성경적인 이미지인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으로 바른 이해, 균형 잡힌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시킬 수 있는 모든 생각과 행위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벨론이 진멸 당한 세 번째 이유는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어 “교만하다”라는 단어에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 뻔뻔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지나치게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잠시 동안 맡아서 관리하라고 맡겨주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외적으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유지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자신을 낮추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서 자신만만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교만한 표정과 마음과 생각을 갖지 않도록 매일 매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적용점을 기억하시고, 삶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시면서 거룩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패역한 죄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매일 매일 느끼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바벨론을 진멸하신 세 가지의 이유를 기억하며, 우리 삶에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의인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죄성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하고 방해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극도로 혐오하시는 교만한 말과 생각과 행동이 우리 삶에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그저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고, 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인생 온전히 살아내도록 몸부림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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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pp.448
므라다임과 브곳은 바벨론의 일부임. 바벨론을 꾸짖는 신탁에서 이 부분은 무명의 군대를 향해 바벨론을 공격하여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명령으로 시작함.
22-23절은 미래의 사건을 마치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사건 환상에 해당함. 화자는 청중에게 전투 소리를 상상해 보라고, 그 뒤 바벨론의 파괴를 상상해 보라고 요청함. 여기서 바벨론은 “온 세계의 망치”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바벨론이 이 시점까지 많은 나라들을 부수었기 때문.
24절에서 주님은 바벨론의 파괴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동임을 보여주심. “바벨론아 내가 너를 잡으려고 올무를 놓았더니 네가 깨닫지 못하여 걸렸고 네가 여호와와 싸웠으므로 발각되어 잡혔도다” 주님은 덫을 놓아서 하나님에 대한 배신을 깨닫지 못하는 바벨론을 사로잡으셨음. 25절에서 하나님은 “병기창”을 열고 바벨론에게 자신의 폭력적인 의지를 수행할 이들을 무장시키시는 전사로 그려짐. “여호와께서 그의 병기창을 열고 분노의 무기를 꺼냄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갈대아 사람의 땅에 행할 일이 있음이라”
26-27절
하나님은 바벨론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라고 명령하심. 27절 하반절에서 “그들에게 화 있도다”라는 말씀은 장례식과 관련된 애도의 한 형태임(10:19-22). 이와 같은 예언 문맥에서의 화 신탁은 풍자적으로 사용됨. 사실상 바벨론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선언함. 이번에 화라고 말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바벨론 징벌의 날이 이르렀기 때문.
28절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것, 그의 성전의 보복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 이 복수는 단지 그 백성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 아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신 곳인 성전에 대해 보여준 그들의 멸시로 인한 것.
50:29-32
다시 주님은 공격자들에게 바벨론을 포위하라고 명령하심. 그들은 주님에 대한 배반의 표현인 악한 행위(그가 행한 대로)로 인해 징벌 받아야 함. 그 결과 군대를 구성하는 그들의 장정이 바벨론 거리에서 넘어질 것. 그들은 바벨론 성을 방어할 수 없을 것. 앞서 모압과 에돔처럼 적에게 함락되는 이유로 바벨론의 교만이 강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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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C pp.199
므라다임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데스 강이 페르시아 만으로 유입하는 바벨론의 남쪽 마트마라틴의 지역을 가리킴. 그러나 히브리어 사전 BDB사전에 따르면 므라다임은 “이중의 반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브곳”은 처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음. 이러한 의미를 반영해서 읽으면, “너희는 올라가서 이중 반역의 땅을 치며, 처벌 받을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되, 명령한 대로 다하라.”라는 식으로 읽을 수 있음.
22절 “싸움의 소리”는 바벨론의 파멸을 알리는 징조가 될 것.
다른 나라들을 멸망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벨론이 이제는 그 자신이 깨지고 부서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것.
그러나 궁극적으로 바벨론이 처벌당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한 것에 대한 보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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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pp.323
하나님께서는 침략군에게 바벨론을 공격하여 그 거주민들을 죽일 것을 촉구하심. 그는 바벨론을 정복할 자들에게 그 성읍의 곡물 창고들을 약탈하고 그곳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심판을 실행할 것을 명령하심.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교만한 태도가 대놓고 자신에게 맞서는 것이요(24, 29절), 처벌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기심(31-32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자기 백성을 가혹하게 다룬 것에 대해 반드시 보복하실 것(28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