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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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눅 10:8-9
제목: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누가복음 10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를 세워서 두 명씩 전도자로 파송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주 전에 살펴본 말씀에서는 전도자가 불신자 가정에 방문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평안하기를 축복하고 복음을 전하며, 그 집에서 주는 음식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값없이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불신자가 제공하는 양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차려주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말은, 좋은 음식만 대접 받으라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먹을만한 음식이면 가리지 말고 상대방의 성의를 생각해서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너 내가 복음 전해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생명의 은인이지? 그러니까 나한테 거하게 한 상 내와. 제일 좋은 반찬, 아껴놓은 고기. 그런거 다 가져와. 이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전도자는 불신자가 차려주는 음식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없으며, 주는대로 감사함으로 받아서 먹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숙함과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에요.
또한 이러한 원리, 복음 전파자가 가정에 방문해서 음식을 얻어먹는 이 원리에는 악용의 여지가 있습니다. 예컨대 복음 전파를 빌미로 해서 배고프면 아무 때나 불신자 집 문 두들기고 들어가서 어떤 음식이든 내오는 대로 다 받아먹으면서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복음 전파자는 부랑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기생충을 양성하고 거지들을 키워내는 거지왕이 아니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복음을 전파하되, 그 과정 가운데 불신자가 성의를 보이면 그 성의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화답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 뿐입니다. 아무런 직업도 가지지 말고, 배고프면 아무 집 문 두들기고 들어가서 밥 얻어먹고 나오면 돼. 이런 걸 알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전도자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주십니까?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아멘.
9절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눠서 읽을 수 있습니다. 원어성경에서는 문장이 구분되어 있는데요. 원어의 내용을 반영해서 읽으면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그곳 안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해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이 구절이 바로 오늘 말씀의 핵심적인 부분인데요. 먼저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쳐라. 라는 말씀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병자들을 고치라는 말씀이 뭐 그렇게 특별하겠나.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누가복음을 연구한 학자 가운데 권위자로 여겨지는 제임스 에드워즈 박사는 이 구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치다”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보통 치유를 의미하지만, 이 단어는 치유뿐만 아니라 섬기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복음 전파자는 대접받는 위치에서 불신자 가정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치더라도 대접 받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4장 8절 이하에서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병자를 치유하자 바나바와 바울을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부르며 신격화시키는데, 이때 바울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하죠. 이와 마찬가지에요. 예수님께 능력을 받아서 상식을 뛰어넘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타인에 비해 높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누가복음 10장의 문맥을 잘 파악해야 하는 거예요. 전도자가 불신자의 가정에 방문해서 식사 대접을 받는 것은 가능하되, 그렇다고 해서 전도자가 불신자에게 갑질을 한다거나, 불신자를 마음으로 판단한다거나, 아니면 빨리 다른 집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거나. 이런 부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제대로 교육받고 훈련받은 전도자는 애초에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요. 왜요? 대접받으러 가서 잘 준비하나 뒷짐 지고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을 돌봐주고 섬기는 일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 같이 치병의 은사가 없는 사람들은 병을 못 고치니 할 수 있는게 없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섬길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얼마든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9절 하반절 보세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예수님께 보내심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내용과 동일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만 합니다. 제자들은 본인 입맛에 맞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과 청지기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따라서 70인의 제자가 전해야만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청해야만 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을 전하셨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다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역시 회개에 대한 사랑의 권면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요즘 시대에 죄에 대해서, 회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정말 정말 쉽지 않습니다. 또한 노방 전도할 때, 한가하게 복음을 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전도자는 복음 전파의 본질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이러저러해서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전해야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해야지. 이런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오늘도 복음을 온전히 전파하시는 전도사역부 가족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함께 나눈 말씀 기억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악하고 타락한 시대에 수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전도자로 부르심 받았음을 기억하며, 회개의 말씀을 전하기를 원하오니,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담대히 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어서 우리 전도 사역부 부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보시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고,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말로다 표현 못할 이 영적인 유익을 우리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영혼 살리는 데 앞장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담대하게 회개를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주님의 제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복음 전하는 모든 순간마다 주님 함께 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인의 아름답고 성숙한 인격이 온전히 나타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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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pp.356)
제자들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이 메시지를 가지고 나갈 것. 이리는 신자들의 대적임. 이 문맥에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음. 해결책은 무엇인가?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 말씀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유래된 속담일 것. ‘뱀같이 지혜롭다’라는 것은 신중함이나 빈틈없음을 말함. 애굽인들의 지혜의 상징이 뱀이었는데, 뱀은 위험을 피하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음. 제자들은 또한 비둘기같이 순결해야함. 이는 신실함과 순수한 의도를 의미함. 지혜로움이 순결을 통해 균형을 잡지 못하면 간교함에 그칠 수 있음. 또한 순결함이 지혜로움을 통해 균형을 잡지 못하면 고지식함이나 심지어 무지함이 될 수 있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함.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타인과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것을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함.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모든 곳에서 따스한 환영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음.
** 적용 – 분별력 있는 양
제자들의 유일한 소망은 그들의 목자의 보호하심을 바라보는 것이었음.
제자들처럼 우리도 태도에 있어서 경솔하고 준비되지 않은 양과 같아서는 안 되며, 분별력이 있고 신중해야 함. 우리는 잘 속아넘어가는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속임수를 묵인하는 자들이 되어서도 안 됨.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는 지혜와 순결 사이의 균형을 지켜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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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NT 마태복음 (pp.364)
지혜는 정직을 동반해야 하며, 지적인 특성과 윤리적인 특성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침. 제자들이 이스라엘 안에서만 사역할 때 그들은 이리 가운데 있을 것. 유대인 동포들이 제자들에게 극심한 위협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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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NT 마태복음 (pp.472)
“지혜롭고”는 원어로 “신중한” 또는 “지각있는”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짐.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 내용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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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더반 마태복음 (pp.430)
“지혜롭고”는 창세기 3:1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뱀이 가장 간교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듯하다. 여기서 이 단어는 면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을 의미하며, 화나지 않게 하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요구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드러운 비둘기와 같은 태도와 함께, 그들의 순결함이 모두에게 알려져야 한다. 윌킨스의 말대로, “순결함이 없으면 뱀의 예리함은 교활한 속임수의 협박이 되고, 예리함이 없으면 비둘기의 순결은 순진하고 무기력하며, 속기 쉬운 사람을 만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실제적인 지혜와 순전한 행동으로 왕국 진리가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해야 한다.
헤르만 리델보스, 제자들은 동기에 있어 순전하며 행위에 있어서 순수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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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데일 (로고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리는 아마도 특별히 바리새파가 세운 것들을 염두에 두셨을테지만,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면서 복음을 증언하고 사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경고는 적절한 말씀이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태도에 있어서 양과 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들 앞에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지혜로울 것을 요청한다(프로니모스[phronimos]라는 표현은 ‘분별력 있는’, ‘현명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데, 이 단어는 칠십인역에서 창 3:1의 뱀의 ‘교활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된 단어이다). 누가복음 16:1–8에서 종의 ‘분별력 있음’(프로니모스, phronimos라는 표현이 다시 사용되고 있다)이 칭찬된 것을 보라. 그리스도인들은 속이기 쉬운 얼간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기꾼이 되어서도 안된다. ‘순결하다’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섞이지 않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순결하고 투명한 것을 지칭한다. 그것은 천진난만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랄데 없는 정직성을 말하는 것이다. 분별력 있는 것과 순결함 사이의 균형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 세상 속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세상을 향한 그들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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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윈들 마태복음 (pp.216)
예수님은 제자들이 임무를 수행할 때 지녀야 할 품행과 자세에 대해 조언하셨음. 제자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했음. 지혜롭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분별 있고, 사려 깊고, 신중하고, 현명한’이라는 뜻. 성경에서 뱀은 주로 악과 결부되지만, 이 맥락에서는 포식자를 슬쩍 피하고, 눈에 띄지 않게 숨으며, 들키지 않고 슬며시 도망치는 뱀의 능력을 긍정적인 특성으로 묘사했음. 한편으로 예수님은 뱀의 이미지를 주로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는 순하고 순진한 비둘기의 이미지로 균형을 맞추셨음.
이 둘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제자들이 파송된 선교지, 적으로 가득한 선교지에서 보호받을 수 있음. 신랄하고 거칠고 보복적이고 경솔하고 공격적이고 퉁명스러운 것은 용감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음. 언어폭력은 엄연한 학대임. 신자들은 침을 흘리는 늑대들 속에서도 온화한 말투와 유순한 태도, 사람을 이끄는 매력으로 적개심을 녹여야 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는 양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갈갈이 찢기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내면의 성품이 늑대들 사이에 있을 때에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
뱀같이 지혜로움과 비둘기같이 순결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기민하면서도 온화하고, 예리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순결해야 하며,
요령이 있으면서도 정직해야 하며, 신중하면서도 매력이 있어야 하고
분별력이 있으면서도 평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