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날까지 분별함과 진실함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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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빌 1:9-11 (빌 1:10)
제목: 그리스도의 날까지 분별함과 진실함을 가지라
빌립보서 1장 9절에서 11절 말씀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1장 9절 말씀을 살펴보았는데요. 9절 말씀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온전한 지식과 예리한 분별력의 풍성함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분별력의 풍성함에 연결되는 내용이 10절 말씀에 등장하는데요. 빌립보서 1장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0절 말씀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도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도의 목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분별하다 라는 표현에는 가치를 인식하는 정신적인 측면과 경험에서 얻는 것들을 시험해 보는 실제적인 측면이 모두 포함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분별하다”라고 번역되어있습니다만, 원어 상으로는 “시험해 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금이나 은의 순도를 측정하거나, 화폐의 여부를 시험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분별하다”라는 번역은 모든 조사와 시험이 끝난 뒤에 증명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조금 의역해서 표현하자면, 지극히 선한 것을 구별해 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것이 선한 것이고, 또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 구별해 내기 위해서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삶의 이론과 실제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인생의 갑작스러운 어떤 급격한 변화나 충격적인 결정들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박해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루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만큼은, 극단적인 경우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가 아닌, 우리의 인생의 지표로 삼을만한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도의 목적 둘째는, 진실하여 허물이 없기 위함입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도덕적인 순결함을 포함하는 것이죠. 이러한 진실함은 내적인 거룩함과 외적인 거룩함을 포괄합니다. 이러한 진실함이란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신과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하는 영적인 자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인 자질과 연결되는 것은 “허물이 없이”라는 표현인데요.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타인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 불쾌감을 주지 않는”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실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불쾌감 또는 상처를 주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내용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데,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두 가지를 위해서 치열하게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드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생활을 단순하게 하면 편안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면 편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언제나 편안할 수만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지체들 떄문에 불편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불편한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세워보았을 때, 내가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불편하겠죠.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신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만, 영적인 겸손함과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머리로만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기도의 목적의 첫 번째 내용인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한다는 것은, 나의 삶과 지식이 일치해야만 시험해서 분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순서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부터 시작해서 우리 삶의 과정과 목적을 고찰할 때, 내가 과연 내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이러한 부분들까지 세밀하게 시험해서 증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도구를 사용하라는 것입니까? 기도라는 도구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맡겨놓은 것 내놓으라는 식의 기도는 이제 중단하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어서 진실하여 허물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매순간 우리의 언행을 점검해야 합니다. 타인을 넘어지게 하는 것, 상처주는 것, 이러한 잘못된 행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을 세심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왜요? 나는 더 중요한 일들을 하거든요. 교회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내가 다 하고 있거든요. 전도하고 있거든요. 천하보다 귀한 영혼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데, 말 좀 그렇게 했다고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저 사람이 연약해서 상처 받은건데, 이게 뭐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이런 부분을 세심하게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연약함만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 지체가 교회에서 그 어떤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든지 간에,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겁니다. 무슨 이유로든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그러한 말과 행동은 교정되어야만 합니다.
사실 한국교회 초창기 시절에 교회의 권징의 시행이 굉장히 잦았습니다. 권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에서 타인을 시험들게 하거나, 어떤 죄를 짓거나, 문제를 일으킬 경우에, 수찬을 정지시킨다든지, 이런 식의 권징을 시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권징이라는 것은 개혁주의 교회의 삼대 지표 중의 하나입니다. 말씀 성례 권징. 이 세 가지가 교회가 교회 됨을 증명하는 지표인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권징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과거에 한국교회의 당회록은 거의 권징록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합니다. 예컨대 어떤 집사님이 바람을 피웠다고 하면, 권징 받았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권징을 잃어버렸습니다. 누가 시험을 일으키든, 누가 상처를 받았든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하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요? 꼬우면 다른 교회 가면 되니까요. 성찬참여하지 말라고요? 오케이. 여기만 교회냐? 다른 교회가면 되지. 이런 식으로 권징의 효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권징의 시행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자 그렇다면, 권징의 시행이 없어졌으므로,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내가 하고싶은대로 교회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며 신앙생활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안되겠죠. 아무리 전도하면 뭐합니까. 아무리 주차봉사하고 식당봉사하면 뭐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분별력 없는 말과 행동이, 허물로 뒤덮인 그 행실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전도사역부 가족분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한순간만 빤짝하며 살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날까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 없는 인생을 영위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은 바로 오늘입니다. 지난 10년간 분별하며 살아왔어도, 하나님 앞에서 허물 없는 인생을 살아왔어도, 오늘 밥상 엎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입니다. 지금 잘 살고, 내일이 오면, 내일 그 순간, 내일 맞이할 그 현실을 잘 살아내는 것이 최선인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날까지 신실하게 살아내시는 우리 전도사역부 가족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복음 증거자로 부르신 주님,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사역을 온전히 감당함과 동시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바라옵기는 언제나 선한 것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허물없이 진실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올려 드리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부단히 기도하며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그러니 권징을 시행해도 다른 교회가면 그만이니 권징의 효력이 상실된 것이죠.
뼈저린 좌절감과 자책감에 빠지곤
그리스도의 날을 위하여.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히려 달려가노라”
풍성한 결실
완전한 성화
자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식이 풍성해지는 것과 한 쌍으로 분별력의 성장을 말합니다. 진리를 아는 것과 삶에 적용하는 것을 하나로 묶어서 기도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전도사역부 가족 여러분, 우리는 복음 전파자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입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배우고 익히는 것이 다소 불편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부단히 말씀을 배우고 익혀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이영애 권사님의 경우에는 오후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십니다. 오후 예배 안상혁 목사님 말씀이 때로는 조금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그 말씀을 철저하게 공부하십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도 30대 되고 나서 건망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성경적인 지식을 쌓아가기 위한 노력 가운데 우리의 영적인 지식이 날로 풍성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깊은 성경적인 지식과 영적인 분별력을 발휘하여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써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는 전도사역부 가족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 전도사역부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지를 보시면서 한분 한분 이름을 불러가면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생명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기를 원하는 갈급함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지만,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말씀을 아멘으로 받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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