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유다에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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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하 25:8-30 (봉독 왕하 25:8-26)
제목: 빼앗긴 유다에 봄은 오는가
9월 1일부터 새벽기도회 시간에 묵상하기 시작한 열왕기하 말씀이 오늘부로 마무리됩니다. 방금 전에 함께 읽은 열왕기하 25장 8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은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가능하면 묵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느껴질 정도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유다가 어떤 과정을 통해 멸망 당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남유다의 멸망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려면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남유다의 스무 번째 왕인 시드기야 왕은 21세에 왕으로 등극해서 11년간 통치했습니다. 시드기야는 여호야김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왕으로 평가되죠. 그리고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남유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단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방법인즉슨 바벨론의 멍에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항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않은 채로 바벨론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이와 같이 행동한 이유는 친애굽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7장 15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에스겔 선지자는 시드기야의 행동을 책망합니다. 사절단을 애굽에 보내서 말과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행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신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 내용을 잘 모르시는 성도님들은 조금 이상하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아니,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다 똑같은 이방 민족이고 우상 숭배자들인데, 누구에게 부탁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똑같은 죄인들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열왕기하 24장 17절 말씀 들어보십시오.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시드기야가 어떻게 왕이 되었습니까?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남유다의 왕으로 세워주었기 때문에 왕이 되었습니다. 또한 시드기야가 왕으로 등극할 때, 바벨론 왕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충성을 맹세했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선서 혹은 맹세는 즉위식 때 행하는 일종의 형식과도 같은 것인데요. 이러한 형식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 편에 붙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그래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바벨론의 왕인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반역을 철저하게 응징합니다. 때는 기원전 588년, 시드기야 왕이 남유다를 통치한 지 9년 10월 10일째 되던 날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해서 시드기야의 통치 말년인 11년까지 포위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포위된 지 1년 6개월이 지날 무렵, 예루살렘 성의 모든 양식이 완전히 고갈됩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굶어 죽을 지경이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레미야애가 2장 20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또 예레미야애가 4장 10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먹을 것이 없어지자, 자기 자녀들을 잡아먹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그렇게 희망 한 점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다가, 결국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시드기야 왕은 남몰래 도주하던 중에 바벨론에게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아들들이 처형 당하고, 본인의 두 눈까지 뽑히고 맙니다.
여기까지가 남유다의 멸망에 있어서 시드기야와 관련된 내용이었고요. 열왕기하 25장 8절 이하의 내용에서는 남유다 왕국이 멸망당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그리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웠으며, 예루살렘 성벽까지 모두 허물어버립니다. 또한 지혜있고 쓸만한 사람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아갔으며, 여호와의 성전 기물들과 거대한 기둥에 붙어있던 놋을 전부다 긁어서 바벨론으로 가져갑니다. 열왕기하 25장 16절 말씀에 따르면,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벨론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남유다를 철저하게 짓밟고 멸망시킵니다. 남유다를 친히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인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그 성전을 장식하던 아름다운 기물들을 모두 약탈함으로써, 남유다의 종교적인 색채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유다 멸망과 관련된 마지막 내용을 살펴보고 적용점을 나눌텐데요. 열왕기하 25장 27절에서 30절 말씀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에, 멸망과 관련된 내용이라 보기에는 어렵고요. 22절에서 26절 말씀이 멸망의 마지막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군대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남유다의 총독으로 “그달리야”라는 인물을 세웁니다. 그런데 남유다의 남아있던 사람들이 그달리야를 살해하고, 그와 함께 있는 유다 사람과 바벨론 사람 모두를 살해한 뒤 애굽으로 도피합니다. 열왕기하 25장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앞서 설명해 드렸듯이 열왕기하 25장 27절에서 30절 말씀을 부록 혹은 에필로그처럼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열왕기하에 기록된 남유다의 마지막 장면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남유다의 남은 자들이 자기들의 발로 애굽 땅에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내용은 구약시대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가장 먼저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2절과 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실 때,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이다. 라고 설명하십니다.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또 신명기 5장 15절 말씀 들어보십시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에서 주어진 십계명 말씀 가운데 네 번째 계명이 주어진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주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그 어떤 사건보다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인 열왕기하 25장 26절 말씀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출애굽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가 입애굽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을 바라보면, 인간의 무지함과 하나님에 대한 패역함이 얼마나 지독하고 역겨운 것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몇 가지 적용점을 나눠볼텐데요. 적용점을 나누기 앞서 이 열왕기라는 책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눠보겠습니다. 이 열왕기라는 책의 기록연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상이합니다만, 보수적인 구약학자들에 따르면, 열왕기의 말씀을 처음으로 읽은 1차 독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남유다 백성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포로로 잡혀간 남유다 백성들이 이 열왕기의 말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회개하는 것일텐데요.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열왕기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400년에 가까운 남유다의 역사와 70년 포로기 생활을 하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의 시대적인 간극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이 70년이라는 기간 안에 다양한 세대가 존재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드기야를 따라서 우상 숭배하면서, 악을 행했던 세대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것인데, 이렇게 잡혀간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바벨론 땅에서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10년이나 20년 뒤에 성장해서 열왕기를 읽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남유다의 멸망과 본인의 포로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닌 경우에는 열왕기의 말씀이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겠죠. 여호와께 선택 받은 백성이 어떻게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우상숭배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왜 이런 상황에 두시는가.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어떻게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수 있는가.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남유다의 멸망에 대해 냉철하게 우리의 삶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맺으신 언약과 그 언약에 대한 성취에 관해서는 절대로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열왕기하 25장에 기록되어 있는 남유다의 멸망과 포로기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믿는 신인 마르둑보다 약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실한 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36절과 37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이 말씀의 전제는 신명기 28장 20절 말씀입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신명기의 언약을 열왕기하 25장에서 성취하셨습니다. 남유다의 역사는 400년 정도 됩니다. 그리고 남유다에는 스무명의 왕이 있었는데요. 스무 명의 왕 중에 여덟명만 선한 왕으로 기록됩니다. 또 그중에 두 사람, 히스기야와 요시야만이 다윗의 길을 따른 것으로 기록됩니다. 조금 엄격하게 표현하자면 스무명 중에, 다윗과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은 단 두명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무명중에 두명. 10프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남유다에 대해 굉장히 오랫동안 참고 참고 또 참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언약 백성이 멸망당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무얼하고 계시는가. 이러한 반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반문이 되는 것이죠. 멸망 당했어도 애진작에 멸망 당했어야 하는 것을, 오히려 400년씩이나 인내하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찬양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어서 두번째 적용점,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끝나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끔찍한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드기야는 11년의 통치 기간 중 9년 9개월 정도는 나름 평안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지만, 시드기야는 애굽이라는 믿는 도끼가 있었기 때문에, 큰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지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그릇된 신념과 잘못된 정보는 상황을 합리화시키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말씀 선포와 불순종의 상황들이 얽히고 설키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포위 당하고, 양식이 끊겨 자녀들을 잡아먹으며, 그러다가 도망가던 중에 사로잡혀서 자식들이 처형 당하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고 그 눈을 뽑히고 마는, 이러한 비극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기복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콩 심은데 콩이 나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가, 사랑하는 나의 배우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형통의 축복을 누린다면, 그만한 부조리가 또 어디있겠습니까. 만의 하나 잘되는 것 같다고 한들, 그것은 형통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적용점,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입애굽하는 남유다 백성들의 무지함을 답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출애굽이었습니다. 만약 출애굽 사건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토록 이집트에 복속된 히브리 노예 취급을 당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적인 은혜 가운데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이렇게 출애굽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가 입애굽으로 마무리 된다는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 선포와 그에 대한 성취를 본인들의 눈으로 목격하고 피부로 느꼈음에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들의 우둔함과 패역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죄인들의 삶을 본받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르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건져냄 받을 수 있도록 언약을 맺어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공의로우신 심판의 관계를 영적으로 분별하며,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고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히 무엇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예수님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기를 소원합니다.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오늘도 건강하고 바른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올려드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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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개 아래 pp. 935
유일한 희망
여호야긴의 석방은 유다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인 것 같기도 함. 실제로 여호야긴이 남유다로 돌아가 왕위에 오른 것은 아니기 때문. 그러나 우리는 작은 희망의 단서를 볼 수 있음. 다윗의 후손드이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통치하게 되리라는 약속(왕하 8:19; 왕상 11:36; 15:4), 다윗 언약은 폐기되지 않았기 때문. 여호야긴이 죄수로 죽지 않고 바벨론 왕에게 존경받는 손님으로 죽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함. 최소한 다윗 왕조의 회복 가능성은 남아있는 것.
더욱이 바벨론으로 빼앗긴 성전 기명들은 유다 왕국의 멸망과 포로라는 불연속 가운데에서도 앞으로 연속을 드러내는 상징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도 안 됨. 바벨론에 있는 성전 기명들은 언젠가 예루살렘으로의 회복을 보여주는 희망의 암시일 수 있음. 실제로 바벨론 포로 후에 성전 기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때문.
다윗 가문의 후손은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으로 벌 받을지 모르나,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왕하 8:19; 왕상 11:36; 15:4)라는 언약은 변할 수 없고 폐기될 수 없는 것. 물론 20명의 남유다 왕 가운데 오직 8명만이 선한 왕이었고, 다윗의 이상에 맞게 산 왕은 요시야와 히스기야 2명뿐이었지만, 다윗 왕조가 무려 400여년을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 때문이었음. 따라서 시편 기자와 선지자들이 이를 영원한 왕조라고 부른 것.
** 포로됨의 의미
열왕기의 첫 독자들은 바벨론 포로지에 살던 포로민들이었음. 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신앙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음.
1) 여호와께 선택 받은 백성이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3) 희망은 전혀 없는가?
4) 혹시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 여호와보다 강한 것이 아닌가?
열왕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도 아니며,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 여호와보다 강하기 때문도 아님을 분명히 함. 열왕기 기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긴 것 때문에 참고 참으시다가 어쩔 수 없이 언약을 파기한 자에게 언약의 저주를 내리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음.
모세는 신명기 28장에서 언약을 지켰을 때 받을 축복과 언약을 파기했을 때 받을 저주를 나열하는데, 열왕기 기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런 저주들이 성취된 스토리라는 것을 보여줌.
언약의 저주 형태는 질병, 기근, 인육, 포로와 패배. 4가지가 있으며, 역사 내에 집행까지 이루어짐.
1) 질병 / 신 28:21-22 / 집행 삼하 24장
2) 기근 / 신 28:23-24 / 집행 왕상 17-18장
3) 인육 / 신 28:53-57 / 집행 왕하 6:24-30
4) 포로와 패배 / 신 28:36-37, 49-52 / 집행 왕하 17:24-32; 25:18-24
이스라엘의 포로 됨은 이스라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었음. 모세는 오래전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음. 솔로몬 왕이 성전 봉헌 기도를 드리면서 범죄하여 포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전제하면서 기도했음을 주목해야 함.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포로 됨이라는 비극적인 종말이 그리 쉽게 단기간에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이미 이스라엘의 반역과 불충성은 솔로몬 시대부터 시작되었음.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두 나라로 분열시키셨고, 때로는 기근을, 때로는 전쟁의 패배를 통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원하셨음. 선지자들,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내셔서 징계하기도 하시고, 위로하기도 하시고, 심판하기도 하시고, 구원하시기도 하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음.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반역하였고, 마침내 언약의 저주 가운데 가장 심각한 저주에 해당하는 포로 됨의 재앙이 임했음.
따라서 이스라엘의 포로됨은 하나님 편에서의 실패가 아님. 이스라엘의 포로됨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나라를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역사의 주인 되심을 드러내는 증거인 것. 이방 왕들을 들어 자기 백성을 징게하시고, 심지어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는 분인 여호와야말로 역사의 주인이심.
